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고기 깍둑썰기가 유행이라고?"

입력 : 2014-03-27 08:00:06 수정 : 2014-03-27 14:2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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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목장의 '깍두기 안창살'

차돌박이는 왜 얇게 썰어 낼까? 단단한 지방이 차돌처럼 박혀 있다 해서 붙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살이 몹시 질겨서다. 복어와 마찬가지 이유로 얄따랗게 썰어 내는데, 이렇게 얇게 굽지 않으면 씹기가 당최 힘들고 자칫 뱉어내야 할지도 모른다. 또 소고기는 오래 굽지 말라고 한다. 육즙이 빠지면 딱딱해져 풍미를 잃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고기는 입속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듯 씹히는 걸 최고로 친다. 생고기로 구울 때 적당히 얇게 자르고, 살짝 익혀 흥건하게 배는 육즙과 씹는 맛을 고루 즐기는 까닭이다.

한데, 요즘 소고기 깍둑썰기가 유행이다. 한 입 크기라고 해도 될 만큼 큼직해서 과연 속까지 잘 익겠나 싶을 정도다. 또 어떤 곳은 두툼한 스테이크 모양으로 차려내기도 한다. 생고기를 왜 그렇게 두껍게 썰어 낼까, 오래 구워야 할 텐데 그러면 질겨지는 것 아닌가?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이게 요즘 소고기를 즐기는 트렌드다. 두께와 식감에 대한 고정관념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최근 메뉴를 개편해서 깍둑썰기를 내고 있는 소고기 전문점 연산목장과 선정생한우에서 '두꺼운데도 부드러운' 묘한 맛을 음미했다.

■ 연제예식장 앞 '연산목장'

충분히 익혀도 육즙 그득
부드러운 씹힘도 그대로

■안창살은 깍둑썰기가 제격

연산목장의 '깍두기 안창살'

안창살은 소고기 갈빗살 중의 한 부위다. 허파를 떠받치고 있는 길쭉한 모양의 횡격막 근육이다. 신발의 안창처럼 길쭉한 모양이라서 안창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돼지고기 갈매깃살의 소고기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소 한 마리에서 몇 ㎏ 나오지 않는 특수 부위인데, 육즙이 진해서 소고기의 풍미를 즐기기에 제격이고 조직감이 있어서 씹는 맛도 좋다. 소고기 마니아들이 꼽는 최상 부위 중 하나다.

한데, '안창살 깍두기' 메뉴를 내건 소고기 전문점이 늘어나고 있다. 안창살을 커다란 정육면체 모양으로 썰어 낸다. 껍질 벗겨내고 나면 선홍빛이다. 생살을 석쇠에 올려 바로 굽는데, 맛도 맛이지만 모양이 재미있어서 눈부터 즐겁다.

연제예식장 앞 연산목장은 지난해 11월부터 '깍두기 안창살'을 내걸고 있다. 안창살을 다듬고 나면 가로로 길쭉한데 세로가 그다지 두껍지 않기 때문에 세로로 칼을 넣기 보다는 깍둑썰기로 썰어 내는 게 가장 어울린다고 했다.

일부러 충분히 익혀 봤는데도 육즙이 그대로 남아 있고, 부드럽게 씹히는 맛도 여전하다.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갈빗살을 나중에 먹었더니 마치 '급'이 낮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 사람의 혀는 참으로 간사하다 해야 할까. 안창살, 과연 명불허전이다! 실제 갈비보다 안창살이 더 많이 나간다고 했다.

그런데 왜 진작 깍둑썰기로 즐기지 않았을까?

"하루만 지나도 쉬이 변색되거든요. 그날 판매가 안 되면 다시 손님상에 내놓기 어려우니…."

물량회전이 빠른 집이라야 안창살 깍두기 메뉴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안창살의 풍미가 뛰어난데다 '깍두기'가 주는 친근감 덕분에 반응이 좋다고 했다. 원래 한우라면 가격이 제법 비쌀 텐데 호주산이라 저렴한 것도 강점이다.

※부산 연제구 고분로 236. 연제예식장 건너편. 051-752-0023. 깍두기 안창살 100g 6천600원(120g 8천 원), 뭉탱이소갈빗살 100g 5천700원(140g 8천 원).


■ 연산역 주변 '선정생한우'

숙성·칼맛 '양날의 무기'
'알심 스테이크'로 고소함 만끽

■숙성 안심·등심까지 깍두기로

선정생한우의 '알심 스테이크'와 '선정깍두기'.

안창살뿐 아니라 안심이나 등심 깍둑썰기도 등장했다. 연산역 1번 출구 골목 안 '선정생한우'는 지난 2월 메뉴를 개편하면서 '숙성'과 '칼맛'을 무기로 안심과 등심을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내고 있다.

부위와 등급에 따라 2~3주 숙성을 거치는 게 포인트. 건식과 습식 숙성을 병행해서 살결을 부드럽게 만들고, 감칠맛이 살아나게끔 만든다. 막을 제거하고, 결을 살리는 등 칼맛도 제대로 넣으니 막썰기와 '급'이 다르단다.

등심과 안심을 섞어서 깍두기로 내는 이유가 있다. 기름 맛이 좋은 등심과 고소함이 뛰어난 안심이 어우러져 상승작용을 일으키게끔 한 의도가 담겨 있다. 주로 젊은 층이, 술안주 삼아 주문하는 비율이 높다고.

선정생한우는 한걸음 더 나아가 서양식 스테이크를 연상시키는 '알심 스테이크'를 낸다. 아예 메뉴에 '샤토 브리앙'(고급 안심스테이크)이라고 씌어 있다. 안심 중에 가장 좋은 부위만 골라 숙성시킨 것인데 꽃등심에 비유해서 '알심'이라는 이름을 붙였단다. 두께가 심상찮다. 커다란 깍두기 예닐곱 개가 연합군으로 뭉쳐 "날 구워 보시오!"하고 외치는 것 같다. 이런 비주얼이 숯불 석쇠에 올려진 모양 자체가 굉장히 낯설다.
두껍게 썰어 낸 숙성 안심·등심은 오래 구워도 질기지 않고 부드럽다.

"충분히 익히세요!" 고기에 불을 가하는 건 더 맛있게 하려는 것이지만 보통 접하기 힘든 두꺼움에 맞닥뜨리자 '과연 이 생고기가 구워지겠나?' 싶었다. 난처한 표정을 읽었는지 되레 자신만만하다. 오래 구워도 육즙과 고소함이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이다. 만약 숙성을 하지 않았다면? 두꺼운 안심과 등심은 불판 위에서 구두가죽처럼 질겨지고 말았을 것이다. 결과는 그 반대였다. 눅진하면서도 고소한 것이 새로운 식감을 선사한다. 시즈닝을 얹은 것과 그냥 생고기 중 선택할 수 있다.

※부산 연제구 월드컵대로145번길 14. 연산역 1번 출구 첫 번째 골목. 051-852-2662. 선정 깍두기(숙성 등심·안심) 100g 1만 5천900원, 알심스테이크 샤토브리앙 100g 1만 9천900원.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사진=강원태 기자 w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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