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문화·맛 오감만족 신명 나는 어울림

입력 : 2017-02-08 19:07:05 수정 : 2017-02-10 10:16:26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녹차식빵, 먹물콰트로치, 아메리카노, 녹차라테.

'부산' 하면 바다라지만, 도심에 솟은 멋진 산도 빼놓을 수 없다. 계절의 오감을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휴식처다. 그중에서도 부산의 진산은 국내 5대 사찰인 범어사를 품고 있는 금정산. 이 산허리에 자연과 문화를 함께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겨울의 끝자락, 나들이를 겸한 맛집 기행에 어울릴 만한 금정산 자락 가게들을 찾아봤다.

더팜471

보리밭 너머 보이는 '더팜471' 건물.
주변엔 봄 알리는 전령들 반갑게 손짓
빵엔 설탕 대신 꿀 사용, 커피·음료 엄선
카페 아래엔 갤러리 전시 공간도 마련

몇몇 지인들로부터 '강추'를 받고는 내심 카페가 좋아 봐야 거기서 거기겠지, 생각했다. 범어사 아래 상마·하마 마을에 산재한 맛집도 몇 군데 알고 있었다. 그 여러 집 중 하나겠지, 여겼다.

완연한 초봄 느낌이 물씬 나던 지난 5일 이 집을 찾아가 봤다. 절을 찾는 관광객, 금정산을 오르는 등산객이 뒤섞여 북적이는 범어사 입구를 지나 내리막 굽은 길을 두어 번 돌아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더팜 손님은 여기 주차하시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산골 주민들의 삶터를 가로지르는 골목을 지나칠 때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데 무슨 카페가 있단 말이지?' 잠시 후 시야가 트이더니 멀리 나지막한 새 건물이 보였다.

보리밭을 지나고 개울을 건너 '더팜471'에 이르렀다. 곧바로 들어가지 않고 가게 위로 좀 더 올라가 봤다. 겨울 속에 숨은 봄을 먼저 발견한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는 봄을 이르고 있었다. 웅덩이에서는 '그르륵' 대는 정체 모를 울음소리 여럿이 들렸고, 발소리를 숨기며 다가가 보니 개구리 수십 마리가 물속으로 첨벙대며 몸을 숨겼다. 경칩은 아직 30일이나 남았는데….

내습한 봄을 한동안 만끽하다 가게로 들어가 음료와 빵 몇 가지를 주문했다. 2층으로 올라가 두리번거리다 햇살 좋은 야외에 자리를 잡았다. 경사지에 길쭉하게 앉은 더팜471은 실내 공간도 다양하지만 2층과 이어진 마당에도 편안한 자리가 여럿 있다. 엘올리브와 캐비넷을 만든 고성호 PDM파트너스 대표가 설계했다.
카페 마당에 널찍하게 마련된 좌석에 앉아 햇빛과 바람을 느끼며 녹차식빵, 먹물콰트로치, 아메리카노, 녹차라테를 맛봤다.
금정산 정상을 올려다보며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삼켰다. 신맛 단맛 쓴맛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뭉게구름이 잠시 해를 가렸고, 바람이 살랑거렸다. 폭신폭신한 녹차식빵을 뜯어 한 입 씹어 봤다. 다시 울기 시작한 개구리 울음소리에 달콤한 맛이 배가되는 듯했다. 맛은 입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함께 간 딸은 녹차라테와 먹물콰트로치를 먹었다. 고르곤졸라는 어른이, 콰트로치는 청소년이 좋아한다고 변종화 점장은 말했다. 녹차라테의 쌉쌀한 끝 맛도 좋았다.

변 점장은 "더팜 471에서 판매하는 베이커리는 10여 종인데 매일 오전 5시부터 파티시에들이 좋은 재료만 갖고 정성을 다해 만든다"며 "설탕 대신 꿀을 사용하는 등 메뉴를 만들 때 건강에 좋은 재료를 사용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자연과 맛에 문화를 더한다는 것이 더팜471의 특징이었다. 카페 아래쪽으로는 갤러리 수암(水岩)이 있다. 커피를 마시는 공간도 함께 배치된 이곳에서 조명환 작가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변 점장은 "전시 공간을 필요로 하는 신예 작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리가 무르익는 5월에는 '하마예술제'도 열릴 예정이다.

아메리카노 5000원, 오늘의커피·녹차라테 6500원, 녹차식빵 5500원, 먹물콰트로치 5000원, 고르곤졸라 48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7~9월 오후 11시까지). 부산 금정구 하마2길 28-17(청룡동). 051-518-3355.

레스토랑 구상
금샘로 외식관광타운에 들어선 레스토랑 '구상' 건물.
부분 조명·꽃 장식·벽 구획 등으로 공간美
사골육수로 만든 토마토소스 '부드러운 맛'
회의·공연·강연·동호회 모임도 유치 계획

도시철도 구서역부터 범어사역까지, 금정산 허리를 끼고 도는 금샘로에는 오래전부터 외식관광타운이 조성돼 있다. 몇 년 전부터는 부산외국어대가 이전해 오고, 구서·장전동 재개발이 속속 완성되면서 금샘로 외식타운 유동인구도 늘어나고 있다. 내년 9월 산성터널 개통으로 화명신시가지가 지척으로 연결되는 것을 또 하나의 호재로 기대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식, 중식, 일식 등 눈에 익은 메뉴의 식당이 주를 이루던 이곳에 지난 1월 7일 특이한 음식점이 문을 열었다. 이탈리안 음식에 기반을 두고 우리 입맛에 맞는 새로운 음식 개발을 추구하는 곳이다.

건물을 둘러보니 1층은 디자인 컨설팅 사무실과 주차장, 2층은 일반 레스토랑(캐주얼 다이닝), 3층은 예약제로 운영하는 고급 레스토랑(파인 다이닝), 옥상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라운지로 구성돼 있다. 가게 이름인 '구상'을 형상화한 로고 타입이 외벽에 붙어 있고, 2층 실내에서 상영하는 영상물이 창에 그대로 비친다.
일반 레스토랑인 2층 내부 모습.
2층에 들어서니 탁 트인 공간이 좋았다. 부분 조명으로 공간이 구획돼 적당한 거리감을 느낄 수 있게 했고, 테이블마다 꽃 장식이 얹혀 있었다. 금샘로를 낀 창가는 거리를 내려다보는 맛이 있고, 그 반대편으로는 인공적으로 구획 지은 벽 앞에 테라스 좌석이 마련돼 있다. 3층과 옥상까지 둘러보니 건축에 꽤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다. 나눔과 트임, 비움과 채움이 치밀하게 배치된 것 같았다. "윤재민 JMY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설계했는데 2년 동안 치열하게 토론해가며 지었다"고 이상구 대표는 말했다.
이탈리안 메뉴인 해물 스파게티와 대하 페투치네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했다.
2층으로 돌아와 토마토소스 해물 스파게티와 비스큐로제 소스 대하 페투치네를 주문했다. 해물 스파게티는 다른 레스토랑에서 맛본 것보다 훨씬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레이 리 셰프에게 물어보니 "저희 가게에서는 토마토소스를 만들 때 사골 육수를 쓴다"고 했다. 톡 쏘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소스 맛의 비밀이 거기 있었다. 대하 페투치네는 1㎝에 이르는 넓고 납작한 면발이 탱탱한 식감을 제공했다. 리 셰프는 "큰 레스토랑에서는 파스타를 할 때 생면을 쓰기 어려운데 저희 구상에서는 최대한 신선하고 건강한 음식을 대접하려고 이틀 정도 숙성시킨 생면을 고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을 연 지 한 달 남짓인데 구상에서는 오픈 콘퍼런스 외에도 클래식 기타 콘서트와 강연회가 한 번씩 열렸다. 이 대표는 공연·강연과 동호회 모임도 적극적으로 유치할 생각이다. 당장 10일 오후 9시 재즈밴드 레인메이커와 8v DJ를 초청해 워밍업파티도 연다. 3월부터 정기적으로 개최할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입장료 2만 원을 내면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야기 나눌 수 있다.

토마토소스 해물 스파게티 2만 2000원, 비스큐로제 소스 대하 페투치네 2만 4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11시(브레이크 타임 오후 4~6시). 부산 금정구 금샘로 399-1(구서동). 051-583-9093.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