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넘어 지켜 온 '노포(老鋪)'의 맛

입력 : 2016-11-09 19:11:30 수정 : 2016-11-11 1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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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옥'의 1인분씩 담겨 나오는 돼지 수육

방송에서 맛집이라고 소개가 되어 가 보려고 했는데 곧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 들려 아쉬워한 적이 있었다. 요즘은 이렇게 반짝하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가게가 많다. 스치는 인연 말고 오랫동안 우리 곁을 지키는 가게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를 '노포(老鋪)'라고 부른다. 창업한 지 50년 이상 되었지만 여전히 사랑을 받는 부산의 노포 가운데서 우선 백구당, 성일집, 평산옥, 신흥관, 중앙모밀, 새진주식당 등 6곳을 찾아갔다.

그 결과 노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에는 주인과 손님의 추억이 함께 쌓여 가고, 사람 사는 이야기가 하루하루 모였다.

평산옥

"재료 아껴 돈 벌지 마라"
돼지고기 수육과 국수
단 2가지 메뉴로 4대째


'평산옥'의 메뉴는 딱 두 가지, 돼지고기 수육과 국수다. 1890년 가게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변함이 없었다. 선택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고민을 없애 주니 좋다.

심플한 메뉴만큼 음식의 차림새와 맛도 깔끔하다. 수육은 1인분씩 따로 담겨 나온다. 활짝 핀 꽃처럼 담아 낸 따뜻한 돼지고기 수육 한 점을 집어 들었다. 노란색이 도는 특제 소스에 찍어 먹었다.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소스는 깔끔하게 뒷마무리를 한다. 새콤한 간장소스, 부추 무침, 무채, 배추김치와 함께 먹으면도 각각 다르게 맛있다. 돼지 수육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반찬이 다 모였다.

수육을 먹은 뒤에 국수를 맛보았다. 돼지 고기와 뼈를 넣고 끓인 육수는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이 집 단골들은 수육을 몇 점 남겼다가 국수와 함께 먹는다.

4대째 이어온 조순현(57) 대표는 시부모님이 당부하셨던 것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변하지 말라. 재료를 아껴 돈 벌 생각을 하지 말라"였다.

최근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까지 마친 조 대표의 딸 신미혜(27) 씨가 5대로 이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수육 1인분 9000원, 국수 3000원.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9시. 일요일 휴무. 부산 동구 초량중로 26(초량동). 051-468-6255.

신흥관

주문 즉시 짜장을 볶아내는 '신흥관'
해운대구 중동 해운대시장 입구에는 1954년부터 자리를 지켜 온 '신흥관'이 있다. 중화요리를 좋아하는 지인이 부산으로 여행 온다고 하면 이 집을 소개한다. 해운대 바닷가와 가까워 산책하기도 좋고 맛도 있으니 여행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일석이조이다.

탕수육과 간짜장을 주문했다. 탕수육은 돼지고기 등심을 사용해 도톰하게 튀겨 내어 육즙이 가득하다. 얇지만 쫀득한 튀김옷과 만난 달콤한 소스는 손을 바쁘게 만든다.

1954년부터 자리 지켜 온
부산 중화요리 터줏대감
달걀 프라이 간짜장 '군침'

간짜장은 면과 소스가 따로 나온다. 면 위에는 기름에 살짝 튀겨낸 달걀 프라이가 올려져 있다. 불향 가득한 짜장 소스는 면과 함께 비벼 먹으면 입안을 즐겁게 한다.

가게 운영은 남편 윤영호(55) 씨와 부인 유소정(52) 씨가 하고 있다. 부부는 신흥관이 3대로 이어질지 아직은 모르겠다고 말한다. 대만에서 공부를 마친 아들은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해 취직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강요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

짜장면 4500원, 짬뽕 6000원, 간짜장 6000원, 사천짜장 7000원, 탕수육 2만 2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 30분. 월요일 휴무(~12일까지 임시휴무). 부산 해운대구 중동1로 31-1(중동). 051-746-0062.

성일집
살아있는 국산 곰장어만 쓰는 '성일집'
"곰장어 맛이 뭐 거기서 거기 아냐?" 친구와 약속을 하고 추억을 찾아 옛날 부산시청 있던 곳으로 향했다. 1950년 이래 3대째 이어오는 성일집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거기서 그만 곰장어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고 말았다.

진한 재첩국이 여긴 뭔가 다르다고 속삭였다. 이것은 또 무엇인가? 다른 데서 찾아보기 힘든 곰장어묵에 고추장 소스를 올렸다. 살아 있는 곰장어의 갓 벗겨낸 껍질로 만들었다. 곰장어가 신선하지 않다면 결코 만들 수가 없다.

"곰장어는 거기서 거기?"
소금구이부터 볶음밥까지
3대째 사랑받는 훈훈한 맛


소금구이부터 시작했다. 하얀 곰장어 살에 오돌오돌한 내장이 예쁜 꽃을 피웠다. 수입 곰장어는 내장 부위가 안 붙어 이런 꽃 모양이 안 나온다. 23가지 한약재를 넣은 육수로 양념을 만들었단다. 곰장어를 다 먹고는 귀한 양념에 밥을 볶았다. 깻잎에 볶음밥을 올려 마늘과 콩나물을 함께 싸 먹으니 이 또한 별미다.

퇴직금을 못 받아 못 나간다는 2대째 최영순(63)씨가 지금도 낮 동안 곰장어 손질을 직접 한다. 3대째를 잇는 김성용(42)대표는 다양한 국적의 손님에게 다양한 언어로 인삿말을 날린다. 드라마 협찬, 활발한 SNS마케팅, 전국 당일 배송은 성실한 3대째의 몫인 것 같았다.

양념구이 소금구이 1인분 각각 1만 5000원, 영업시간 오전 10시 30분~오후 11시 30분. 부산 중구 대교로 103. 051-463-5888

백구당
자부심으로 빵을 만들어 내는 '백구당'
"아무리 단군의 자손이라지만…." 초록빛이 감도는 쑥쌀식빵은 첫인상이 그렇게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맛만 볼 생각으로 뜯고 다시 넣었다. 그런데 새우깡처럼 자꾸 손이 가서 결국 그 자리에서 다 먹어 버리고 말았다. 화려한 외양보다는 맛이라는 한 우물을 파는, 사람으로 치면 '진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59년 개업해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양식 제과점 백구당(白鳩堂)의 인상은 그랬다. '백구(白鳩)'라는 상호는 '흰 갈매기'란 뜻이니 부산과 아주 잘 어울린다.

프랜차이즈 욕심내지 않고
반 백 년 오직 빵 맛에 정진
한 우물만 파 온 '흰 갈매기'


1971년에 '뉴 파리 양과'로 상호를 변경했지만 1978년 박정희 정권의 한글 전용 정책으로 백구당으로 돌아왔다. 2대째인 조병섭 씨가 개발한 크로이즌, 파운드 케이크, 쑥쌀식빵은 지금까지도 인기다.

백구당이 오래 살아남은 비결을 묻자 3대째인 조재붕(50) 대표는 힘주어 말했다. "부모님은 프랜차이즈나 부동산 등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백구당을 더 탄탄하게 만드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늘 자부심을 가지라는 말을 강조합니다."

쑥쌀식빵 4000원, 크로이즌 4500원, 이탈리안 크로켓(고로케) 3000원. 영업시간 오전 8시~오후 10시 30분. 토 오후 8시까지, 일 오전 9시~오후 5시. 부산 중구 중앙대로81번길 3. 051-465-0109. 글·사진=박종호·박나리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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