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글탱글 가을 꽃게 "가을 전어 안 부러워요"

입력 : 2013-10-24 07:47:20 수정 : 2013-10-24 14:23:08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연평도산 꽃게

부산 수영구 광안동의 '이하정꽃게정식'에서 방짜유기에 차려낸 양념게장정식. 가을철에는 수꽃게에 살이 통통하게 올라 살결을 씹는 맛이 좋다.

서해안 포구에서

연일 꽃게의 풍어 소식이 들려온다.

그래서일까. 지난 주말 자갈치시장을 찾았더니

활꽃게, 냉동꽃게를 찾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올해는 방사능 공포 때문에

일본 원전과 멀리 떨어진 서해산 수산물이

귀하신 몸으로 부상한 것도 한몫 했다.

자갈치시장의 대원상회 허애리(63) 씨는

"꽃게 풍년 뉴스를 보고

꽃게를 사러오는 손님들이 많다"고 싱글벙글 웃었다.

수요가 많아서인지 풍년이 들어도

가격은 떨어질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고.

'봄 암꽃게, 가을 수꽃게'.

분홍색 알이 꽉 차는 봄에는 암게가 상종가를 치고,

가을에는 수컷의 살이 탱글탱글 차오르기 때문에

탕과 찜의 재료로 인기다.

손님들 중에는 그 차이를 가려

굳이 수꽃게를 찾기도 하지만,

가을에도 알이 차고 있는 암꽃게가 많으니

구별하지 않고 가져 가는 사람도 많단다.

하여간 가가호호

구수한 꽃게된장국이 끓고,

간장게장에 밥 비벼먹는 손들로

식탁이 분주한 계절이다.

연평도 해역은 꽃게의 황금어장이다.

몸값이 높은 꽃게들은 여기서 잡힌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무심하게 넘나드는 바로 그 꽃게들이다.

중국 어선들이 단속을 불사하고

불법 조업을 일삼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 왜 '꽃'게일까?

등딱지의 좌우 양끝이 삐죽 튀어나온 모습에서

곶(串)+게'가 됐고

이게'꽃게'로 변했다는게 다수설이다.

하지만 끓이거나 익히면

갈색 껍질이 발갛게 변한데서

'꽃'이 연상됐다면?

그래서 '꽃'게가 됐다고 믿겠다면, 그건 자유다!

가을보약이라는

연평도산 꽃게 맛을 보기로 했다.

해운대 바다를 조망하는

고급레스토랑 분위기에서

꽃게찜을 즐길 수 있는 마린시티의 '마실'과

엄마표 집밥처럼

간장게장 정식을 차려내는

도시철도 광안역 근처의 '이하정꽃게정식'에서

가을 꽃게를 음미했다.


영월산 태양초·천연 해물소스 넣은 해물찜
요란하지도 않고 은근한 맛에 입안이 개운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해물요리전문점 '마실'


해운대 마린시티에 위치한 해물요리전문점 '마실'에 앉으면 멀리 광안대교까지 아우르는 바다 풍광이 한눈에 잡힌다. 실내는 근사한 레스토랑 분위기다. 이런 조망과 시설에서 해산물 탕과 찜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평일 점심시간에 실내를 빙 둘러보니 여성 단체손님들이 눈에 띈다. 계 모임이 많고 외국인 단체손님이 자주 찾는다는 귀띔이다. '부산'을 느끼게 하는 해물요리인데다 멋진 바다 풍광을 즐길 수 있어서일 것이다. 

마린시티의 해물전문점 '마실'에서는 천연소스로 꽃게찜을 요리해 맛이 은근하다.

이 집의 간판 메뉴는 해물찜이다. 세숫대야 크기의 접시에 문어와 생 아귀 등이 듬뿍 담긴 비주얼이 볼만한데, 철이 철인지라 꽃게찜을 주문했다. 꽃게는 연평도에서 직송한 것을 써서 선도를 유지한다. 찜용으로는 수게를, 간장게장에는 분홍색 알주머니가 제법 들어찬 암게만을 골라 쓴다고.

"맵도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땡초가루로 조절하는 매운 정도를 '맵도'로 불렀다. 어, 그러면 짠 정도는 '짭도', 쓴 정도는 '씁도', 떫은 정도는 '떫도'로 부르면 되겠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어쨌거나 문법을 따지기 전에 의미가 통했으니 그냥 "중간 맵도로 주세요"하고 주문했다. 여성과 객지 손님 중에 '높은 맵도'에 도전하는 비율이 높단다. '맵도'를 조절하는 고춧가루는 영월산 태양초.

"화학조미료 대신에 자체 개발한 천연 해물소스를 써서 감칠맛을 살렸습니다." 홍합, 보리새우, 굴 따위 해산물을 갈아서 만든 천연조미료로 맛을 냈다는 게 신은아(39) 사장의 설명이다. 그래서인지 찜의 양념은 요란스럽지 않고 은근해서 입이 지칠 틈이 없고 다 먹은 뒤에도 입안이 개운했다.

콩나물 위에 얹어 익힌 꽃게들은 덩치가 크고 살은 토실토실 차오른, 명실상부한 가을 수꽃게다. 살을 발라 먹는 재미가 쏠쏠해서 그 자체로도 배가 불렀다. 남은 콩나물에 볶음밥을 만들 수 있지만 내친 김에 간장게장의 맛을 보기로 했다. 신 사장은 "간장게장도 우리집 명물"이라며 강력히 추천했다.

간장게장의 맛은 게살이 좌우한다. 살점이 흐물흐물해지지 않고 제대로 씹히는 맛이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간장의 양념 맛이 살에 지나치게 배여도 안된다. 사나흘 숙성한 것을 손님상에 올리고, 간장이 게살에 지나치게 배이기 전인 열흘 내에 다 소비하는게 방침이라고.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를 없애는 것에도 나름 노하우가 있다고 그는 자랑했다. 간혹 꽃게의 비린내를 없애려 소주나 사카린을 사용하는 가게가 있는데 '마실'은 와인을 이용한 냄새제거법을 쓰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 1410의 1 두산포세이돈 101동 2층. 051-744-6988. 꽃게찜 2인 3만 9천 원·4인 6만 4천 원, 해물찜 2∼3인 5만 5천 원·4인 6만 5천 원, 간장게장·양념게장정식 각각 2만 5천 원, 해물탕 2∼3인 5만 5천 원·4인 6만 5천 원, 꽃게탕 2인 3만 9천 원·4인 6만 4천 원, 점심 특선 꽃게뚝배기 1만 3천 원. 전 메뉴 포장 가능. 

자갈치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톱밥꽃게.

설탕·소금 안 쓰고 전통 조선간장 넣은 게장
사람이 만든 맛 대신 자연 그대로의 맛 일품

■부산 수영구 광안동 '이하정 꽃게정식'


간장게장을 즐기지만 '밥도둑'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면 왠지 마음이 복잡해진다. "너무 짜니까 밥을 우걱우걱 밀어넣을 수 밖에!" 간장과 조미료로 요란하게 맛을 내지 않았을까? 먹고 난 뒤 겪어야 하는 대책 없는 포만감과 입안의 텁텁함도 '밥도둑'이란 표현을 마뜩하지 않게 생각하게 된 요인이다.

하지만 가을 꽃게철이 되면 살이 통통하게 오른 게살을 발라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이럴땐 어쩔 도리 없이 믿을 수 있는 엄마표 꽃게 요리를 찾아 나서게 된다.

'이하정 꽃게정식'은 나이가 쉰이 넘도록 주부로만 살던 이하정(51) 사장이 지난해 4월 본인의 이름을 걸고 차린 가게다.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 음식을 내겠다는 다짐으로 이름을 앞세웠다"는 것이다. 그 실천이 일체의 조미료는 물론 설탕과 소금조차 쓰지 않는 '착한 음식'을 내는 것이다. 골목상권이지만 이런 정성이 알음알음 알려져 멀리서도 찾는 단골이 꽤 늘었다.
'이하정꽃게정식'의 간장게장.

이 집의 대표 메뉴는 연평도산 암꽃게를 재료로 쓰는 특게장정식. 시중에서 싼 값에 구할 수 있는 산분해간장을 절대 쓰지 않고 전통 조선간장만 쓴다. 게장에 들어간 천연간장에는 방부제나 조미료와 같은 '사람이 만들어 낸 맛'이 없다는 것이 이 사장의 자부심이다. 짠맛, 단맛으로 요란하게 꾸미지 않았으니 수더분하고 그윽한 맛이 난다. '밥을 훔칠' 필요 없이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게 이 간장게장의 미덕이다.

이 집에서는 대하장과 돌게장, 양념게장도 갖춰 내는데 이 밖에 특이한 메뉴가 간장문어숙회장이다. 다른 곳에서 맛 볼 수 없는 이곳만의 독보적인 창작메뉴다.

서울에서 즐기는 간장낙지장, 간장전복장을 구현하려 시도했는데 값이 비싸 서민들이 즐기기 어렵고 보관도 까다로워 벽에 부딪혔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낙지, 전복은 되는데 문어는 왜 안되나?" 부산경남에서 즐기는 문어숙회를 활용해 보자는 생각에 문어숙회를 간장에 담았더니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밥 반찬은 물론 술 안주로 인기라 마니아층까지 생겼다고.

동네가게에서 흔한 플라스틱 그릇을 쓰지 않는 것에도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밑반찬류는 도자기에, 게장은 방짜유기에 정갈하게 담아내니 보는 맛부터 깔끔해서 좋다. 처음엔 설거지 하기에도 편한 멜라닌 그릇을 썼는데, 고추장 색이 그릇에 배는 것을 보고는 바로 버렸다고. 그릇은 음식만 담는 게 아니라 마음을 함께 담는 도구가 된다.

늦깎이로 식당을 운영하게 된 이 사장에게 어떤 가게를 만들고 싶으냐고 물었다. "집에서 밥상을 차리는 정성이 느껴지는 착한 식당이고 싶습니다."

※부산 수영구 광안동 120의 269. 한서병원 도로 건너편 골목. 051-909-6100. 특게장정식(연평도암꽃게) 2만 원, 간장새우(대하장)정식·간장문어숙회정식 각각 1만 원, 간장게장·양념게장정식 각각 7천 원. 포장 가능. 오전 11시∼오후 9시30분.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사진=블로거 '챨리'(blog.naver.com/lim8575922)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