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맛은 가라, 해운대서 '일상탈출'

입력 : 2016-11-23 19:15:59 수정 : 2016-11-25 09:4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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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골 우렁쌈밥 정식에 육전이 한 상 차려졌다. 이곳은 합리적 가격에 토속적 맛을 볼 수 있는 식당이다.

부산 해운대, 관광객 천국 맞다.
없는 게 없다. 화려하다. 이름난 밥집, 블로그 뉴스에 수두룩하다.
보이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모습도 좋지만, 때론 예상을 벗어나는 반전 매력이 사람을 끌어당긴다.
사람이나 밥집이나 마찬가지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도시인에게 의외성은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일상 탈출, 여행을 꿈꾸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그런 활력을 느끼기에 충분한 식당 두 곳을 '관광객 천국' 해운대에서 찾았다.

호박골

우렁이 고명 넣은 된장국
쌈장 얹으니 감칠맛 풍부
밀가루 입힌 쇠고기 부챗살


해운대 센텀시티는 번듯하고 드높은 새 건물들의 각축장이다. 낮에는 금융기관, 병·의원, 오피스텔에 입주한 소규모 사무실 등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 붐빈다.

이곳 직장인들은 점심마다 고민이다. 마음 붙여 단골 삼을 만한 밥집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이다. 차가운 느낌의 첨단 빌딩 숲속에 토속적인 입맛을 충족시키는 식당이 생겼다는 얘기를 듣고 저녁 시간에 맞춰 찾아가 봤다.

15평 남짓 공간에 가족, 직장 동료, 친구 등 다양한 관계로 보이는 사람들이 정겹게 식사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 집이 내세우는 우렁쌈밥 정식과 작은 육전을 시켰다.

오동통한 우렁이를 고명으로 얹은 된장국이 주인공으로 나왔다. 매운맛과 단맛이 오묘하게 어우러진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신선한 상추와 배추쌈으로 감쌌다. 특히 우렁이를 넣은 쌈장을 얹으니 감칠맛이 풍요로웠다.

두루치기 양념과 쌈장 맛이 가시지 않은 입 속에 우렁이 된장 국물 한 숟가락을 떠넣었다.

김민지(39) 사장은 "우렁이 된장 본고장인 기호지방에서는 된장을 자작하게 졸여 짭짜름하게 내놓는데 부산은 다른 음식도 양념이 강하고, 저희 집은 두루치기나 쌈장이 있기 때문에 된장국 개념으로 맑게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반찬 없이 밥을 말아 훌훌 떠먹어도 좋을 만큼 어머니가 해 주시던 된장국에 가까웠다.

이번엔 육전. 기름기 적은 쇠고기 부챗살에 밀가루 옷을 입혀 구워냈다. 반질반질한 표면에선 김이 모락모락 올랐다. 입안에선 살코기에 숨어 있던 육즙이 뿜어 나오며, 진한 풍미를 느끼게 했다.

막걸리 한잔 생각이 굴뚝같았다. 마침 막걸리를 비롯한 주류도 팔고 있었으나 음주는 다음 기회로 미뤘다. 호박골은 아침 식사도 괜찮지만 저녁에 가족이나 동료들과 간단한 식사와 반주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겠다 싶었다.

김 사장은 엄청난 요리 내공이 있을 연배가 아니었다.

"2014년 서면에서 하던 큰 가게 문을 닫았거든요. 그때 결심했어요. 크기는 작아도 주방에서 직접 일하며 음식을 팔아 보기로요."

모두 170평에 이르는 파스타와 커피숍 프랜차이즈에 직원 13명을 두고 운영하며 저녁에 결산만 하러 다녔던 그다. 요리라고 해 봐야 집에서 가족들 해 먹이는 정도였다.

지난 4월, 매장 밖 테라스까지 18평 남짓한 호박골을 개업한 뒤 6개월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주방을 떠나지 못했다. 음식을 만족스럽게 먹는 손님들을 보며 행복했다.

"몸은 고되지만 지금 더 보람이 큰 것 같아요."

청정 구역인 전북 임실산 우렁이에 토종된장이 조화를 이룬다. 화학조미료는 쓰지 않고 멸치 다시마 양파 버섯 등을 우려내 국물 맛을 낸다. 삭막한 센텀시티 한복판에서 집밥의 온기를 느끼게 해 주는 집이다.

우렁쌈밥 정식(2인 이상) 1인 8000원, 조개관자 미역국 1만 원, 육전(소) 1만 1000원. 영업시간 오전 8시~오후 10시. 부산 해운대구 센텀2로 19(우동) 센텀코아 104호. 051-731-3503.

LABLE

LABLE에서 내놓은 카프레제 타르틴과 훈제 연어 타르틴.
'our LAB to your TABLE.' 요리에 대한 셰프의 생각을 당신의 테이블로, 쯤으로 해석될까.

한국 40대 이상 남성들 중에는 유럽 음식에 약한 사람이 많다. 기껏 값비싼 레스토랑을 다녀와선 촌스럽게 MSG 듬뿍한 라면을 떠올린다. 한마디로 아재 입맛이다.

동래파전 접목시킨 파스타
애호박·새우오일 풍미
직접 훈제한 연어도 별미


기자도 마찬가지다. 해운대 바다가 집 정원처럼 펼쳐진 유러피안 레스토랑 LABLE 소식을 듣고 가 보려니 애써 만든 음식들을 욕보이는 것은 아닌지, 살짝 겁이 났다. 아니다. 세상은 넓고 맛볼 것도 많다. 식문화 다양성, 증진시킬 필요가 있다. 이렇게 마음먹고 찾아갔다.

결론부터 털어놓자면 괜한 걱정이었다. 우선 분위기가 아늑했다. 4인 테이블 5개가 놓인 아담한 공간은 정갈했다. 아재 입맛을 배려한 김초롱(28) 셰프의 마음 씀씀이 덕분이었는지 모르겠으나 그가 개발한 새우 오일 파스타는 환상이었다.

"제가 원래 동래파전을 제일 좋아하거든요. 그 재료와 기법을 파스타에 적용해 봤더니 반응이 괜찮더라고요."

프랑스에서 요리를 공부하고 온 김 셰프의 이 퓨전 파스타는 파전에 들어가는 실파를 중심으로 애호박, 구운 마늘, 블랙 타이거 새우 등이 어우러졌다. 건새우로 뽑아낸 새우오일을 마지막에 얹어 갑각류 특유의 풍미를 더한다. 마치 해물파전을 맛있게 먹은 기분이다.
새우 오일 파스타. 이 레스토랑은 정갈한 분위기에서 정성 들인 음식을 대접받는 느낌을 준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 셰프는 훈제 연어 타르틴을 내어 왔다. 타르틴은 대중적인 프랑스 음식이지만 부산에선 맛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버터나 잼을 바른 빵조각 위에 신선한 채소나 치즈, 생선 등을 얹어 먹는다.

이 집 연어의 특징은 손수 훈제한다는 데 있다. 질 좋은 연어를 통째 구매해 손질, 염장, 건조한 뒤 직접 제작한 기계에서 훈제한다. 훈제에 쓰는 나무 종류와 적절한 염도를 맞추느라 꽤 시행착오를 겪었다.

입 속에 들어간 연어 살점은 혀 깊은 곳에서 불탄 나무향을 짙게 풍겼다. 와사비 마요네즈, 생강 폰스 소스, 양파, 케이퍼와 어우러져 느끼함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입맛을 탄탄하게 잡아줬다. 연어 대신 생 모차렐라 치즈와 신선하고 다양한 채소가 듬뿍 얹어진 카프레제 타르틴도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는 메뉴라고.

셰프가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쳐 내놓는 유러피안 요리의 신세계를 정중하게 대접받는 느낌이 들기에 충분했다. 김 셰프는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유럽 요리를 좀 더 폭넓게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패기 넘치는 20대 셰프가 내놓을 다양한 한·유럽 퓨전 음식도 기대된다.

파스타·타르틴 1만 7000~2만 1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9시 30분. 브레이크 타임 오후 3시 30분~5시. 매주 월요일 휴무.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298(중동) 팔레드시즈 상가 2-4호. 051-742-0700.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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