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양'은 냄새를 남기지 않는다

입력 : 2013-10-24 07:47:40 수정 : 2013-10-24 14: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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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식 양고기 레스토랑 '샤슬릭'

마린시티의 러시아식 양고기전문점 '샤슬릭'에서 셰프가 양고기 티본 스테이크에 후추를 뿌리고 있다. '샤슬릭'은 냄새가 없는 어린양을 재료로 다른 양념없이 소금과 후추만 뿌려 낸다.

양고기를 처음 접한 건 지난 2004년 봄, 전쟁통의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였다. 매캐한 화약연기로 현기증이 일어 고생하는게 안쓰러웠는지 눈치 빠른 현지 통역이 기자의 소매를 끌었다. 흉물스런 건물 잔해 틈에 거짓말처럼 멀쩡한 레스토랑이 남아 있었다.

길쭉한 안남미 밥을 볶아 그 위에 큼직한 양고기를 얹은 '램 비리야니'. 양고기 덮밥이었다. 양고기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고정관념이 무너졌다. 지친 이방인이 맛있게 먹고 기운을 차리는 모습에 뿌듯해 하던 통역의 얼굴에서 전쟁의 상흔이 잠시나마 사라졌다. 낯선 양고기에 친근감을 갖게된 계기다.

10개월 미만 '램' 사용 노린내 없고 야들야들
스테이크부터 육회까지… 다국적 퓨전 차림


양고기는 유럽에선 고급레스토랑의 단골 메뉴다. 중동과 인도, 중국, 러시아에서도 대중 음식이다. 약간 과장하자면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인들이 즐긴다.

지독한 노린내와 번들거리는 기름기, 뻑뻑한 식감…. 한국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는 양고기의 이미지는 그리 아름답지 않지만, 이런 선입견을 넘어 주변에 양고기 요리점이 꽤 늘었다. 대체로 중국 유학생과 조선족을 따라 들어온 것이다. 꼬챙이에 양고기를 꿰어 구운 중국식 꼬치를 뜻하는 한자 간판('羊肉串')이 이제 낯설지 않다. 조선족들이'양뀀'으로 부르는 이 꼬치구이를 필두로 양고기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해운대 마린시티에 올해 문을 연 양고기 레스토랑'샤슬릭'은 드물게도 러시아식이다. 양갈비나 양고기 카레는 알겠는데, 피자와 파스타에 양갈비를 올리고 육회까지 낸다. 양고기 요리에'양뀀'만 있는게 아니다! 이제 우리도 양고기를 즐기는 단계에 접어든 것일까.


■"누린내 안 나는 거 확실하지요?"

한국손님들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다짐을 받는다. "냄새 안나요?"

고급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양고기는 10개월 미만의 어린 양(램)이어서 노린내가 없고 야들야들해서 식감도 좋다. 문제는 다 자란 양(머튼)을 쓸 경우다. 그나마 소스를 잔뜩 발라 익힌 직후에 먹으면 참을 만한데, 식으면 고약한 냄새가 터져나와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서민들까지 즐기는 나라에선 그 냄새에 길들여져 괜찮지만 한국에선 웬만큼 비위가 좋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렵다. 

갈빗대가 붙은 채로 화덕에서 구워져 나오는 '샤슬릭 립'.

요즘은 한국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내는 양고기 전문점이 늘었다.'샤슬릭'만해도 1년 이하의 어린 양을 써서 냄새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샤슬릭의 대표 메뉴인 가슴부위 갈비(프렌치랙)를 화덕에서 구워낸 '샤슬릭 립'과 '샤슬릭 스테이크' 그리고 '티본스테이크'. 풍부한 육즙도 놀랍지만 양고기를 연상시키는 구린내를 맡을 수 없었다. 함께 맛을 본 지인은 "돼지고기의 기름진 맛에 소고기의 식감"이라는 소감을 남겼다. 양고기, 이제 냄새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는 고급 요리가 된 것이다.


■한국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샤슬릭'은 히브리어로 '양'(羊) , 러시아어로 '꼬치구이'를 뜻한다. 러시아식 양꼬치라는 의미이지만 갖춘 메뉴를 보면 다국적 퓨전 요리다. 러시아식에서 출발했지만 피자와 파스타는 물론이고 인도 커리에도 맞춰 내고, 심지어 한국인 입에 맞는 육회로도 개발됐다.

"양고기 자체의 풍미를 살리기 위해 따로 양념을 하지 않습니다." 갈비에 대한 설명이다. 양갈비는 어깨갈비(숄더랙)와 가슴갈비로 나뉘는데 배 가까이 비싼 가슴 쪽만 쓴다. 육즙이 빠지지 않도록 마리네이드를 해서 이틀 동안 숙성하고, 소금과 후추만 뿌려서 화덕에서 구워낸다고. 양고기 특유의 냄새를 감추기 위해서 민트 소스가 사용되는 게 보통이지만 한국인이 좋아하는 고르곤졸라 크림을 찍어먹게끔 내는 센스가 있다.

샤슬릭의 이미남 셰프는 "양고기에 익숙지 않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요리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선한 양고기에 프렌치소스를 곁들인 육회요리 '후레쉬 바라니나'도 그런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 
난에 싸먹는 '램 커리'.

안심과 등심을 동시에 맛 볼 수 있는 티본스테이크, 양고기를 토핑한 '샤슬릭 피자'와 프렌치랙을 올린 파스타, 양고기를 넣어 만든 인도식 카레 '램 커리'…. 샤슬릭의 메뉴는 실험적이지만 묘하게 우리 입맛에 맞다.

"다 좋은데 가격이…."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수입되고, 또 비싼 부위를 쓰는 탓에 가격이 다소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있단다. 이 때문에 이 셰프는 "삼겹살집처럼 양고기 전문점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유통 구조가 제대로 형성되고 가격도 합리적으로 조정되면 지금보다는 훨씬 대중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샤슬릭 마린시티점에 앞서 중동점이 문을 열었는데, 같은 상호를 쓰지만 콘셉트가 제각각이어서 메뉴와 가격도 다르다. 중동점은 양고기 요리 자체에 집중하는 반면 마린시티점은 대중의 기호에 맞춘 캐주얼이 특징이라고.


■드라이한 레드와인, 맥주로 입가심을

기름진 양고기를 먹으려면 중간중간 입가심이 필요하다. 유럽에선 단연 와인이다. 와인 컨설턴트 고창범 씨는 "보디감이 있고 드라이한 레드와인이 양고기 특유의 맛을 잡아 준다"면서 허브향과 매콤한 후추의 풍미가 있는 프랑스 미네르브와 샤토 뇌프 뒤파프 와인을 추천했다. 그는 또 단맛이 강한 술은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맥주라면 어떨까? 중국식 '양뀀'이 유행하는 탓에 '양꼬치에는 칭따오맥주'가 정석처럼 굳어지고 있다. 하지만 청량감만 강한 라거 맥주로는 2% 부족한 느낌이 있다. 쌉쌀하면서도 드라이한 게 더 끌리는 것이다.

샤슬릭 측은 와인 외에도 독일 밀맥주와 러시아 맥주 발티카를 갖췄다. 러시아 최대 맥주 브랜드인 발티카는 9종류가 있는데, 그냥 1번부터 9번까지 번호로만 불리는게 특징. 이 중 샤슬릭에 있는 3·6·7·9번을 골고루 들이켜면서 양고기를 즐겼더니 가게 밖으로 펼쳐지는 해운대 바다와 광안대교의 멋진 풍광이 점점 아득해졌다.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아델리스상가 106, 107호. 051-747-4922. 샤슬릭 립 5만 2천800원, 샤슬릭 스테이크 5만 9천400원, 샤슬릭 피자 2만 8천600원, 램 커리 1만 9천800원, 램 찹 브루스케타 1만 3천 원, 램 크림 파스타 2만 8천600원, 램 토마토 파스타 2만 6천400원.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사진=블로거 '챨리'(blog.naver.com/lim8575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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