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라린 속에 시원한 구멍이 뚫렸다

입력 : 2016-12-21 19:41:31 수정 : 2016-12-23 10: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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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자체의 싱그럽고 시원한 맛이 깊이 우러나는 용원횟집 물메기탕.

시절은 하 수상하고, 연말은 또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청탁금지법으로 음식점 경기가 위축됐다지만 해 넘기기 전 만나지 않고는 지나치지 못할 친지 동료는 있다. 이런 자리에 술이 빠지기 어렵고, 묻어 둔 얘기를 나누다 보면 간혹 술이 술을 부르는 사태도 발생한다. 다음 날 지친 속을 달랠 시원한 국물이 필요할 때 물메기탕과 대구탕은 빠질 수 없는 선택지다.

■용원시장 2인자, 물메기

용원횟집 '물메기탕'
맑은 국 한 술 넘기니 탄성이 절로
제철음식답게 맛과 양 모두 충족


부산 강서구에 인접한 진해 용원시장은 요즘 가덕 대구가 주인공이다. 거의 1m에 이르는 덩치를 자랑하며 누워 있는 대구의 위용은 행인들의 눈길을 잡기에 충분하다. 이맘때 용원시장을 찾는 사람 팔 할은 대구를 찾는 손님이다. 탕 회 전 등으로 무한 변신하는 생대구의 향연을 선보이는 식당도 시장 안에 즐비하다. 재료가 싱싱하기에 어느 식당을 가도 웬만해선 실패하지 않을 터. 그래서 물메기를 택했다.

술 좀 마신다는 꾼들 중에는 대구보다 물메기를 속풀이 국으로 더 치는 사람도 꽤 된다. 1인자의 그늘에 가려 있지만 물메기는 해장계의 숨은 강자다.

주말을 맞아 한바탕 주차 전쟁을 치르던 지난 17일 용원시장 입구에 자리 잡은 '용원횟집'을 찾아 물메기탕을 주문했다. 임은미(51) 대표는 "주문 90%는 대구탕인데, 물메기도 요즘이 제일 맛있을 때"라고 맞장구를 쳤다.

먼저 나온 방게볶음, 껍질째 오도독 씹어 보니 작아도 고소함은 큰 게 못지않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니 물메기탕이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리며 등장했다.

시내에서도 접했던, 맑은 국에 연한 속살 그대로다. 뜨끈한 국물을 한 술 떠 넘기니 '으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뜨거운 열탕에 몸을 담그며 '으~ 시원하다' 하는 어르신들의 심정이 백분 이해된다. 술기운만이 아니라 각종 스트레스와 피로로 굳어 있는 속을 따뜻하게 감싸며 풀어주는 느낌이다.

물메기는 해장계의 숨은 강자다.
연방 국물을 떠넣으며 살펴보니 토실한 살덩어리가 풍성하다. 게다가 살점이 흩어지지 않고 탄탄하게 붙어 있다. 그렇다고 덜 익은 것도 아니다. 제철 음식은 이렇게 맛과 질, 양 모두를 충족시켜 준다. 반찬으로 나온 명란젓도 짜지 않아 젓가락이 자꾸 갔다.

부산 동구에서 2년 동안 '용원횟집'이라는 상호로 영업하다 4년 전 이곳 용원시장으로 자리를 옮긴 임 대표는 남편 김형호 씨와 함께 가게를 운영한다. "대구나 물메기 모두 재료가 좋기 때문에 인공 조미료를 일절 쓰지 않고 무 미나리 대파 마늘 같은 재료로만 맛을 낸다"며 "요즘 같은 대구철에는 번호표 받고 기다릴 정도로 손님이 몰린다"고 했다.

용원시장 대부분 가게는 '○○수산' '○○횟집' 같은 상호를 달고 있다. 봄~가을에는 일반 회 타운과 마찬가지다. 이 집도 자연산 회를 파는데, 동시에 내세우는 것이 물회다. 임 대표가 직접 만든 과일 효소로 물회 양념장을 만든다. 여름철부터 10월까지 맛볼 수 있는 계절 메뉴다.

물메기탕 1만 5000원, 생대구탕 2만 원, 대구 코스(회·전·탕) 1인 3만 5000원. 영업시간 오전 9시(겨울)·오전 11시(여름)~오후 9시. 경남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로 242-3(용원동). 055-547-0455.

■가까이서 즐기는 얼큰 대구탕
아저씨대구탕은 칼칼한 대구탕 국물에다 바다향 물씬한 멍게젓갈과 파래무침이 입맛을 돋운다.
아저씨대구탕 '대구탕'
주문 들어오면 끓여 살점 '탱탱'
국물은 '칼칼'… 멍게젓갈도 인기

물메기도 좋고 생대구도 좋지만 제철 탕 맛보려고 먼 길, 혹은 약간 더 비싼 밥값 감당하기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장을 포기할 수도 없다면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세계 무대에 부산이라는 브랜드를 각인시킨 부산국제영화제 철이 되면 아침저녁으로 붐비는 집이 있다. 아침은 대구탕, 저녁은 대구뽈찜이 주된 메뉴다. 대로 옆도 아닌데 영화제 참가자들은 부산지역 영화계 인사들의 소개로 알음알음 이 집을 다녀갔다. 바쁜 일정상 해운대를 벗어날 수 없으니, 가까운 데서 알맞은 해장법을 찾았던 셈이다.

해운대 미포 오거리에서 바다 방향 옛 철길을 지나 왕복 2차로 길로 내려가다 거의 끝에서 왼쪽 골목으로 꺾어 쭉 들어가면 나오는 '아저씨대구탕'이다. 차량 진입이 가능하고, 가게 앞에 전용 주차장도 있다. 대신 길이 좁아 교행이 어려운 점은 참고해야 한다.
진해 용원시장은 요즘 가덕 대구가 주인공이다.
이 집은 냉동 대구를 쓴다. 대신 마리째 사서 해체와 세척, 손질을 직접 한다. 한꺼번에 많이 끓여 놓고 거기서 주문량에 맞춰 퍼 주는 방식이 아니다. 주문이 들어온 뒤에야 재료를 양에 맞춰 넣고 끓인다.

마침 중계되는 국정조사 청문회를 지켜보며 기다리던 중 나온 대구탕 뚝배기 속에선 숭덩숭덩 썬 무 사이로 포동포동한 대구 살덩어리가 보였다. 국물은 고춧가루가 약간 뿌려져 옅은 붉은빛을 띠었다.

국물이 시원하면서 칼칼했고, 살점은 탱탱했다. 차경희(53) 대표는 "미리 끓이면 대구 살이 흐물흐물해지기 때문에 즉석에서 끓여 낸다"고 했다. 경남 산청 출신인 차 대표는 남편 전신덕 씨와 10년 전 이 가게를 상호 그대로 인수하여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 집 반찬 중에는 단연 멍게젓갈이 인기다. 한 젓가락 입에 넣어보니 갯내음이 입 안에 확 퍼진다. 차 대표는 "대구탕도 좋지만, 멍게젓갈 때문에 온다는 손님도 있다"며 "밥 위에 멍게젓갈을 얹어 김에 싸서 먹는 게 제일 맛있다고 하더라"고 알려줬다. 함께 나온 파래 무침도 바다향을 전하는 데 한몫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 제철 생대구가 꼭 아니어도 지친 속을 달래줄 음식들은 이렇게 우리 가까이에도 있다.

대구탕 1만 원, 대구뽈찜 소 3만 원·대 4만 원, 영업시간 오전 7시~오후 9시. 2·4주 월요일 휴무.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62번가길 31(중1동). 051-746-2847.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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