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돼지국밥 '전통 vs 새내기' 열전

입력 : 2017-03-15 19:06:37 수정 : 2017-03-17 1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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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 돼지고기 앞다릿살이 맑은 국물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의령식당 돼지국밥은 반찬은 단출해도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이 충분히 입맛을 채워준다.

밀면과 함께 관광도시 부산을 찾는 사람들이 꼭 먹어본다는 음식, 돼지국밥. 가게도 많고, 많이 먹어 보기도 했기에 부산 사람은 웬만해선 만족하지 않는다. 돼지국밥이 맛있어 봐야 거기서 거기라고 여기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도 발굴되지 않았거나, 새롭게 등장한 '돼지국밥 강호'는 아직 많다. 부산 최대 관광지 해운대에 자리 잡은 대조적인 두 돼지국밥 맛집을 찾아봤다.

'30년 노하우 숨은 맛집'

의령식당


여러 동료·지인으로부터 추천받은 돼지국밥집이 의령식당이었다. 꼬리표가 있었다. "먹을 수는 있어도 취재는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였다. 일단 먹어보고 판단하자 생각했다. 관광객들이 흔히 찾는 '해운대'가 아니었다. 옛 해운대역 뒤에서 장산 쪽 능선으로 오래전부터 형성된 마을이었다. 반듯한 구획 도로와 초고층 아파트가 없어 옛 정서가 남아 있는 동네였다.

좌식 식탁 2개를 포함해 테이블 6개. 점심시간을 맞아 넓지 않은 공간은 가득 차 있었다. 국물 맛을 보려고 따로국밥을 시켰다. 잠시 후 밥과 국, 배추김치와 깍두기, 부추 무침, 풋고추, 마늘, 쌈장, 새우젓이 한 쟁반에 단출하게 담겨 나왔다.

맑은 국물, 시원 칼칼한 맛
잡내 없고 구수함 살아 있어
국 간은 소금 대신 조선간장
모둠 반찬·장류, 손수 '고집'


돼지국밥의 핵심은 국물. 우선 맑다. 양념장을 풀어도 탁하지 않을 정도다. 장을 풀기 전 후후 불어 숟가락으로 한 입 떠먹어 보니 시원하고 약간 칼칼한 맛이다. 끈적이는 돼지기름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잡내도 없다. 구수한 맛은 그대로 살렸다. 공깃밥 절반은 밥 따로 국 따로 먹다가 나머지 절반은 말아 '마셨다'. '게 눈 감춘다'는 표현이 여기에 딱 맞다. 하긴 이제 마파람이 부는 계절, 봄 아닌가.

며칠 뒤 주말 저녁 다시 찾아봤다. 이번엔 동네 주민들로 보이는 손님들이 저마다 테이블에 앉아 '혼밥'을 즐기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낡고 작은 TV를 보며 '따로 또 같이' 먹는 밥이었다. 몇몇 식탁에는 소주병이 얹혀 있었다. '그렇지. 국밥엔 소주지!' 몰고 간 차를 원망하며 애꿎은 국물만 더 달라고 해 마셨다.

"우리는 동네 장삽니다. 식탁도 몇 개 안 되고 손님들 많이 받을 처지도 못 됩니다." 첫 방문에서 이런 완곡한 취재 거절을 당하고 다시 찾은 길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국밥을 좀 더 많은 사람이 맛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설득했다. 빈중원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장사 더 크게 하고 싶은 욕심도 없습니다. 오는 손님들 맛있게 대접하는 지금 상태로 만족합니다." 

동네 풍경처럼 세월에 빗겨 있는 말이었다. 이날도 영업시간은 아직 2시간이나 남았는데 고기가 떨어져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었다. 이런 초탈한 주인에겐 매달리는 수밖에. 이 국물맛은 대체 어떻게 나오는 건지 물었다. 선문답하듯 빈 대표가 밝힌 답은 이랬다.

①돼지 사골만으로 국물을 낸다. 오래전부터 거래하는 경매장 중도매인이 가져다준다. ②핏물을 빼고 8시간 정도만 곤다. ③고기는 주 2회 직접 구매한다. 비싸도 맛있는 앞다릿살이다.

너무 평이하지 않은가? 좋은 재료 맛을 조율하는 비법은 직접 만든 장이었다. 빈 대표 부인 손복희 씨가 친정인 경남 산청에서 가져온 메주로 된장·간장을 만들고, 김치에 넣는 멸치젓도 직접 담근다고 했다. 국을 끓일 때 소금 대신 직접 담근 조선간장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30년 전 빈 대표 어머니와 손 씨, 고부가 함께 운영하기 시작한 의령식당은 이제 초로의 부부가 동네 주민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공간이 됐다. 식당에서조차 납품받은 반찬이 적지 않은 시대, 장 하나부터 손수 만들기를 고집하는 정직한 밥상은 '타산이 나오지 않는다'는 빈 대표 부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수육백반 1인분에 나온 풍성한 고기
타산에 휘둘리지 않는 이런 집이 더 커져 많은 사람이 맛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한 편으로, 그 마음 변하지 않게 지금 모습 그대로 유지했으면 하는 걱정이 교차한다. 그래도 하나 믿을 것은 빈 대표 부부의 선한 눈빛이었다.
 
돼지·내장 국밥 각 4500원, 따로국밥 5000원, 수육 백반 6500원, 수육 소 7000원·대 1만 2000원. 영업시간 오전 8시 30분~오후 9시. 일요일 휴무. 부산 해운대구 우동1로50번길 15(우동). 051-746-9661.

'떠오르는 신상 국밥'

할매집

할매집 돼지국밥은 뽀얗고 진한 국물이 특징이다.
해운대구청 앞에 할매탕이라는 온천이 있었다. 이 일대 온천 중 가장 먼저 생긴 원탕으로 불렸다. 옛 건물을 허물어 해운대온천센터로 신축되면서 일대 풍경은 달라졌다. 관광특구 해운대의 가치도 높아졌다.

지난해 1월 이 온천센터 앞 상가에 문을 연 할매집은 겉모습부터 돼지국밥 식당에 대한 통념을 깬다. 널찍한 공간에 짙은 색 통나무 식탁과 의자, 그윽한 조명 등 전반적인 인테리어가 감각적이다. 부산에서 그랜드애플·카카오트리 뷔페, 풍원장 꼬막정식 등의 인테리어를 맡았던 김은정 D&M디자인 대표의 솜씨다.

인테리어, 널찍하고 감각적
곰탕 닮은 뽀얀 국물, 진한 맛
고기 국수·자가 순대도 별미


인근 해주면옥과 북구 덕천동 신라농원을 운영하는 장상현 대표는 "부산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돼지국밥을 제대로 선보여 보자는 생각에 투자를 과감하게 했다"고 말했다. 메뉴는 서민적이어도 얼마든지 고급스러운 곳에서 먹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공간에 대한 첫인상에서는 그의 의도가 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확한 수요자층을 설정하고 공간을 꾸몄으니 맛을 제대로 내는 일만 남았다. 여기에는 해주면옥에서 갈비탕과 해장국 등 국물 음식을 만들어본 그의 경험이 녹아 있다. 이 집 국물은 뽀얗다. 쇠고기 곰탕 국물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고소한 맛도 진하다. 국내산 돼지 사골에서 피를 완전히 뺀 뒤 12시간 불 세기를 조절해가며 곤다고 했다. 여기에 국밥용 앞다릿살 삶은 물을 섞어 담아낸다. 뼈와 살이 녹은 국물이다.
같은 국물로 제주도에서 많이 먹는 고기국수도 내놓는다.
장 대표는 "중국 대만 홍콩 등 중화권 관광객들도 우리 돼지국밥을 거부감 없이 즐겨 먹더라"면서 "유행 타지 않고 시민들이나 관광객들이 꾸준히 찾는, 오래가는 맛집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과감한 투자 대상은 외부 인테리어만이 아니다. 매장 안쪽 주방은 웬만한 동네 가게 하나를 차릴 정도로 넓다. 돼지국밥을 중심에 내세우면서도 관광객들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고기국수, 파삼겹 철판구이, 자가 순대 등 다양한 메뉴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오래가는 맛집의 첫걸음이 여기서 시작된다.

'물에 빠진 고기는 먹지 않는다'는 독특한 취향을 가진 사람도 실제 많기에 일행이 여럿일 때 유용하고, 출출한 심야에 술과 함께해도 좋은 곳이다.
이 집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순대는 비리지 않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돼지·순대·내장·섞어 국밥 각 7000원, 고기국수 6500원, 파삼겹 철판구이 1인 9000원(2인 이상 주문 가능), 자가 순대 1접시 1만 원. 24시간 영업. 부산 해운대구 중동2로10번길 7(중동). 051-741-1184.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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