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동 '밀크랩' 입이 재밌다… 우유에 빠진 세 남자의 달콤한 디저트

입력 : 2015-01-21 18:30:52 수정 : 2015-01-21 19: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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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를 사용해서 만든 생크림롤인 '구구롤'과 젤라토 아이스크림으로 만든 '플레이크'가 인기 메뉴이다.

어제는 직장 상사에게 깨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참 회사에 가기 싫은 날입니다. 이런 날이 한 번도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내가 창업해서 사장이 된다면 어떨까, 이런 생각 안 해보셨습니까. 아무것도 몰라서 용감했던 세 남자가 이런 생각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제과제빵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남자들이 일 년간의 좌충우돌 끝에 탄생시킨 달콤한 디저트 이야기. 한번 들어 볼까요?

'우유를 향한 열정'으로 뭉친 남자들
좌충우돌, 맨땅에 헤딩하듯 연 가게

버터·오일 넣지 않은 생크림롤
사르르 녹는 대신 담백하고 깔끔

빙수처럼 갈아만든 젤라토 아이스크림
딸기 푸딩 곁들이니 빙수인 듯 아닌 듯


서면 한국경찰학원 뒤편의'밀크랩(MILK LAB). 깔끔한 외관이 먼저 눈길을 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분주한 세 남자가 보인다. 오픈 키친이라 누가 무엇을 하는지 한눈에 보인다. 빵을 굽고, 아이스크림을 담아내고, 설거지를 하느라 분주하다.

주메뉴는 생크림 롤과 젤라토 아이스크림이다. 두 가지 다 우유가 기본인 메뉴. 그래서 가게 이름이 밀크랩이구나….

주문한 생크림 롤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사라진다. 누가 만든 것일까? 호기심이 생긴다. 벽에는 '우유를 향한 무한 열정'이라는 글과 함께 예쁜 삽화가 걸려있다. 바쁜 남자들과 닮은 삽화를 보니 저자(?)들이 만든 메뉴가 확실하다.


남자 1호 이상수(31) 씨는 의류학과를 나왔다. 취업 준비하러 매일 카페에 다니다 아예 본인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차리자는 생각이 들었단다. 가맹점도 알아보다 직접 하기로 했다. 세 살 위 누나도 디자인을 전공했다니, 집안에 디자이너의 피가 흐른다고 할까? 가게의 콘셉트, 상호, 메뉴 구성, 다른 가게와의 차별성을 정하는 총괄 디자이너 역할을 했다. 
서면 `밀크랩`에 가면 달콤한 디저트를 만드는 세 남자 권성구·진남길·이상수 (사진 왼쪽 부터) 씨를 만날 수 있다.

남자 2호 진남길(31) 씨는 산업위생을 전공하고 주류 회사에서 안전관리자로 회사를 잘 다니고 있었다. 남자 1호가 먼저 가게를 준비하며 같이 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매일 마시는 술도 지겨워지고, 40세가 되기 전에 꼭 창업하겠다고 생각해서 기회를 잡았다. 회사를 관두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괜찮은 데 들어갔는데 계속 다녀라"며 반대했단다. 안전관리를 했던 경험 덕분이었을까? 꼼꼼함으로 메뉴 세부사항을 결정하고 있다.

남자 3호 권성구(34) 씨는 관광·레저를 전공했다. 기술을 배우려고 자동차 금형가공 회사에 다니다 친한 동생들이 가게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같이 하게 되었단다. 결혼을 위해 모아둔 자금을 모두 털어 넣었다. 잘될 것 같은 믿음이 있었단다. 동생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메뉴 간 조합을 생각한다.(별 의미 없이, 재미 삼아 인터뷰 순서대로 세 남자에게 번호를 달았다)

이 남자들은 개업하기 전 일 년 동안 동거를 했었다. 원룸을 얻어, 기계를 사서 빵을 굽고,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달콤한 생활이었다.

시간이 나면 여행 삼아 전국의 디저트 카페를 돌아다녔다. 직접 먹어보면서 요리법을 완성해 나갔다. 누구 하나 빵을 만들어 본 적도 없으니 맨땅에 헤딩이었다.

그러다 도지마롤로 유명한 대구 노엘블랑(Noel Blanc) 배현진 사장을 만났다. 서로 나이가 비슷한 배 사장은 자신의 올챙이 시절이 생각났는지 도움을 청하자 흔쾌히 비결까지 알려주었다. 지금은 서로 요리법을 공유하며 의논하는 사이가 되었다.

생크림롤은 다른 곳과는 달리 빵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사라지지는 않는다. 버터와 오일을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다. 대신 담백한 장점이 있다. 자신의 스타일로 만든다는 이야기다. 생크림 역시 우유 위주로 만들어 질감이 좀 뻑뻑하고 무겁지만, 빵과 잘 어울려 깔끔한 맛이다.

고급 우유로 직접 만든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빙수처럼 갈아서 만든 메뉴는 식감이 재미있다. 첫 느낌은 존득했다가 금세 사르르 녹아 사라진다. 같이 나오는 우유 푸딩이나 딸기 푸딩과 곁들이니 빙수인 듯하나 맛은 빙수가 아니다.

새로운 메뉴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출시될까?셋 중에 둘이 찬성하면 오케이! 과반수로 결정한다. "본인의 이름을 건 메뉴는 어떠냐?"고 물으니 웃으며 "셋 다 소심해서 책임을 회피하고 싶다"고 대답한다. 소심한 남자들이 벌인 일 치고는 대담하다.

가게 디자인이 너무 정리가 잘되어 있어서 프랜차이즈가 아닐까 의심했다. 문어발 인맥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 현대카드 삽화를 그렸던 작가 누나가 가게 메뉴와 일러스트를 그렸다. 건축사 친구는 인테리어를 맡았고, 전체 총괄 콘셉트는 한 스튜디오에서 잡아주었다. 전문가들의 힘이 모이다 보니 초보자에게서 전문가의 향기가 났던 거다.

세 남자는 이 일이 정말 재미있고 신이 나 보였다. 일을 시작하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 같아서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디저트를 먹으면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구구 밀크롤 (생크림롤) 3천800원· 밀크 플레이크 (아이스크림) 6천 원. 영업시간 12:00~22:00(월~목), 12:00~23:00(금~ 일요일).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220-10번지. 070-5033-3632.

글·사진=박나리 기자 nar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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