입안 가득한 육즙… 소고긴줄 알았네

입력 : 2013-10-10 07:48:11 수정 : 2013-10-10 14: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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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기 왕국' 부산 남포동 야타이

광복동 '야타이'의 밍크고래 코스 요리를 한 상에 차렸다. 가운데가 불고기, 양쪽으로 정갈한 회, 초밥 접시와 고래고기의 풍미를 살리는 명이와 저염 명란도 보인다.

고래고기의 맛을 잘 모른다. 먹어본 것이라고는 일식집에서 몇 점 곁들여 나온 것뿐이다. 그마저 딱히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누군가 "고래고기 먹을 줄 알아요?"라고 물어보면, "못 먹을 게 뭐 있어요?"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딱히 찾아서 먹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고래고기 이야기를 하게 됐다. 1980 년대까지는 돼지고기보다 싸서 서민들의 영양 보충원이었다, 개한테 고래 연골을 먹이면 털에 윤기가 흘렀다, 같은 옛 이야기도 몰랐고, 허름한 시장통 가게에서 고래고기에 소주 한 잔 기울인 추억조차 없으니 영 난감하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았는데, 임권택 감독의 작품 세계에 대해 써야 하는 심정과 비슷할까.

이 입문자의 혀를 가지고 고래고기를 처음으로 제대로 맛보았다. 남포동 '야타이'는 겉으로만 보면 간편한 일본식 주점인데 안은 고래고기 전문점이다. 주인장 공명호(32) 대표는 일식당 출신 오너 셰프이자, 부산 시내 몇몇 곳에 고래고기를 공급하기도 한다. 문을 연 것은 2년 반쯤 됐다. 고래고기를 제대로 손질해 다양하게 요리해 내놓는 코스 요리로 고래고기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큰 고래(왼쪽)와 어린 고래(오른쪽)의 수육 비교. 빛깔과 질감이 완전히 다르다.

■ 다 같은 고래고기가 아니다

공 대표는 사람들이 고래고기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을 안타까워했다. '한번 먹었더니 비리고 퀴퀴한 냄새가 나서 다시는 입에 안 댄다' 같은 것이다. 십중팔구 일명 '곱새기', 돌고래고기였을 경우가 많은데 돌고래는 원래 향이 강하다. '야타이'를 비롯해 고급 전문점들에서는 대부분 밍크고래를 쓴다. 돌고래보다 대여섯 배 비싼 대신 크릴새우 등을 주로 먹어 잡냄새가 없는 종이다.

또 하나 가능한 이유는 손질과 선도의 문제다. 대부분 고래고기를 수육으로 접하는데, 고래의 핏물을 빼고 삶는 방법이 만만치 않다. 고래고기의 특이한 냄새는 피 때문인데, 신선도가 떨어지면 더하다. 피를 잘못 빼거나 오래 되면 냄새가 더 강한 것이다. 특히 돌고래는 원래 냄새가 강해 월계수 잎이나 정향 같은 향료를 듬뿍 넣고 삶는 '가공' 단계를 거친다.

삶는 방법과 저장 시기도 맛 차이를 결정한다. 된장을 넣고 삶는 곳이 있는데, 공 대표는 오직 소금만 넣고 삶는다. "냄새는 잡되 고래고기 자체의 풍미는 살려야 하거든요." 고래고기가 주 요리가 아닌 일식당, 일부 전문점도 삶아놓은 것을 사다가 냉동해두고 조금씩 해동해서 썰어낸다. 가게에서 직접 삶고, 삶고 나서 하루 이틀 내에 식탁에 오르는 곳과는 신선함이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는 고래고기 좀 먹는다고 하면 다 아는 이야기. 그런데 어린 고래와 큰 고래의 차이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 "밍크고래는 보통 21자, 23자, 26자 식으로 크기를 매깁니다. 한 자가 30㎝가량입니다. 23자 이상이 큰 고래, 21자 정도가 어린 고래로 치는데, 닭으로 치면 노계와 영계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어린 고래가 더 부드럽고 특유의 냄새도 덜하지요."

그럼 어린 고래가 좋은 것일까. 대답 대신 공 대표는 두 고기의 수육을 같이 내왔다. 한눈에 봐도 완전히 다른 고기다. 바깥 껍질 부분이 검고 그 아래 흰 껍질 부분 아래 붙은 고기가 거무튀튀한 것이 큰 고래, 바깥 껍질 부분이 회색, 고기도 밝은 갈색인 것이 어린 고래다. 어린 고래를 먼저 먹어보니 부드럽고 촉촉하다.

"'쥬시(juicy)'하지요? 젊은 사람들은 어린 게 입맛에 맞을텐데, 좀 드셔보신 분들은 큰 고래만 찾습니다. 첫 맛은 좀 질긴 듯한데, 씹을수록 깊은 맛, 감칠맛이 납니다." 공 대표의 설명이다. "어린 고래는 1시간, 큰 것은 4시간 삶아야 하고, 삶고 나면 어린 고래는 20% 정도, 큰 고래는 40~50%는 줄어듭니다. 자연히 식당들은 어린 고래를 더 많이 쓰는데, 저희는 꼭 반반씩 내니까 좋아들 하십니다." 

바가지살 수육과 명이, 명란을 얹은 고래고기 초밥.

■ 고래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요리

'야타이'의 대표 메뉴는 고래고기 코스 요리다. 1인당 5만 원에 회, 와다(해삼내장)무침, 초밥, 불고기, 수육, 튀김 순으로 고래고기를 쓴 요리가 종류별로 나온다. 두 명 정도가 먹는 수육 한 접시가 같은 가격인 것에 비하면 구성이 나쁘지 않다. 회와 초밥 같은 메뉴는 정갈하고 고급스러운 일식 차림으로 눈을 먼저 만족시킨다.

맛을 보았다. 먼저 회. 참치회 방식으로 급속 냉동한 것을 당일 해동해 내는데, 제일 귀하다는 우네(턱밑살), 막찍기라 불리는 살코기, 꼬들꼬들한 오베기(꼬리 부위)다. 우네와 살코기를 보니 고래의 생물종 분류가 납득이 간다. 보드라운 흰색 껍질 아래로 마블링 비슷한 무늬의 붉은 고기가 붙은 우네, 두툼하고 짙은 붉은 빛 살코기는 눈으로는 영락없는 소고기이고, 입으로는 살살 녹는 생선회다.

초밥도 공 대표가 '강추'하는 메뉴다. "단백질과 탄수화물, 지방이 한입에 어우러지는 맛이 기가 막히다"는 것이다. 각각 생 우네와 살코기, 바가지살 익힌 것을 밥 위에 큼직하게 얹었는데, 바가지살에 명이를 한 줄기 싸고, 저염 명란을 얹은 것이 놀랄 만큼 맛있다. 살코기 초밥은 눈앞에서 토치로 익히는 '불쇼'를 보여주는데 불맛이 향긋한 소고기 초밥을 먹는 맛이다.

불고기는 일본식 야끼니꾸 양념을 한 살코기를 즉석에서 구워먹는다. 카레 맛이 살짝 나는 튀김도 고래고기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겉모양이다. 블로그 후기들 중에는 자신이 먹은 것이 소고기초밥, 소고기튀김이라고 믿고 있는 이도 있을 정도다.



※부산 중구 남포동 2가 5. 도시철도 남포역 1번 출구에서 서울깍두기 방향. 오후 4시~오전 2시(주말 오전 3시). 밍크고래 코스 요리 1인 5만 원, 고래고기+참치 2~3인 7만 원, 3~4인 10만 원, 고래고기 모듬 7만, 10만 원. 051-242-9060.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사진=블로거 '챨리' (blog.naver.com/lim8575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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