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구경도 食후경

입력 : 2017-03-08 19:06:38 수정 : 2017-03-10 09:5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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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 있는 홍합과 톳이 갓 지은 밥과 조화를 이루는 홍합밥.

얼어붙었던 땅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볕 좋은 날, 혹은 비 내리는 분위기 있는 날 교외로 나가 계절의 변화를 확인하고 싶은 때다. 마침 오는 18~19일 경남 양산 원동에선 매화 축제가 성대하게 열린다. 꽃구경도 '셀카'도 좋지만, 금강산도 식후경. 건강과 맛을 모두 생각한 맛집을 들러보면 어떨까.

동심

건강 듬뿍 '홍합밥'


상춘객은 자연에 가까이 한 걸음 다가갔으니 밥상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 같다. 그런 마음에 딱 들어맞는 집을 지인의 추천으로 운 좋게 알게 됐다.

영축산에서 발원한 양산천을 끼고 통도사 매표소 바로 아래 자리 잡은 '동심'이라는 밥집이다. 통나무로 지어진 겉모습은 카페에 가깝고, 실내에 들어서면 귀촌한 친구 집에 초대받은 느낌이다. 성정임(56) 대표에게 물으니 1층은 식당으로, 2층은 성 대표 가족이 집으로 사용하고 있단다. 캐나다에서 수입한 통나무로 견고하게 지은 집이다.

친환경 쌀 30%·찹쌀 70% 섞어 밥맛 최상
신선한 홍합·톳과 어우러져 환상의 조합
치자버섯밥, 색감·식감·향으로 오감 만족
맑은 해물탕 같은 홍합탕 누룽지 '이색적'


이 집은 5년 전 문을 열었다. 평소 친지를 불러들여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며 보람을 느끼던 성 대표는 우연찮은 기회에 밥집을 시작했다. 맛있는 밥 한 그릇, 된장, 그리고 나물 3가지 정도만 대접하면 되리라 믿고 시작했고, 지금도 상업적인 계산 없이 '하루 50명 정도만 받자' 되뇐다.

이 집 대표 메뉴인 동심 홍합밥을 먹어봤다. 우선 주문과 동시에 압력솥에 안친 밥이 맛있다. 오리농법으로 지은 거창 친환경 쌀에 찹쌀을 70% 섞는다고 한다. 웬만하면 금방 한 밥은 다 맛있는데 쌀도 좋으니 찰지고 입속에 착착 감길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전남 여수 가막만에서 공수한 신선한 홍합을 참기름과 청주로 살짝 덖어 넣었다. 살이 물러지지 않고 탄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제주도 산 말린 톳도 홍합과 함께 바다 향을 전하는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한다. 직접 담근 간장으로 버무린 부추와 김 가루를 뿌려 비벼 먹으니 감칠맛이 더한다.

샛노란 빛깔로 시선을 잡는 치자버섯밥.
홍합밥이 취향에 맞지 않는 손님들을 위해 추가한 치자버섯밥은 샛노란 치자 색감, 몰캉한 느타리버섯 식감, 은은한 은행 향기가 더해 오감을 만족시킨다. 밥만 먹어도 건강해질 것 같은 기분이다.

성 대표가 직접 담근 고추·엄나물 장아찌, 방풍나물 무침도 마치 집에서 먹는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이다. 역시 직접 담근 된장을 풀어 끓인 강된장은, 발효 한 번 없이도 장맛을 내는 가공 된장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여름에 가면 토종 민들레와 오가피 장아찌가 나온단다. 그릇에 밥을 푸고 솥을 가져가더니 식후에는 누룽지가 나왔다. 홍합밥 누룽지는 맑은 해물탕 같은 색다른 느낌이었다.

왜 홍합밥이었을까? "밥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반찬이 간단하고, 집에서 종종 해 먹던 음식이어서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게 성 대표의 답이다. 이 대답 끝에 "아직도 돈 내고 밥 먹으러 오는 손님맞이를 한다고 생각하면 긴장된다"고 그는 말했다. 아무에게나 음식 만들기는 맡기지 못하겠다며 주방 일을 다른 사람에게 허용하지 않고, 장아찌에 쓸 약초를 캐러 봄이면 들로 산으로 다니는 '프로'이면서도 아마추어의 순수한 초심을 잊지 않은 것이다.
정성으로 만든 된장과 반찬.
이 집에 갈 때는 예약을 하고 가는 편이 낫다. 주문을 받아야 밥을 안치기 때문이다. 급하지 않다면 기다리는 15~20분 동안 집안과 통도사 입구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동심 홍합밥·치자 버섯밥 각 1만 2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 월요일 휴무. 경남 양산시 하북면 신평강변로 78(순지리). 055-382-2535.

또랑에서 밥묵자

자연 속의 집에서 먹는 '바비큐'

삼겹살과 목살을 중심으로 푸짐하게 담긴 돼지고기 바비큐.
가족끼리 나들이하다 보면 어른들 식성에만 맞출 수 없을 때가 많다. 요즘 아이들, 고기를 엄청 좋아한다. 고기 자르고 뒤집으랴, 아이들 수발하랴 고깃집에서 느긋하게 이야기 나누며 먹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직원들이 대신 구워주는 고깃집이 인기다.

블로그로 눈여겨보다 찾아간 '또랑에서 밥묵자'는 그런 점에서 아이와 어른 모두 만족스러울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한 자연의 푸근한 품을 느낄 수도 있다.

샐러드·대추밀쌈을 '전채 요리'로
가게 앞 터에서 직접 키운 채소 밥상에
'고기+채소' 가족 나들이객에 안성맞춤


우선 이 집은 양산 매곡동 그린공단이 만들어지면서 진입로도 새로 생겼다.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하지 않았다면 스마트폰 지도 사용을 추천한다. 주소만 보고 찾아가다가 막다른 길에서 돌아오는 실수, 이 집 손님들은 꼭 한 번씩 한다는데 기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시 갈림길마다 식당에서 붙인 이정표를 따라가며 '밥집이 이렇게 깊숙이 들어앉아 있어도 되나, 이런 공장들 사이에 무슨 밥집이 있을까' 회의가 들기도 했다.

고갯길을 돌아 가게로 내려가는 진입로를 발견하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얀 컨테이너 6개가 계곡 앞에 쌓여 있었고, 그것이 식당 건물이었다. 차를 대고 식당에 들어가 앉으니 영락없는 두메 산중이었다. 덕계와 정관 사이 함박산과 용천산에서 발원한 계곡물이 식당 앞마당으로 졸졸 흘러내리고, 병풍처럼 둘러싼 산줄기 사이로 햇살이 내리쬐는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이래서 또랑에서 밥묵자구나.'
직접 만든 장아찌와 신선한 쌈.
토목건설업에 종사하는 최태용 씨는 개울이 좋아 이 땅을 사뒀고, 1년 동안 가족과 손수 이 집을 지었다. 가게 문을 연 지 이제 6개월이다. 아직 직장에 다니는 최 씨는 주말 바비큐를 담당하고, 주방을 비롯한 전반적인 식당 운영은 여동생 최영순 대표가 맡았다. 이 집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는 돼지고기 바비큐를 주문하고 앉아 있는데 넓은 접시에 채소 샐러드와 대추밀쌈이 나왔다. 대추 삶은 물로 반죽한 밀전병에, 대추 표고버섯 파프리카 등 신선한 채소를 싸서 겨자 소스에 찍어 먹는다. 샐러드드레싱은 최 대표가 유자청을 기본으로 손수 만들었다. 반찬으로 나온 미나리·죽순 장아찌와 동치미 역시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었다.

사찰요리를 2년 정도 배웠던 그의 장아찌, 소스, 장 만드는 솜씨는 아마추어로 보기 어렵다. 게다가 터를 널찍하게 확보한 덕에 가게 앞 밭에서 고추와 배추, 무 등 채소를 직접 키워 밥상에 내놓는다. 김치는 지난해 밭에 심은 고추 모종 600개로 고춧가루를 빻고, 밭에서 키운 배추로 담갔다. 홀로 주방을 도맡다 보니 힘들기도 하지만 최 대표는 '인공 조미료를 쓰지 않고 자연 재료로 맛을 낸다, 가능한 한 모든 재료는 손수 장만한다'는 고집을 앞으로도 꺾지 않을 생각이다. 음식과 요리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졌다.
유자청과 겨자 소스가 인상적이었던 샐러드와 대추밀쌈.
주말·휴일은 물론 평일 점심에는 인근 공단 손님도 있으므로, 바비큐나 고기 구이류는 2~3시간 전에 예약하면 오래 기다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돼지고기 바비큐 세트 중(400g) 5만 원, 대(600g) 7만 원. 한우 석쇠구이 정식 2인(300g) 4만 원, 4인(600g) 8만 원.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8시. 경남 양산시 그린공단3길 68(매곡동). 055-364-4481.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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