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여기 고깃집·횟집 맞나요? 고정관념 깬 상차림에 꽂히다

입력 : 2014-04-17 07:51:41 수정 : 2014-04-17 14:2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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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니돈'의 '지리산흑돼지정식' 상차림. 반찬 가짓수에 한 번 놀라고, 생고기와 양념갈비를 무한리필해 주는 데 또 놀란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광안리해수욕장 입구에 걸린 문구다. 진짜가 되려면 달라야 한다는 뜻일까? 그 의미를 곱씹게끔 하는 표현이다. 물론 그래야지, 남들과 다르게…! 근데, 이게 말은 쉽지 실제로는 어렵다. 까다로운 입맛과 주머니 사정 등 고차방정식이 적용되는 외식업계라면 더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차별화되는 상차림으로 주목되는 두 곳을 살펴봤다. 50가지 반찬과 함께 지리산흑돼지를 무한리필해 준다. 가게는 얼마를 받아야 하며, 손님은 또 얼마나 먹어야 만족할까? 또 다른 곳은 횟집과 일식집의 미묘한 경계를 넘나들며 고도 숙성한 생선회를 내고 있다. 4일쯤 숙성한 광어, 줄가자미 선어회나 일주일 숙성한 고등어초절임. 흐물흐물해지지 않았느냐고? 그래서 고정관념을 깨는 상차림인 것이다.


지리산 흑돼지 '도니돈'

고깃집에 반찬이 무려 50가지
함양산 흑돼지 생고기 무한리필
우윳빛 국밥 여성 입맛에도 '딱'


상다리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부산도시철도 3호선 미남역 1번 출구 앞 지리산 흑돼지 전문점 '도니돈'. '지리산흑돼지정식'(1인분 1만 9천 원)을 주문했는데 먼저 50가지 반찬그릇이 식탁을 가득 메웠다.

나물과 장아찌, 김치류에다 맥주 안주에 걸맞은 주전부리들. 여기에 큼직한 동래파전을 부쳐 내왔다. 눈이 휘둥그레진다. 손님 입장에선 반찬 그릇을 비워서 쌓는 재미가 쏠쏠하다. 메뉴가 계절에 따라 바뀌니 상차림이 매일 같지는 않다고.

하지만, 고깃집에서 공짜 곁들이로 배부르자고 덤빌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고기는 어떤지 살폈다. 오호, 진짜 함양에서 가져오는 지리산 흑돼지 생고기다. 근데, 이걸 무한리필해 준다. 키우기 까다롭고 비싼 흑돼지 고기를 마구 내준다니 정말일까?

"처음엔 '부족하다고 하시면 더 드리겠다'고 시작한게 무한리필로 알려지는 바람에 그냥 그렇게 굳어졌어요." 

'도니돈' 도은경 사장이 지리산흑돼지를 차려내고 있다.

도은경(25) 사장은 "부모님과 함께 셋이서 가게를 운영하니 인건비 부담이 적은 게 장점"이라고 했다. 그래서 무모하게 보이는 영업방침을 고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흑돼지정식'은 코스요리처럼 나온다. 생고기와 양념갈비를 순서대로 먹고 나면 밥과 된장찌개로 마무리한다. 별도로 흑돼지 돼지국밥을 주문할 수 있다. 흑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가져오다 보니 부산물을 활용할 수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흑돼지 사골로만 육수를 끓여 내니 육수가 우윳빛깔이다. 잡뼈를 넣지 않고 끓여 뽀얗고 깔끔하게 만드는 돼지국밥의 최신 장르를 따르고 있으니 젊은 층, 여성들의 입맛에 맞는다.

오겹살, 목살, 양념갈비 같은 단품메뉴를 다른 고깃집처럼 취급하고 있지만 '흑돼지정식'이 유명해지는 바람에 지금은 '흑돼지정식' 비중이 커졌다고. 상차림 준비 때문에 최소 하루 전에 예약해야 한다.



※부산 동래구 아시아드대로 205(온천동). 051-507-7668. 지리산흑돼지정식 1만 9천 원, 흑돼지 생고기 모둠세트(오겹살, 목살, 특수부위) 400g 2만 원, 오겹살 150g 8천 원, 목살 150g 7천 원, 특수부위(항정, 가부리, 갈빗살) 150g 9천 원, 양념갈비 7천 원, 점심특선 흑돼지불고기백반 5천500원, 흑돼지국밥 5천 원. 오전 11~오후 11시. 



'해(海)'에서 차린 모둠생선회. 사흘 이상 숙성한 광어 지느러밋살과 줄가자미는 씹는 맛과 감칠맛 모두를 즐길 수 있다.
빙장 숙성회 '해(海)'

자연산 광어 사나흘이나 숙성
수분 빠지고 탄력도는 쑥쑥
씹는 맛·감칠맛 모두 즐길 수 있어


'펄떡이는 활어회!' 부산사람들의 취향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눈앞에서 잡아서 회를 떠야 직성이 풀린다. 졸깃하게 씹히는 맛을 최고로 친다! 눅진하게 입안에서 녹는 일본식 선어회와 구분되는 경계이기도 하다.

만약, 회를 주문했는데 사나흘 숙성된 광어나 줄가자미(속칭 이시가리)가 나온다면? 또 일주일째 숙성한 고등어초회(시메사바)를 차려낸다면? 모든 고기는 시간이 지나면 단백질 결합의 끈이 느슨해진다. 살점이 물컹해졌을 텐데 무슨 맛으로 먹나? 하고 생각하기 십상일 터.

부산도시철도 연산역과 시청역 사이에 위치한 '해(海)'는 특이한 계절생선회를 차려 낸다. 이 집 김선일 사장은 다케, 만수스시 등 부산의 유명 일식당에서 경력을 쌓은 베테랑 일식요리사다. 지난해 처음으로 자신의 가게를 열더니 '진한 숙성의 맛'을 들고나왔다.
'해(海)' 김선일 사장이 숙성회를 장만하고 있다.

"큰 배에서 빙장 상태로 들어오는 자연산 광어 등을 씁니다. 이걸 사흘, 나흘씩 숙성하면 얼마나 맛이 살아나는데요!"

그는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광어를 비롯해 농어, 줄가자미, 민어 가리지 않고 같은 저온 장기 숙성 방식을 고수한다고 했다. 수분이 빠지게 하고 탄력도를 끌어올리는 그 나름의 관리법이 있다. 숙성에서 나오는 이노신산 덕분에 고소한 맛이 상승하고, 좋은 식감이 유지된다는 설명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요즘은 일식집은 물론 횟집조차 활어를 잡은 뒤 4~6시간 정도 숙성하는게 일반화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모둠회를 주문했다. 사흘 이상 묵은 광어 지느러밋살과 줄가자미를 비롯해 일주일된 고등어초절임이 차려졌다. 참치, 새조개, 연어도 따라 나왔다. 빙장된 생선을 오래 놔뒀다면 흐물흐물할 거라는 선입견은 무너졌다. 그의 설명대로 육질을 씹는 맛과 감칠맛 모두를 즐길 수 있었다. 활어의 졸깃한 식감과는 다른 장르로서의 독특한 풍미가 느껴졌다. 평소 익숙한 '신선'과는 거리가 먼 숙성회를 우물우물 씹으며, 숙성의 효과를 곱씹어 생각했다.

이 집은 없는 게 많다. 수조가 없고 곁들이가 없다. 상차림새는 일식을 닮았지만 가게는 깔끔한 횟집 분위기다. 그럼 대체 정체성이 뭔가?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다. 그는 "아직 연구단계"라고 했다. 그의 생선회 맛의 도전이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 지 궁금하다.



※부산 연제구 신촌로 8-1. 모둠회 대 5만 5천 원, 중 4만 5천 원, 소 3만 5천 원, 참다랑어·밍크고래 각 5만·7만·10만 원. 010-8547-3298.

글·사진=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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