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문화카페 '클레어' 문화의 향기에 오감이 즐겁다

입력 : 2014-06-12 07:55:20 수정 : 2014-06-16 09: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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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카페인 줄 알았더니… 연주회장에 갤러리까지

"카페가 잘 되면 더 다양하고 문턱이 낮은 문화기획을 해보고 싶어요!" 서면 목원치과 이명호(오른쪽)·임희숙 원장 부부가 서면 문화로에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는 문화카페 '클레어'를 차렸다.

부산의 중심가인 서면 영광도서 앞 거리 풍경이 깔밋하게 바뀌었다. 67억 원을 들여 차도와 보도를 다듬었다. '서면 문화로'가 조성된 것이다.소비문화는 있으되 문화소비는 없다…. 이런 자조 섞인 경험담이 떠오른다고 명칭에 어색해하지만 말자. 최근 이곳에 수상한 카페가 하나 생긴 뒤로 거리가 달라 보인다.

베이커리 카페 '클레어'. 영광도서 바로 옆 3층 건물이라 눈에 띈다. 브런치와 커피를 기대하고 들어갔다가는, 어이쿠! 놀라움의 연속이다. 2층 카페는 165평이라 무지 넓다. 카페 안팎과 3층에는 120석 규모 연주회장 '소민아트홀'과 갤러리 4개가 떡하니 마련되어 있다. 전체 넓이가 500평쯤 되니 어마어마하다는 느낌이 팍팍 든다! 문화카페를 표방하는 곳이 흔하지만 모든 장르를 다 포괄한다는 측면에서 가히 백화점급이다. 문화가 숨을 쉬는 정도가 아니라 활개를 친다고 해도 되겠다.

누가 이런 무모한 일을 벌였을까? 영광도서를 사이에 둔 목원치과 이명호(61)·임희숙(59) 원장 부부가 주인공이다. 문을 연 지 한 달. 예상하는 그대로 출발부터 적자다. "은퇴 후의 쉼터를 만들려고 시작한 게 이렇게 커질 줄 몰랐어요. 당분간 수지타산은 생각하지 말아야죠."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빵 굽고
호텔 일식당 요리사를 주방장으로…
문화전도사 나선 목원치과 부부의사
"8월까지 다양한 공연 전시 계획 빼곡
문화예술의 문턱 낮추는데 힘쓸 것"



■"가족들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카페의 대표 메뉴인 브런치.
1층에서 직접 빵을 구워 낸다. 그래서 일단 베이커리 카페다. 서면 한복판에 부부 치과를 개업한게 1984년. 31년째다. 그 세월을 환자 치료만 해 온 부부가 막상 외부 도움 없이 카페를 차리려 하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수제 빵집을 수소문한 끝에 기장의 한 가게를 삼고초려해 기술을 전수받았다. 빙수에 들어가는 팥을 구하러 중국 현지조사도 불사했다. 수입되는 저급품이 아니라 상급품을 찾기 위해서다. 오미자·매실차는 생산지에서 수확해 바로 담아 쓴다. 이동 과정의 산패를 막기 위해서다.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만든다는 마음가짐이다. 예컨대, 그날 구운 빵이 팔리지 않고 남으면 직원들끼리 먹는다. "신뢰하는 빵을 만들기 위해서!"

롯데호텔부산 일식당 모모야마에서 멀쩡히 일하던 요리사까지 스카우트해서 주방을 맡겼다. 인테리어조차 업자에게 맡기질 않고 손수 했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그렇게 6개월이 후다닥 지나가고 드디어 문을 열었다. "카페가 성공해야지요. 그래야 문화사업이 지탱되거든요." 문화에서 난 손해를 카페에서 만회하겠다는 생각이다.지난달 30일 저녁 소민아트홀에서 베이스 바리톤 마르셀 정 초청 개관 기념 리사이틀이 열렸다. 120석은 꽉 찼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유료 공연이었지만 자선행사였다. 입장료 수입 전액은 기부됐다. "공연에 오신 분들이 카페에서 매출을 올려 주시면 되지요." 

지난달 30일 소민아트홀 개관기념으로 기획된 베이스 바리톤 마르셀 정 초청 리사이틀.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카페에 앉았는데 관객이라서 그랬는지 주문을 재촉하는 법이 없다. 너무 장삿속이 없는 거 아닌가? 슬그머니 걱정이 될 정도다.


■먹고 마시는 일상다반사에 문화예술이

1970년대 갤러리가 없었던 시절, 화가들은 다방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지금으로 치자면 갤러리 카페에 해당되겠다. 작가 김영주(66)는 1972년 광복동의 보리수 다방을 빌려 첫 개인전을 치렀다. 그때 다방 벽면에 걸렸던 작품들이 42년 만에 빛을 본다. 지난 11일부터 영도 영선동 '달뜨네'에서 초대전을 시작해서다. '달뜨네'는 시락국밥집이면서 문화공간이다. 손바닥만 한 가게 벽면은 항상 작품으로 빼곡하다. 그림을 감상하면서 시락국밥을 드셔 보시라. 영혼의 포만감이 따른다!

동구 수정동 산복도로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산만디'에 가면 어쿠스틱 밴드에서 성악까지 항상 선율이 흐른다. 수영구 망미동 수영강변의 레스토랑 '엘 올리브', 공연과 전시를 아우르는 갤러리카페 '움'…. 먹고 마시는 일상 다반사에 문화를 입히는 곳에 가면 감성이 춤을 춘다. 유어예(遊於藝). 차 한 잔, 밥 한 끼도 대충 때울 수는 없다. 이런 곳은 자꾸자꾸 생겨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면 문화로의 카페 클레어는 주목된다. 교통접근성이 좋고, 종합적이다. 이곳에 앉아 있으면 사방팔방에 볼거리가 널렸다. 사진갤러리, 공예전시관, 하늘정원 갤러리, 미술전시관…. 구수한 빵 냄새, 쌉쌀한 커피향이 그윽한 곳을 어슬렁거리며 작품들을 감상해 보시라. 문화의 향기로 오감이 즐겁다.


■문화예술의 문턱을 낮추고파

"좋은 음대 나와도 무대에 설 기회를 얻지 못해요. 평생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할 곳이 없단 말입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이명호 원장은 이 대목에서 울분이 섞였다.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평소 문화공연을 즐기고 싶었지만 진료를 마친 뒤 문화회관 같은 곳에 가려면 시간이 맞질 않았다. 수용자의 입장에서도 높은 문턱이 아쉬웠다. 창작하는 이들과 향유하려는 사람들이 만나는 문턱이 낮은 공간을 만들자! 주변에서 "절대 하면 안 된다"고 뜯어말렸지만 과감하게 도전했다.

평소에 미술애호가라는 점도 작용했고, 게다가 자기 건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입주 기업들이 내던 월세 수입을 포기만 하면 됐으니까요." 웃음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안정적인 수입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사업을 벌이는 게 쉬운 결정을 아니었을 터.

자선음악회, 재능기부 봉사, 신예의 발표 무대…. 음악회라고 거창하게 옷 입고 갈 필요 없고, 누구나 쉽게 와서 볼 수 있는 미술전시회가 있는 그런 열린 공간으로 꾸며 가고 싶다. 전시·공연이 아니라도 인문학 강연이나 모임에도 장소를 개방할 예정이다.

이런 노력이 통해서일 텐데 부산 중견화가 25인 초대전이 개관특별전으로 마련되는 등 8월까지 굵직굵직한 공연전시 계획으로 빼곡하다.

'65세 은퇴'를 준비하고 있던 치과의사 부부는 인생 2막의 둥지로 문화 카페를 선택했다. 이제 막 커피보다 진한 문화의 향기에 취하고야 마는 복합문화공간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제 맛과 멋으로 채색하는 것만 남았다.

※부산 부산진구 서면문화로 14(부전동). 영광도서 옆. 카페 클레어(051-991-1100), 소민아트센터(051-991-2200). 아메리카노·샌드위치 4천 원, 라테·오미자·매실차 각각 5천 원, 클레어빙수 7천 원, 브런치 1만 5천 원.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사진=강원태 기자 w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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