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장어 맛집] 언제 먹어도 '꼬시고 달짝한' 향수의 맛!

입력 : 2015-08-26 19:14:54 수정 : 2015-08-30 20:16:00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자갈치에 가면 빨간 양념에 버무려진 곰장어가 연탄불 위에서 익어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골목에서는 언제나 맛있는 냄새가 진동한다. 자갈치 시장의 곰장어 덕분인지 '부산 곰장어'는 왠지 고유명사 같다. 부산이 아닌 곳에서 먹는 곰장어는 맛이 조금 덜 할 정도. 동부산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곰장어집 두 곳을 소개한다.

'좌동 기장곰장어' 간판에는 '1983년부터'라고 적혀있다. 30년이 넘는 전통이다. 이정훈(46) 대표의 어머니가 자갈치 곰장어 골목에서 오랫동안 장사했단다. 이 대표가 어머니를 이어 곰장어집을 운영 중인 것이다. 

좌동 기장곰장어

자갈치서 장사하던 어머니 손맛 이어
고소한 곰장어에 산뜻한 부추 첨가
매일 수조 물 갈고 옆 가게서 재료 구매
"곰장어도 반찬도 신선해야 맛이 최고"


가게는 좌동시장 안쪽에 있다. 그래서 뜨내기보다는 알고 찾아오는 단골이 대부분. 혹시라도 맛이나 재료가 달라지면 손님들은 한마디씩 한다. 똑같은 맛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집 단골 한 분은 "여기선 예전 시청 옆 영도다리 근처에서 먹던 곰장어 맛이 난다"고 말했다. "고소하고 달콤했지. 장소는 허름해도 참 맛있었지…"라며 입맛을 다신다. 향수가 있는 맛, 그가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았기에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같이 간 지인과 각자의 취향대로 소금구이와 양념구이 두 가지로 시켰다. 주문과 동시에 살아 있는 곰장어를 바로 잡는다. 한 테이블에서는 하얀 소금구이, 다른 테이블에선 빨간 양념구이가 동시에 익어갔다. 곰장어는 불 위에 올려진 채로 꿈틀거린다. "빨간 고기 먹을래, 하얀 고기 먹을래…." 조금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맛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은 은하계 밖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곰장어가 어느 정도 익으면 현란한 손놀림을 볼 수 있다. 이 대표가 포일의 끝을 잡고 펄럭이면서 몇 번 왔다 갔다 했다. 곰장어가 알아서 뒤집히고 채소와 섞인다. 하다 보니 저절로 된 것이란다. 보는 재미가 더해지니 감동이 두 배다. 소금구이와 양념구이가 다 익자 포일을 예쁘게 접어서 반반으로 올려 준다. 부추를 올려서 먹으면 더 맛있다. 부추는 느끼할 수도 있는 곰장어 맛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볶음밥도 시켰다. 다시 손이 공중에서 날아다닌다. 마치 짧은 마술을 보는 것 같다. 국물이 끝내주는 시래깃국은 볶음밥과 하모니를 이룬다

그는 좋은 국산 곰장어를 구해 오는 일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 곰장어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수조 물도 매일 갈아 준다. 요즘엔 곰장어가 많이 잡히지 않아서 걱정이 늘었단다.

곰장어를 제외하고는 좌동시장에서 장을 본다. 가격이 조금 비쌀지도 모르지만,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만큼 같이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곰장어는 깻잎과 쌈을 싸서 먹어야 제격이다. 깻잎은 비싸든 싸든 손님이 원하는 만큼 내어 준다. 비싼 날이 있으면 싼 날도 있으니 똑같다고 생각한다.

양념구이·소금구이·불곰장어 대 5만 원, 중 4만 원, 소 3만 원, 볶음밥 2천 원. 영업시간 12:00~01:00. 부산 해운대구 좌동로91번길 19. 051-701-8921. 
원조 짚불 곰장어 기장 외가집

볏단에 곰장어 굽던 옛 방식 그대로
순간 화력 좋아 고소한 맛 깊어져
곰장어 넉넉하게 든 양념구이도 일품
기장 미역으로 만든 국에 볶음밥 별미


'원조 짚불 곰장어 기장 외가집.' 아이고 숨차, 상호가 좀 길다. 좋게 말하면 이름 하나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부산 기장군 기장읍 시랑리, 모친에 이어 2대째 운영하는 이태용 (56) 대표의 외가 자리이다. 이 대표는 비슷한 이름을 가진 가게가 많아져 상호가 조금 길어졌단다.

'외가'라는 단어에는 따뜻함과 편안함이 있다. 요즘엔 시골에 외가를 둔 아이들이 많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기자의 외가는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야 하는 지리산 근처의 시골이었다. 거기만 가면 사촌들과 개울가에서 놀았다. 앞마당의 닭과 병아리를 따라다니던 정겨운 추억이 떠오른다.

가게 입구에는 '짚불 남 장군'과 '양념 여 장군'이 서 있다. 이 대표는 "손님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만들었다. 이 두 장군이 맛을 보장한다"며 웃는다. 마당 안으로는 화단이 잘 꾸며져 있다. 요즘 바람이 너무 좋아서 마루에 자리를 잡았다. 오래전부터 사용한 듯한 물건이 그대로 놓여 있다. 70년 된 한옥이라니 다들 이순(耳順) 정도 될 것이다.

짚불 곰장어와 양념 곰장어를 시켰다. 예전에는 곰장어는 잘 먹지 않았고 따라서 특별한 조리법도 없었다. 추수가 끝나고 볏단이 쌓여 있는 곳에 불을 놓았다. 거기에 곰장어를 던져 넣어 먹던 서민들의 음식이었다. '외가'에선 그때 방식 그대로 만든다. 볏단을 사용하면 순간적인 화력이 좋아 더 고소하게 익는다. 짚불로 익힌 곰장어는 껍질이 까맣게 타 있다. 껍질을 벗겨내고 나면 속은 하얗게 익어 있다. 먹기 좋게 잘라 기름장에 찍어서 먹으면 된다. 탱글탱글한 식감과 고소한 맛에 자꾸만 손이 간다. 
양념 곰장어가 뒤를 이었다. 가끔 양파 볶음인지 곰장어 볶음인지 헷갈리게 하는 집들도 있다. 여기는 분명 곰장어가 메인이다. 양념 곰장어를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일행도 꽤 만족하는 눈치다. 양념을 먹고 나면 빠질 수 없는 볶음밥을 주문했다. 같이 나오는 미역국이 맛이 있다. 기장 미역을 사서 가게에서 직접 말려서 사용한다. 맛있는 미역국의 비법이다.

같이 나온 반찬도 모두 기장에서 나는 것으로 만든다. 상추, 다시마 무침, 멸치를 모두 맛보라며 권한다. 지난가을에 만들었다는 무 장아찌도 꼭 먹어 보란다.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맛이다. 단골 중에는 이 반찬 때문에 온다는 손님도 있다.

오랜만에 외가 마루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편하게 먹었다. 같이 왔으면 좋았을 사람들이 떠오른다.

양념 곰장어·짚불 곰장어·소금 구이·곰장어 매운탕 1인분 각 2만 4천 원, 볶음밥 2천 원. 영업시간 11:00~22:00. 부산 기장군 기장읍 공수2길 5-1. 051-721-7098. 글·사진=박나리 기자 nari@busan.com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