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국제시장 맛집] 국제시장 왔으면, 요 정도는 묵어야지~

입력 : 2014-12-25 07:51:21 수정 : 2014-12-26 14:3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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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던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영화 '국제시장' 이야기는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 그대로이다. 영화가 돌풍을 일으키며 국제시장을 찾는 발길도 늘어나고 있다. 한때 청춘이 머물렀던 그곳, 국제시장에 들렀다면 놓칠 수 없는 맛집 3곳을 찾아갔다.

■ 거인통닭


'염지' 안 한 대형 생닭 사용해 선도 탁월
가마솥에 튀겨 겉은 바삭, 속살은 촉촉


'부산 3대 통닭'으로 꼽히는 '거인통닭'은 얼마나 장사가 잘 되는지 포장해서 가져가는 데도 평일 1~2시간, 주말에는 3~4시간은 걸린다. 1980년 이순조(지난해 별세) 씨가 시작해 87년부터 딸 박희숙 이원재 씨 부부가 맡아 3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후라이드 치킨을 즐기지만 제대로 맛을 보기 위해 일부러 '반반'을 시켰다(역시나 아이들은 양념을 좋아한다). '푸짐하다'는 말로 부족한, 거대한 양의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이 나왔다. 대개 치킨집에서 쓰는 1㎏ 미만 생닭이 아니라 1.3㎏짜리 대물이다. 그래서 거인?

고소한 카레향이 배어나오는 바삭한 튀김옷에 혀와 뇌가 동시에 백기를 던진다. 이 맛의 첫 번째 비결은 튀기는 방식이다. 가마솥에서 고열을 사용해 옛날 통닭 방식대로 튀긴다. 이 씨는 "버너를 더 놓으면 많이 팔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맛이 없어진다. 우리는 맛있게 할 수 있는 양만 한다"고 말하는 고집이 보인다. 오전 10시반부터 영업하다 지난 9월부터는 1시간 가량 영업시간을 줄였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도 진작에 버린 듯하다. 두 번째 비결은 염지한 생닭을 받지 않고 직접 양념을 하는 것이다. 염지(鹽漬·소금과 후추를 뿌려 향미를 증진)한 닭을 받으면 자칫 선도가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이제는 남의 닭을 안 먹는다"고 말한다. 가게를 맡고 나서 지금 맛이 완성되는데 10년이 걸렸고, 맛의 개발을 위해서는 버리는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란다. 맛집으로 소문난 데에는 동네 사람들 덕이라고 공을 돌린다. 목욕탕에 가면 동네 사람들이 "거인통닭을 공짜로 홍보해준 값, 손님들에게 길 가르쳐준 값을 내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단다.

바삭하고 신선한 거인통닭의 치킨에서는 세월이라는 비장의 소스가 들었다. 이 씨는 "아들이 가게를 이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먹고 살만큼만 하면 된다"고 무관심한 척 말한다. 열심히 닭을 튀기느라 쉴 새가 없는 이 씨의 아들 동규(32) 씨는 "가게를 키울 생각보다 아버지가 해오신 것을 성실하게 잘 잇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거인의 전통이 3대로 이어진다.



후라이드 치킨 1만 5천 원, 양념치킨 1만 6천 원, 치킨양념반반 1만 6천 원, 통구이 치킨 1만 5천 원. 영업시간 12:00~20:00. 월요일 휴무. 부산 중구 부평동 2가 11-2. 051-246-6079.


■ 원조 비빔당면

탱글탱글한 면발에 매콤한 양념 어우러져
추억 곱씹으려는 손님들 대를 이어 찾아와


쫄깃하게 삶아낸 당면을 매콤한 양념장, 채소, 어묵 등 고명을 올려 한 그릇 푸짐하게 담아낸다.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비고~. 당면을 꼭 비빔면처럼 먹는 집이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비빔당면, 줄여서 '비당'이라고 부른다. 당면하면 먼저 잡채가 연상되지만 세상에 꼭 그래야 한다고 정해진 법은 없다.

정재기(50) 대표의 어머니 성양이 씨도 처음에는 당면으로 잡채를 만들어 팔았지만 기름에 볶는 조리법 탓에 느끼했다. 다른 방법으로 먹을 수는 없을까 고민하다가 1963년 참기름, 간장으로 양념한 비빔당면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만드는 만큼 팔리는 장사의 재미가 생겼단다. 매콤한 양념장도 35년 전 방식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며느리 서성자(48) 씨가 이어받은 지는 27년이 되었다. 시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지며 혼자 한 지는 15년. 곧 제대한 아들까지 3대가 이어서 '비당'을 만들 계획이다. 오랫동안 장사를 하니 손님도 2~3대에 걸쳐서 찾아온다. 학생 시절 남포동에서 먹던 그 맛을 자녀에게도 보여주려고 멀리서도 찾아온다.

단지 오래 장사를 한다는 이유 때문에 맛집으로 소문이 나지는 않는다. 비빔당면과 함께 나오는 국물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디포리, 채소 ,멸치, 3년 묵은 조선간장 등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았다. 육수에 들어가는 멸치는 시골로 가져가 황태 말리듯이 3개월간 바짝 더 말려 사용한다. 국물에서 깊고 깔끔한 맛이 나는 비법이 거기에 있다. 아삭한 맛을 위해서 단무지도 기계로 아니라 직접 칼로 썰어서 쓴다.

손님들의 맛있다는 말 한마디가 준비한 정성을 알아주는 것 같아 보람이 있단다. 갓 삶아 내어 탱글탱글 미끌미끌한 당면의 식감이 재미있다. 양념에 묻혀도 면발이 불지 않고 양념이 스미지도 않는다. 투명한 면이 빛을 받아 반짝이더니 입안에서도 거침없이 쑤욱하고 넘어간다. 35원부터 시작한 '비당'이 4천 500원이 되는 동안의 정성과 자부심을 담았다. 이구동성으로 '비당'을 한 번 먹어보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비빔당면 4천500원. 영업시간 10:20~23:00. 비가 많이 오는 날 휴무(그래도 장마철엔 영업한다고 꼭 써주세요). 부산 중구 부평동 2가 11-34. 051-254-4240.



■ 깡통골목 할매 유부전골

좋은 어묵과 유부에 시원하고 깊은 국물 맛
주인 할머니 자부심 '유부 보따리' 불변의 인기


주말이면 국제시장 깡통 골목에는 사람들이 골목을 막아 지나갈 수가 없다. 맛있는 냄새도 골목 안을 꽉 채우고 있다. '유부 할매'라고 불리는 정선애(80) 할머니가 운영하는 유부 전골 가게 앞 풍경이다. 먹음직스러운 유부 보따리가 육수에 담겨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어묵 국물과 함께 보기 좋게 담겨나간다.

정 할머니는 남편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1998년에 처음으로 노점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른 곳에서 팔지 않는 메뉴라 조금만 만들어 개당 500원에 팔았는데 인기가 좋았다. 그때부터 맛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2000년에는 특허도 받아 지금의 유부 보따리가 완성되었다.

정 할머니는 지금 회장님이 되었다. 서울대를 졸업한 외아들 백종진(54) 씨가 사장님이 되면서 저절로 승격된 것이다. 백 사장님은 2002년부터 어머니를 도와 2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에 백 사장님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자 맛을 책임진 정 할머니를 만나보기를 권했다. 사장님보다는 회장님을 만나야 하는 게 맞다.

회장님께 전골의 핵심일 수도 있는 국물의 비법을 물었다. 비밀이지만 한 가지만 알려주자면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라고 한다. 국물 끝맛이 달착지근하면서 시원하고 깊은 맛이 난다. 인터넷으로도 주문해도 이 육수가 그대로 온다.

전골의 주인공인 유부 보따리 속에 든 재료가 푸짐하다. 작은 꾸러미 안에 참 많이도 들었다. 당면, 각종 채소, 버섯, 고기를 양념과 함께 넣어 유부 속을 만든다. 꽉 찬 유부 보따리는 선물 꾸러미 같다. 노란 유부를 초록색 미나리로 한 번 묶었다. 예쁘면서도 미나리향이 솔솔 올라와 맛에도 보탬이 된다. 국물과 함께 나오는 어묵도 좋은 걸로 골라 쓴다.

할머니의 유부 보따리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장사가 잘 되더니 맛이 변했어 라는 이야기는 절대 듣고 싶지 않다. 맛에 대한 기준은 절대 내려갈 수 없다. 재료값이 너무 올라 손해를 볼 때도 있었지만 타협하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먹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유부 보따리를 터트려 속 재료를 국물과 함께 뜨고 간장에 절여진 파 하나 올려서 먹는 게 정석이다.



유부 전골 한 그릇 3천800원, 영업시간 09:00~21:00. 부산 중구 부평동1가 15-20. 1599-9828. 글·사진=박종호·박나리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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