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훈한 연말, 착한 밥집] 정성 담은 음식보다 따뜻한 건 이웃과 나누는 情

입력 : 2014-12-18 07:57:59 수정 : 2014-12-19 10: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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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지를 확실하게 표시한 '큰집'의 음식은 신뢰가 간다.

"올 한 해 잘 살아왔는가?" 연말이 다가오며 후회가 밀려온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답 없이 늘 반복되는 걱정도 하게 된다. 타산지석!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궁금해졌다. 주변엔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정성을 다해 좋은 음식을 만들고 이웃과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착한 맛집'을 찾아다녔다.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같은 밥 한끼라도 기분이 좋아졌다. 나를 대신해 좋은 일을 하는 '착한 밥집'을 만나니 고맙다는 인사가 절로 나왔다.

■ 큰집

쌀·김치·도토리묵·게장 등
이름난 산지 재료 맛깔난 음식
연말마다 바자회 수익금 기부


부산 중구 신창동의 한국전통음식점 '큰집'은 처가의 오랜(심지어 내가 아내를 만나기 전부터) 단골집이다. 처가 모임만 있으면 여기로 정해 그동안 살짝 불만이었다. 좀 위험한(?) 발언인지 모르지만 "사람이 늘 밥만 먹을 수 있느냐"는 거다. 그런데 우리 장모님이 '큰집'을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를 이번에 알게 되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 특히나 할머니의 입맛은 조미료에 굉장히 예민하다. 여기선 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아 좀처럼 질리지 않는단다.

'큰집'과 함께 근처의 '숟가락젓가락'도 함께 운영하는 배종창 씨 집안은 '레스토랑 패밀리'라고 부르면 되겠다. 배 씨의 딸 지현 씨는 두부 전문 음식점 '두부가', 아들 찬득 씨는 막걸리 전문점 '덕분에'를 인근에서 운영한다. 이게 다 아버지 덕분 아니냐고 했더니 껄껄 웃으며 "음식 장사는 인내심이 정말 많이 필요하다"고 조언해주었단다.

자극적이지 않은 '큰집'의 음식을 좀 살펴보자. '먹거리는 정직과 믿음'이라는 글귀를 바닥에 깔아 경영의 기본으로 삼았다. 청정지역인 전남 영암 쌀로 밥을 짓고, 삼랑진 김차선 농부의 태양초 고춧가루와 질 좋은 국산 배추, 무, 국내산 천일염과 젓갈을 이용해 김치를 매일 담근다. 참기름도 직접 짜서 사용한다. 지리산에서 받아온 도토리묵은 탱글탱글해서 좋다.

돌솥밥.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먹으니 마음이 놓인다. 짜지 않은 게장은 이전부터 진하게 사랑했다. 배 대표도 음식점 그만둔 다음엔 게장 담가서 게장 장사나 하고 싶단다.

지난 9일 큰집에선 연말마다 배 씨의 아내 최옥자 씨가 주축이 되어 해오던 '늘사랑 가족 봉사 바자회' 행사가 열렸다. 이전에는 하루 매출액 전부를 기부했지만 요즘 다행히 협회 사정도 좀 나아져 수익금만 건넸다.

배 대표는 지난 11일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그동안 모아온 헌혈증 1천100여 장을 기증했다. 헌혈증과 한 끼의 식사를 바꿔서 모은 것으로, 4년 전에 이어 두 번째였다. 막상 헌혈을 하고도 헌혈증은 잊기 쉬운데, 젊은이들의 열정이 그렇게 사라지는 게 아까웠단다.

나도 충분하지 않은데 왜 남을 도와야 할까? 배 대표는 "술잔도 차면 마셔서 없애야 또 부을 수 있다. 풀어 놓아야 다른 무언가가 채워진다"고 말한다.

정식 1만 900원, 양념게장정식 1만 6천500원. 해물찜 1만6천500원. 영업시간 11:30~22:00. 부산 중구 신창동2가 21-8. 051-245-3320.

■ 돌산산장

채소·묵은지 더한 오리소금구이
백숙은 진한 국물이 보약 수준
매년 김장 300여 포기 기증

김장철이 되자 사하구의 '돌산산장' 생각이 절로 났다. 돌산산장의 묵은지를 처음 맛보았을 때 3년 된 김치가 그토록 아삭하다는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묵은지 김치로 이름난 '돌산산장'의 상차림은 푸짐한 시골밥상을 보는 것 같다.
사실 김치 담그는 비결은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이 집 단골 최원준 시인이 "김치를 많이 담아서 나눠주다 보니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고 한 마디 던진 게 더 와 닿았다.

이준현 대표는 매년 김장을 3천 포기가량 해서 10%를 홀로 사는 노인이나 형편 어려운 이웃에게 기증해 왔다.

또 이 대표는 지금과 달리 중학교 때까지 날렵한 탁구 선수였고, 취미로 연극을 했단다. 그 인연으로 사하중학교와 낙동초등학교 축구부를 6년째 후원한다. 
옻오리탕.
극단 시나위가 연습실이 없어 힘들어할 때는 가게 지하를 몇 달간 빌려주고 잠도 재워줬다. 이 대표 아들의 결혼식 때 주례선생님이 "어머니가 봉사를 많이 하니 며느리도 대를 이어 봉사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했을 정도다.

돌산산장에는 여러 차례 가서 늘 맛있게 먹다 보니 뭐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리 소금구이는 스타일부터 달랐다. 오리고기 위에 채소를 수북하게 올리고, 묵은지로 맛을 압박해 들어갔다. 촌닭백숙은 고기의 졸깃함이 달랐고, 옻 오리백숙의 국물은 보약이었다. 해물파전에는 해물이 너무 많아 투정이 나올 정도였다. 가락국 허황후에서 유래돼 김해 허씨 문중에 이어져 왔다는 '계봉찜'이라는 특별한 요리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또한 김치에서 우러나는 국물맛이 좋아야 시원하고 깊은 맛이 난단다.

기자와 동행한 날 최 시인은 동료 문인의 아들이 백혈병에 걸려 수술비 수천만 원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대표는 "그 이야기를 왜 지금에야 하느냐"며 "아무리 힘들어도 십시일반 조금이라도 도와야겠다"고 말한다.

그는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 엄마인 줄도 모르고 시작한 성경 공부가 요즘 가장 재미있단다. 미리 받은 세례명은 마르타(Martha),

남을 돌보아 주기 좋아하는 유형의 여인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이 대표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제가 이제는 진짜로 돈을 벌고 싶거든요. 도와줄 데는 너무 많은데, 마구 주고 싶은데…."

오리소금구이 3만 원, 촌닭백숙 5만 원, 계봉찜 5만 원, 녹두빈대떡 1만 원, 시락국 5천 원. 영업시간 10:30~23:00.부산 사하구 당리동 22-13. 동원베네스트 아파트 아래. 051-208-4313.

■ 목촌돼지국밥

가마솥에서 고아내 고소한 국물
갈비국밥·봉황갈비찜도 '일품'
프랜차이즈 내 기부 릴레이

그동안 W&J 맛면에서 프랜차이즈 업체는 피해야 할 일종의 금기였다. 목촌돼지국밥 사상·동래·괴정점을 운영하며 아너 소사이어티(이하 '아너')에 가입한 박달흠·정미란 씨 부부 때문에 이 금기가 깨어졌다. 아너는 1억 원 이상을 기부했거나 5년 이내 1억 원 납부를 약정한 개인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이다. 부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확인한 결과 이들 부부의 권유로 아들 박해경 씨 외에도 목촌돼지국밥 프랜차이즈 전판현 대표까지 아너에 가입했다. 선의(善意)도 나누고 싶은 것일까? 
'목촌돼지국밥'의 진한 사골 같은 돼지국밥 국물은 고소하다.
이들 부부가 인터뷰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해 아쉬웠지만 어쨌든 이들이 운영하는 동래점에 가보기로 했다. 가게 입구에는 '나눔의 집'이라고 적혔다. '사랑의 열매' 로고가 새겨진 나눔·행복 식사 대금함도 보인다. 기부용 현금통에도 지폐가 수북해 여느 음식점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돼지국밥, 오리수백과 함께 처음 보는 갈비국밥을 주문했다. 진한 사골 같은 돼지국밥 국물은 고소했다.하루 반 동안 가마솥에서 고아낸 진짜 진국이란다. 갈비탕의 돼지 버전인 갈비국밥은 썩 괜찮았다. 국밥을 먹으며 갈비를 뜯으니 일거양득이었다. 새우 젓갈을 넣으면 더 맛이 난다지만 살짝 간이 되어 나와 아무것도 넣지 않아도 괜찮다.

다음날 프랜차이즈 전 대표를 1호점인 주례점에서 만나서는 아직 맛보지 못한 봉황갈비찜을 시켰다. 봉황갈비찜은 갈비국밥에 들어가는 돼지갈비 오도독뼈로 맵싸하게 만들었다. 봉황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몰라도 소갈비 뜯는 기분이 났다. 봉황갈비찜의 양념에 밥을 비벼도 일품이었다.
갈비국밥.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매달 최소 3만 원 이상 일정액을 이웃들에게 나누는 '착한 가게'는 부산에 345곳이다. 부산을 중심으로 40곳에 달하는 목촌돼지국밥 프랜차이즈는 착한 가게가 17곳으로 점점 늘어간단다.

살아가며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는 전 대표는 "내가 다 가지려 욕심을 내니 재산이 날아가는데 불과 0.5초도 안 걸리더라. 1만 원을 벌면 3천 원을 써야 더 올라간다. 돈은 가둬놓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예전에 소설 '상도'에서 읽은 계영배가 생각났다.

돼지국밥 6천 원, 갈비국밥 7천 원, 오리수백 9천 원, 봉황갈비찜 2만~3만 원. ※대부분 24시간 영업이지만 가게에 따라 약간씩 차이 있음.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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