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우동은 가라' 별미가 한 그릇에…

입력 : 2014-02-06 07:53:02 수정 : 2014-02-06 14: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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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인가? 짬뽕인가? 서면 '하루'의 대표메뉴 '하루멘'은 사골 곰국에 해산물이 어우러지고, 야채가 듬뿍 들어간다. 제법 맵기까지 하다.

"우동을 매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지인이 있다. 그는 우동이 먹고 싶을 때는 원도심으로 '우동 순례'를 떠난다. 삼미우동, 명락우동, 일광집, 중앙메밀, 18번완당, 카마타케제면소…. 세월의 더께가 앉은 노포가 즐비하다. "부산 사람들이 특히 우동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왜 그럴까요?" 즉답을 하지 못한 채 우물쭈물 했지만 맛있는 우동가게가 속속 문을 여는 걸 보면 진짜 그런 모양이다. 최근 부산에 생긴 우동집 두 곳의 맛을 음미했다. 원도심에서 제법 멀다. 서면의 '하루'는 사누키우동과 일본정식을 내세운다. 대연동의 요리스튜디오 '구드미엘'은 돌연 '한국식 우동' 전문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우동은 국물, 면, 고명의 조합이지만, 역시 국물맛이 으뜸이다. 후루룩…. 뜨끈한 우동 국물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서면 '하루'

일본 우동 '돈멘' 한국식 재창조
사골 곰국에 해산물·채소 듬뿍
훗카이도 명물 창창야키도 별미

서면 영광도서 위에 올초 문을 연 '하루'는 일본어로 봄(春)이라는 뜻이다. '사누키우동과 일본 정식'을 내세우고 있다. 사누키란 일본 우동의 원조인 가가와 현의 옛 이름. 그래서 일본 정통 우동이겠거니 생각했지만 고정관념이 깨지는 재미가 쏠쏠하다.

간판 메뉴인 하루멘은 세숫대야 크기 그릇에 담겨 나온다. 지름이 32㎝다! 양배추 따위 채소가 듬뿍 올려지고 사이사이 닭고기를 찢어 꾸미로 올렸다. 대체 이게 우동인가? 짬뽕인가?

일본 후쿠오카식 우동의 원조로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돈멘'과 비주얼이 비슷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돈멘을 벤치마킹하긴 했는데 그릇 크기만 빼놓고는 재창조 수준으로 바꿨단다. 사골을 곤 곰국에 해산물이 어우러지고, 채소가 듬뿍 들어간다. 매운맛은 고춧가루로 조절하는데, 매운 걸 주문하면 콧등에 땀깨나 맺힌다. 파스타면으로 비빔국수를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육수와 고명이 달라지면서 '부산 돈멘'에서 '하루멘'으로 진화 중이다.
 
계절 메뉴로 내놓는 굴우동에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동과 굴의 조합은 굉장히 한국적 발상이다. 게다가 '우동굴'이라 해도 될 정도로 굴을 듬뿍 넣었다. 물론 우엉튀김을 얹은 정통 일본식도 있으니 입맛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서면 '하루'의 시미즈 고지 요리사가 홋카이도 명물 창창야키를 선보이고 있다.

우동의 자유로운 변주는 한·일 요리사들이 협력한 결과다. 이 중 홋카이도 출신 시미즈 고지 씨가 만들어내는 홋카이도 명물 창창야키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이란다. 매서운 한파와 싸우며 바다에서 고기 많이 잡으라고 선주가 어부들에게 해주는 일종의 에너지 음식. 갓 잡은 연어에 감자와 호박, 콩나물, 양배추 등 채소를 수북히 올려 찜냄비에 끓이는 식인데,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전골 느낌으로 낸다. 이 맛을 본 박상현 음식칼럼니스트는 "아주 따뜻한 음식"이라고 평했다. 요기나 술안주 모두 안성맞춤이다.

'하루' 활용 팁. 하루멘은 혼자서 먹기에 양이 많다. 두세 명이 김밥이나 유부초밥을 곁들이면 마침맞다. 창창야키를 먹고 남은 국물에 밥을 볶을 것. 밥은 공짜다! 김치는 원할 경우에만 제공. 각이 지지 않고 둥글게 원통형으로 만 유부초밥이나 콩비지와 두부로 만든 일본식 만두는 별미.

'하루'는 김정길(70) 전 장관이 부인의 이름으로 연초에 개업했다.저녁은 이자카야 식으로 바뀐다.

※부산 부산진구 서면문화로 26(부전동) 2층. 유원골든타워 건너편. 하루멘 1만 5천 원, 창창야키 2만 원, 튀김우동 5천 원, 카레우동 6천 원, 생굴우동 7천 원, 두부 만두 1개 1천500원. 051-809-2626.



우동의 생명은 국물! 대연동 '구드미엘'은 일본식 가다랑어포(가쓰오부시) 대신 멸치를 기본으로 한 한국식 우동을 표방한다.
대연동 '구드미엘'

요리스튜디오가 우동 전문점 변신
전국 맛집 돌며 비장의 육수 개발
멸치 기본, 수수하고 부드러운 국물

요리스튜디오가 우동 전문점으로 변신….

처음 소개를 받을 때부터 솔깃했다. 경성대 옆 푸르지오아파트 상가의 '구드미엘'. 원래 엘지메트로 아파트 단지에서 가정 쿠킹클래스를 하던 송미애 요리연구가가 밖으로 나와 요리 스튜디오를 차린 곳이다. 명품 도시락, 파티 캐이터링 쪽에 주력하다가 돌연 지난해 12월 '전통 한식 우동'집으로 변했다니 대체 어떤 맛으로 승부수를 띄웠을까.

가게에 들어서니 목조 인테리어와 조명이 은은하다. 중앙을 차지한 8인용 식탁은 쿠킹 클래스 시설 그대로다. 여느 식당과는 다른 느낌이다. 뜻밖에 손님을 맞은 이는 와이셔츠 차림에 앞치마를 두른 남편 전용주(65) 사장이다. "아내의 요리스튜디오에 무임승차했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육수를 끓이고 튀김과 초밥도 만들고 서빙까지 하는 '구드미엘'의 전용주 사장.

나이 들어 요리에 관심이 가더란다. 대학 평생교육원을 다니며 한식조리사, 제과제빵 자격증 등을 섭렵했다. 자격증을 따고 보니까 평소 좋아하던 우동가게를 차릴 엄두를 냈다. 물론 가족의 열렬한 지원이 힘이 됐다고.

그는 우동의 생명은 국물이라고 했다. 우동 좋아하는 사람들이 국물을 남기지 않는 이유라고 했다. 그런데, 일본식은 가다랑어포(가쓰오부시)가 빠지지 않는데 이 맛은 우리나라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전국의 맛있다는 집, 줄 서서 먹는 집을 다 다녀보고, 일본 레시피를 비교하면서 연구한 끝에, 멸치를 기본으로 하고 디포리, 무, 소금, 설탕 등을 첨가한 비장의 육수 레시피를 완성했다.

요리스튜디오를 활용해서 다양한 연령대의 시식을 거치는데 5개월이 걸렸다. 이렇게 한국식 우동과 모밀, 김초밥의 기본 메뉴가 완성됐다고. 우동 국물은 달콤짭조름하게 한껏 멋을 부린 일본식과 달리, 수수하고 가볍고 부드럽다.

취재차 오전에 전화를 넣었더니 "전화 받을 틈도 없어요!"라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도 그럴 것이 오전 7시부터 육수를 끓이고 튀김과 유부초밥까지 만들어 오전 11시부터 손님 받을 준비에 정신이 없다. 그는 부산상의 새마을연수원장과 전무이사를 지냈고 경제학 박사로 여러 대학에 출강했다. 지인들이 "어떻게 우동집을 차릴 용기를 냈느냐"고 궁금해하면 "물론, 우동이 좋아서!"라고 답한다. 실은 한 가지 더 이유가 있다. 그는 적은 자본으로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그의 노하우를 전수해서 도움을 주겠다는 포부를 키워가고 있다.

※부산 남구 수영로 325번길 12 푸르지오 상가 103호. 우동 5천 원, 어묵우동 6천 원, 모듬우동 7천 원, 채반 모밀 6천 원, 김유부초밥 3천 원. 오전 11시∼오후 8시. 051-624-7192.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사진=강원태 기자 w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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