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상 차리면… '삼만 리' 일광 맛집, 동해선 타면 지척

입력 : 2017-01-11 19:05:40 수정 : 2017-01-13 09: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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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파와 깨를 뒤집어 쓴 붕장어구이. 진미초장에서는 건강식품인 붕장어를 편리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길은 지역을 잇는다. 특히 누구나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은 광대한 도시를 친밀하게 만드는 마법이다. 지난해 연말 개통한 동해선 부전~일광 구간은 버스를 갈아타며 짧아도 1시간 이상 가야 했던 한적한 바다 마을을 도심에서 30여 분 거리에 바투 가져다 놓았다. 가까워진 부산 기장군 일광면에 산재한 맛집을 찾아봤다.

구워주는 '진미초장' 붕장어구이
불맛, 매콤달콤 양념 배어 감탄사
붕장어매운탕, 칼칼하고 깊은 맛

흰 쌀밥에 성게알 듬뿍 '미청식당'
쌉쌀한 맛과 바다 풍미 한가득

일광대복집·명주네꽁당보리밥 등
오늘 일광 숨은 맛집 탐방 어때요?

▶매콤달콤 붕장어구이 '진미초장'

부산은 해안선을 따라 횟집만큼이나 해산물 구이집도 많다. 청사포에서 구덕포, 송정, 연화리, 대변항, 월전, 칠암까지 형성된 동쪽 해안 구이집들은 조개, 먹장어(곰장어), 붕장어(아나고)를 주로 다룬다. 눈앞의 바다를 바라보며 구워 먹는 장어와 조개 맛을 못 잊는 사람들은 먼 길 마다않고 주말마다 차를 몰고 모여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내에서도 동해선을 타고 쉽게 갈 수 있게 됐다.

일광역 1번 출구로 나와 길 건너 이천교를 지난 뒤 바닷가로 내려가면 횟집과 구이집이 모여 있는 이천마을이 나온다. 이곳은 자갈치나 민락동에서처럼 마음에 드는 횟감을 사서 초장집에 가져가면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붕장어도 ㎏ 단위로 사서 초장집에 가져가면 된다.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진미초장'을 지난 7일 찾아보니 편리한 맛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붕장어를 따로 살 필요 없이 재룟값에 양념값까지 한꺼번에 치를 수 있었다. 다만 장어값은 바로 옆 이천시장에서 사오기에 현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더 좋은 점은 연기와 냄새 범벅이 되기에 십상인 장어 굽는 일에서 해방된다는 점이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가게 안은 외지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기다려야 한다는 종업원의 말에도 손님들은 끊이지 않고 들어 왔다. 운 좋게도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붕장어구이가 나왔다.

큼직하게 구워 나온 것을 한입에 먹기 좋게 가위질만 몇 번 하면 됐다. 불맛이 확실히 느껴지는 탱글탱글한 붕장어에 매콤달콤한 양념이 배어 있었다. 편리함에 맛을 겸비한 집이다. 손수 구웠다면 검은 재가 붕장어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양념 곳곳에도 묻어났을 터, 가만히 앉아 맛있는 바다의 보양식을 받아먹을 수 있다는 점이 감사했다.
붕장어가 우러나 깊은 맛을 내는 진미초장 매운탕.
두 접시에 나뉘어 담긴 붕장어구이 1.5㎏은 3명이 먹기에 충분했다. 이미 포만감이 느껴졌지만 매운탕을 꼭 먹어보라는 지인의 말이 생각나 밥 두 공기와 매운탕을 주문했다. 붕장어 머리 부위가 아낌없이 들어간 매운탕은 이미 부른 배도 잊게 만들었다. 칼칼하면서도 깊은 맛이었다. 이 집 김원수(68) 대표는 "매운탕은 고기를 많이 넣어야 맛이 난다"고 했다.

나올 때 보니 김 대표와 부인 정진옥 씨 내외가 가게 앞 1평 남짓한 공간에 앉아 익숙한 손짓으로 붕장어를 굽고 있었다. 불맛의 비결은 참숯이었다. 연기를 빨아올리는 후드가 있지만 밀려드는 주문 탓에 처리 용량을 초과하는 듯했다. 편히 먹은 붕장어구이가 더 황송하게 느껴졌다. 맛집으로 소개하려 한다 하니 정 씨는 "지금 오는 손님도 감당을 못할 지경"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10년 세월을 부부가 이렇게 연기 속에 들어앉아 보냈다고 했다. "우리 아프면 가게 쉬어야 됩니더. 누가 대신해 줄 사람이 없어예." 양념 비법이 있다면서도 절대 알려줄 수 없다는 정 씨에게서 맛에 대한 고집과 열정이 느껴졌다.

붕장어 1㎏ 2만 5000원(시가), 양념 1㎏ 1만 원, 매운탕 5000원. 2,4주 수요일 휴무.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 부산 기장군 이천길 37(이천리). 051-721-4515.

▶쌉싸름 성게알비빔밥 '미청식당'
성게알을 듬뿍 끼얹어 내온 미청식당 앙장구밥. 밥과 반찬 모두 바다의 맛과 향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해삼 내장(와다)을 싱싱한 광어에 무쳐 내놓는 안주는 바닷가 술꾼들의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내륙에선 이런 안주, 구경하기도 어렵다. 성게알, 정확히는 말똥성게에서 긁어낸 생식소 역시 귀한 안주다.

그런데 이 성게알을 양껏 밥에 얹어 쓱쓱 비벼 먹는 식당이 일광역 바로 옆에 있었다. '미청식당'이다. 일광역 1번 출구로 나와 남쪽 면사무소 방면으로 150m 정도만 가면 된다.

먼저 식탁에 깔린 반찬부터가 '바다로의 초청장'이었다. 젓갈, 초장과 함께 바다달팽이라는 군소, 바닷말인 서실, 여기에 미역, 다시마, 김이 나왔다. 데친 흰목이버섯과 브로콜리도 보조를 맞추고, 도루묵 조림이 양념 맛을 더했다.
이어 흰 쌀밥에 성게알이 듬뿍 얹혀 나왔다. 이 집에서는 성게알비빔밥을 '앙장구밥'이라고 부른다. 성게를 부산 지역 해안에서는 앙장구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김과 통깨가 살짝 도울 뿐 양념은 없었다. 성게알 맛을 느끼려고 그대로 비볐다. 최미향(50) 대표도 "재료 맛이 좋으니까 성게알밥에는 양념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밥알 속에 스며든 노란 성게알을 보며 한 입 떠먹어 봤다. 느껴지는 것은 맛이라기보다는 향기였다. 해초를 먹으며 자란 성게가 겪은 바닷속 시간이 향기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그리고 혀끝에는 쌉쌀한 맛을 남겼다. '쓴맛이 사는 맛'이라는 채현국 선생의 말이 떠올랐다. 다른 맛을 감추고 음식을 많이 먹게 만드는 상업적인 단맛에 우리는 너무 길들여 있는 것 아닌가, 자문하기도 했다. 성게알밥의 미덕은 이런 생각 거리를 던져주면서도, 그 쌉쌀한 맛이 결코 싫지 않다는 점이다. 마른 김을 얹어 먹으니 바다 향은 배가되었다.
미청식당 앙장구밥의 재료인 성게.
대를 이어 성게알밥을 내놓던 이 식당을 5년 전 인수받아 운영하고 있는 최 대표는 "동해선 개통 후 시내에서 오는 손님이 늘었다"면서도 "경기가 좋지 않아 동해선 개통 효과가 언제까지 갈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놨다. 바닷속 백화현상 때문에 성게도 줄어든다는 게 우려될 뿐, 이 쌉쌀한 맛은 오래 기억될 것 같았다.

앙장구밥 1만 5000원, 갈치구이 2만 5000원, 가자미찌개 1만 5000원.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9시. 부산 기장군 일광로 77-43(삼성리). 051-721-7050.

그밖의 맛집들

동해선 일광역 신설의 최대 수혜자는 복국 맛있기로 소문난 '일광대복집'(051-721-1561)이 아닐까 싶다. 일광역 출구와 맞닿은 집이다. 이천리 바닷가에 있는 일광홍두깨손칼국수(051-722-1737), 한국유리 부산공장을 지나 바닷가로 약 4㎞ 거리에 있는 명주네꽁당보리밥(051-722-3687)은 맛집 탐방객들 사이에 싸고 맛있다고 알려진 집이다. 일광해수욕장 바로 앞 카페 에스페랑스(051-721-0160)는 커피도 볶고 빵도 굽는 집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이 근사한데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맛집 탐방 뒤에 한잔의 커피를 즐기기에 좋다.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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