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파는 이태리 식당, 피자 굽는 분식집?

입력 : 2014-09-18 07:48:02 수정 : 2014-09-23 10: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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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포차 셰프리'의 이재길 오너셰프가 손님상에 해물스튜를 내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파스타와 피자, 스튜를 주 메뉴로 내세운다. 내로라 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수석셰프 출신이 요리를 한다. 그런데 소주를 파는 '포차'(포장마차)를 표방한다면? 화덕에서 피자를 구워내면서 스스로 '분식집'으로 정체성을 규정하는 곳도 있다. 이 집에 가면 가끔 회국수를 고르곤졸라 피자에 얹어 먹는 장면까지 목격할 수 있다. 연산동 '이태리 포차 셰프리', 대청동 '삼국인'. 정통을 고집하지 않고 파격적으로 문턱을 낮춘 게 닮았다.어색할 것 같지만 이색적인 맛의 변주가 즐거운 게 공통점이다.


■연산동 '이태리 포차 셰프리'

해물홍합찜·피자·파스타
부담 없는 소주 칵테일과 궁합

'어떤 와인을 주문해야 하나? 코스를 시키지 않으면 왠지…. 가격이 참 내!'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한 번쯤은 맞닥뜨렸을 상황이다. 이런 난처함을 말끔히 해소한 곳이 있다. 스튜를 찜으로 부르고, 토마토소스에 누룽지와 해물을 섞어 마치 찌개처럼 끓여 내니 소주 안주로 손색이 없다.

연제예식장에서 과정교로 가는 길에 있는 '이태리 포차 셰프리'. 이탈리아 요리와 한국식 포차가 대체 어떻게 접점을 찾았단 말인가? 게다가 '엘 올리브' 수석셰프와 '꼴라메르까토' 총괄셰프 출신인 이재길(39) 셰프가 차린 가게라니! 정통파 출신의 파격인 셈이라 궁금증이 증폭된다.

포차라고 내건 가게에 들어섰더니 파스타, 피자, 스튜, 게다가 와인 리스트까지 제대로 갖춘 멀쩡한 이탈리아 밥집이고 술집이다. 이 오너셰프는 "무겁지 않은 곳, 떠들며 먹고 마실 수 있는 '비스트로'의 느낌을 살려서 이름에 '포차'를 내세웠다"고 말했다.

먼저 리코타치즈샐러드를 주문했다. 우유 알갱이가 씹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신선하다. 가게에서 만든 것이라 그렇다. 한쪽에서는 감자를 썰어 튀기고 있다. 이 수제 포테이토칩은 이 집의 인기 곁들이다.

스튜 메뉴가 재밌다. 매운해물홍합찜, 해물스튜, 갈비찜 중에 뭘 먹을까? 누룽지와 짧은 파스타면으로 포인트를 준 해물스튜를 골랐다.

싱싱한 해물까지 어우러졌으니, 술안주에 훌륭한 국물요리가 됐다. 굳이 와인을 주문할 필요가 없다. 부드러운 소주칵테일이 있다. 크랜베리를 섞은 '소랜베리', 토닉워터와 레몬으로 만든 '소닉워터'. 알코올 도수가 느껴지지 않으니, 이런 걸 '작업주'라 불러야 할까? 물론 그냥 소주를 주문해도 된다.

간 사과와 브뤼치즈를 얹은 애플브뤼치즈피자가 눈길을 끈다. 드물게도 나폴리식이다. 사나흘 숙성한 도(반죽)의 질감이 졸깃하다. 일부러 짧은 파스타면을 즐겨 쓰고, 색다른 피자를 차려 낸다. 음식의 질은 떨어뜨리지 않되 고정관념을 탈피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게다가 문턱을 낮췄으니 레스토랑에 서툰 아저씨, 아줌마들이 만만하게 즐길 수 있어서 좋다.



※부산 연제구 고분로 247. 리코타치즈샐러드 1만 5천 원, 애플브뤼치즈피자 2만 1천 원, 매운홍합찜 1만 8천 원, 해물스튜 2만 6천 원, 소주칵테일 7천 원. 오후 6시~오전 1시. 2·4주 일요일 휴무. 051-757-6127.



■대청동 '삼국인'

고르곤졸라 피자에 회국수 세트
동서양 맛이 절묘하게 어울려

'삼국인'에서는 고르곤졸라 피자에 회비빔국수를 얹어 먹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대청동 원불교부산교구 근처 '삼국인'. 깔밋한 외관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공관 앰프에 연결된 고색창연한 탄노이 스피커에서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있다. 온 벽면이 음반으로 채워져 있으니, 그럼 이곳이 카페? 헌데, 화덕이 떡 하니 가게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 피제리아(피자전문점)?

"분식집 개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차재운(43) 사장이 뜻밖의 설명을 내놓았다. 서면의 이탈리아 요리 전문학원 '알타쿠치나'본부장 자리를 그만두고 차린 게 분식집이라니. 이 집을 다녀간 사람들도 처음엔 '퓨전 이탈리아'라고 부르다가, 2%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나중엔 그냥 '이색 맛집'으로 부른단다.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가장 잘 나간다는 메인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주문을 넣었더니 즉시 반죽을 펴서 화덕에서 공갈빵을 구워내 왔다.

식전빵으로 입맛을 돋우고 있으려니 먼저 고르곤졸라 피자가 나왔다. 익숙하다. 그런데 이어진 회비빔국수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양푼이에 담긴 빨간 양념장. 분명 회국수다! 차 사장이 피자 위에 국수를 얹어 먹어 보라고 했다. "같은 밀가루라 통하는 게 있답니다." 동서양 맛의 어울림이다.

가게를 관통하는 숫자가 '3'이다. 피자와 면, 디저트를 각각 3종씩 갖춰 놓고 세트 메뉴를 각각의 세 가지로 구성한다.

프리 세트 메뉴를 택하면 맛의 조합을 만들 수 있다. 면은 크림치즈나 고추장을 얹은 라뽁이, 샐러드파스타가 있고, 피자는 퐁뒤 파르미지아노, 프리마베라 샐러드 중에서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 디저트 또한 초코무슬리요거트나 아포카토 등 세 가지를 갖췄다.

화덕피자를 기본으로 한자리에서 여러 나라의 분식을 즐길 수 있는 곳. 그래서 '분식집'이라는 그의 정의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부산시립교향악단과 부산문화관광축제조직위원회에서 기획 일을 하다가 요식업으로 전향한 그의 이색 경력이 이 같은 독특한 메뉴 구성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부산 중구 대청로90번길 3-1(부산근대역사관에서 보수동 방향 두 번째 블록 골목 아래. 메인 세트(고르곤졸라피자, 회비빔국수, 딥디시팝콘아이스크림) 1만 8천 원. 프리 세트(피자, 면, 디저트 각 1종 선택) 2만 4천 원. 단품 주문 가능. 오전 11시~오후 10시. 무휴. 051-242-3332.

글·사진=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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