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 듬뿍 상차림 맛집] 마음 담아 차려 낸 밥상에서 감동을 맛보다

입력 : 2015-07-08 19:16:47 수정 : 2015-07-08 19: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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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오는 손님은 누구든 귀하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좋은 재료를 구하고 신경을 써서 상을 차린다. 식탁보도 깨끗하게 준비하고 방석도 새것으로 꺼내 놓는다. 그릇도 가장 예쁜 것으로 골라 어떤 음식을 차려 낼지 고민한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 그 정성이 느껴질 때 더 맛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약만 한다면 이런 대접을 언제든지 받을 수 있는 두 곳을 소개한다. 
■ '정갈하게' 티하우스

'티하우스', 언제 이런 곳이 생겼지? 티하우스의 탄생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재주가 많은 이숙희 대표가 한옥을 짓는 인테리어 사무실로 사용하다 1년 4개월 전에 다시 문을 열었다.

말차에 보리 굴비 한 점 여름 별미
재료 맛 제대로 살아 있는 런치박스


3층으로 올라가면 겉모습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나온다. 이 대표가 30년간 모은 그릇과 작품들로 장식했다. 동·서양의 그릇이 어울려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마치 전시회를 보는 것 같다. 
자리마다 깨끗한 식탁보가 인상적이다. 공간이 사람을 조용하게 만들어 주는 것일까, 아니면 조용한 사람만 오는 것일까. 식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옆 테이블로 새어나가지 않는다. 식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차분하다.

둘이 가서 '보리굴비, 말차'와 '런치박스'를 주문했다. 먼저 차를 한 잔 내어 준다. 주문한 음식은 나무 쟁반에 담겨 나왔다. 식판이 이렇게 기품이 있을 수 있다니!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나무 쟁반 위에는 음식의 색상에 맞추어 작가가 만든 청자와 백자 그릇이 놓여 있다. 보리굴비와 말차는 백자에 담겨 나왔다. 말차의 초록색이 하얀 백자에 담기니 보기에도 시원하다. 보리굴비는 레드와인에 담가 숙성을 시켜서 붉은색이 돈다. 비린내와 짠맛을 잡아 줄 수 있어서 그렇게 한단다. 같이 나온 다른 반찬은 간이 세거나 튀지 않는다.
밥을 말차에 말아 짭조름한 보리굴비 한 점을 올려서 먹었다. 입맛이 없는 여름철 별미를 찾는다면 딱이다.

런치박스는 청자에 담겨서 나왔다. 더덕구이, 두부 밤 조림, 채끝등심이 예쁘게 담겼다. 양배추 김치와 푹 끓여 낸 미역국까지 함께 나오니 선물 꾸러미 같다. 정갈함과 정성이 한 번에 느껴진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재료의 맛을 느끼기에 좋다. "이 반찬이 맛있으니 너도 한번 먹어 보라"는 이야기 말고는 맛있는 식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도자기에 담긴 것만으로도 잘 대접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대표는 "새로운 음식문화를 보여 주고 싶다. 좋은 재료는 기본이고 도자기 그릇에 담아 먹는 것에 정성을 들이고 싶었다"고 한다. 음식을 만드는것, 담아 내는것, 먹는 장소까지도 모두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작품이 공간을 채우면서 분위기도 함께 만들어 내고 있다. 차가 먼저 시작해 간판도 티하우스였다. 그의 생각이 들어간 음식을 먹어본 손님의 주문이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단다.

이런 공간이 어떻게 소문이 나지 않았을까. 손님들이 대개 "여기는 나만 알고 싶은 곳"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대표는 "소문은 바람 타고 가는 것 아닌가요" 라며 느긋하다. 기자 또한 비밀 장소로 남겨 두고 싶은 곳이었다.

7가지 코스 5만 원, 8가지 코스 7만원, '보리굴비, 말차' 3만 8천 원, '런치 박스' 3만 8천 원. 영업시간 12:00~15:00, 18:00~22:00. 부산 해운대 해변로298번길 5 3층 (파라다이스 호텔 맞은편). 051-747-4471 (예약 필수). 

■ '푸짐하게 ' 귀희 한식

남천동 '귀희 한식'에 먼저 다녀온 지인의 초대가 있었다. 자기가 음식을 해 주는 건 아니지만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초대한다는 이야기였다. 

정해진 메뉴 없이 장 보는 대로
재료 식감·색상 조화롭게 '한 상'


'귀희 한식'은 정귀희 대표가 1년 전에 본인의 이름을 따서 문을 열었다. 공간이 크지 않은데다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예약 없이는 밥 먹기가 어려운 곳이란다.

조금 높은 곳에 있는 간판을 놓치기가 쉽다. 골목 안쪽 하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정집을 개조한 공간에 방이 3개, 마루에는 테이블이 1개 있다. 정 대표 혼자서 음식을 하고 서빙까지 하는 날이 많아서 크게 욕심내지 않았다고 했다. 
자리에 앉으니 음식이 바로 차려진다. 예약을 할 때 2만 원, 3만 원 중에서 선택하면 된다. 가격에 따라 음식의 가짓수와 종류가 조금 다르다. 정해진 요리는 없다. 그날 장보기에 따라 달라진다. 정 대표는 시장에 가는 것을 신나한다. 좋은 식재료만 보면 안 사고는 못 견디는 성미다.

샐러드와 광어 회무침을 시작으로 잡채, 버섯 탕수육이 나왔다. 요리가 만들어지는 대로 바로 나온다. 재료의 식감과 색상까지 생각해서 만들어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다. 부드러운 수육과 직접 담근 김치가 잘 어울린다. 갈비탕과 장어구이, 전복 요리까지 좋은 것들이 계속 나온다. 
한상에 다 차려 낸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빠르게 나온다. 요리를 조금씩 맛보고 있을 때쯤 밥과 된장이 나왔다. 이미 차려진 것들을 반찬으로 먹으면 되겠다. 밥이 나올 때 별도의 반찬이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김치와 멸치볶음 정도가 추가된다. 가짓수만 채우고 손이 가지 않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나오는 한정식은 사양한다. 먹을 만큼 맛있는 요리만 나오는 것이 더 좋았다.

음식이 담긴 그릇과 주전자 하나까지도 예뻤다. 그는 "알아봐 주니 고맙다. 오래전부터 모았는데 살림할 때부터 쓰던 것도 있다"며 좋아한다. 아끼는 그릇이라 손님이 소중히 다뤄 주면 고맙단다.

정 대표의 자녀는 모두 외국에서 살고 있다. 어머니가 그릇을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예쁜 그릇이 보이면 미리 모아 두었다가 가져다 준다. 그릇마다 이렇게 작은 사연이 담겼다. 
이런 그릇에 정성이 들어간 요리를 담아내니 누군가의 집에 초대 받았다는 기분이 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약이 들어오면 귀한 손님을 접대하는 기분으로 준비한단다. 방에 깔린 방석도 매일 빤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이 앉을 것인데 까슬까슬해야 좋지요"라고 말한다. 어쩌다 이런 섬세함을 알아봐 주는 손님이 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방석이 깨끗하다, 손 가는 반찬이 많다, 맛있다"고 말해 주면 힘이 난단다. "최선을 다해서 대접하는 만큼 진짜 지인의 집에 초대 받은 것처럼 대해 주는 손님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내일은 또 어떤 좋은 재료가 그를 만나 맛있는 요리로 나오게 될지 궁금하다.

2만 원, 3만 원. 영업시간 12:00~14:00, 17:00~23:00. 부산 수영구 광남로 67-3. 051-626-7778(예약 필수).

글·사진=박나리 기자 nar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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