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음식, '공감각(시각 + 미각)' 봄나들이

입력 : 2017-04-05 19:09:01 수정 : 2017-04-06 1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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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의 구수함이 살아 있는 둔내막국수. 국물도 채소와 약초로만 우려내 깔끔한 맛이다.

평면 위에 어떻게 3차원을 표현할까. 근대 화가들은 원근법에 환호했다. 문제가 있었다. 오직 하나의 시점(視點)만 채택해야 했다. '시점이 어떻게 하나뿐일 수 있나.' 파블로 피카소는 폭력적인 원근법을 거부하고 보이지 않는 면까지 그렸다. 6월 6일까지 부산에서 그의 전 생애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흔찮은 기회가 마련됐다. 고려제강 폐공장 F1963이 미술관으로 활용된 것도 '피카소적 전환'일 수 있다. F1963에서 10여 분 걸어 나오면 '음식계 은둔 고수들의 무림' 수영사적공원과 팔도시장에 닿는다. 피카소 전시회 나들이의 화두는 '다양성'이다. 시각이든 미각이든.

둔내막국수

정통 메밀면, 씹을수록 구수한 풍미 가득
채소·약초로만 낸 국물 맛 '깔끔·시원'

강원도 막국수 전문점, 많다. 해장으로 시원한 막국수를 찾는 술꾼도 제법 된다. 대체로 메밀면 색깔은 회색빛이 도는데 촉감은 매끈매끈하다. 메밀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면발이 툭툭 끊기기 때문에 밀가루를 적절히 섞어 면을 만든다는 설명이었다.

망미·수영동 일대에서 정통 메밀면으로 유명한 '둔내막국수'는 달랐다. 면 곳곳에 회색빛 메밀가루가 박혀 있는 모양은 여느 막국숫집과 다를 바 없었다. 씹어보니 느낌이 왔다. 맷돌 역할을 하는 어금니에서 흔적없이 사라지는 밀가루 반죽과 달리 메밀은 몇 번은 더 씹어야 없어졌다. 메밀이 풍기는 쌉싸름한 입맛은 씹을수록 구수한 맛으로 바뀌었다. 싱싱한 열무김치를 얹어 먹으니 구수함과 상큼함이 어우러졌다. 해가 갈수록 짧아지는 봄이기에 벚꽃잎이 휘날리면 곧 여름이라는 뜻. 냉면, 밀면도 좋지만 구수한 메밀 막국수도 좋겠다 생각됐다.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이 고향인 박영숙 대표에게 메밀을 얼마나 넣는지 물었다. "11년째 메밀과 밀가루를 섞어 직접 면을 뽑고 있는데요, 메밀 비율이 50~60% 정도 됩니다." 단정함 속에 고집이 느껴지는 얼굴로 그는 답했다. "강원도 막국수도 메밀 비율이나 국물 내는 방법이 마을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저는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대로 만드는 거고요."

이 집 막국수의 또 다른 특징은 국물이다. 상당히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다. 채소와 약초만 넣고 국물을 낸다고 했다. 육수의 단골 소재인 육류와 어류를 피하고도 이런 맛을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기술이다. 팔도시장 뒷길, 골목 안에 있는 작은 집인데도 단골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메밀막국수·비빔막국수 각 7000원, 메밀전 4000원, 메밀전병 5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8시. 일요일 휴무. 부산 수영구 수영로725번길 62-3(수영동). 051-751-0097.

제주맛순대
제주맛순대의 몸국. 모자반, 시래기와 어울린 돼지 머릿고기는 쫄깃하고 야들야들해 씹는 맛이 좋다.
'제주 몸국' 부산 사람 입맛 맞게 변화
돼지 수육보단 머릿고기가 더 인기

말로만 듣던 제주 몸국을 먹을 수 있었다. 몸국은 제주에서 모자반을 일컫는 '몸'을 돼지 머릿고기, 시래기와 함께 끓여 내는 국이다. 초상이나 잔치 등 마을에 큰일이 있을 때 돼지고기를 여럿이 나눠 먹기 위해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제주도가 고향인 이숙희 대표가 5년 전 망미동 도롯가에 '제주맛순대'를 차리고 몸국을 내놓자 돼지국밥에 익숙해 있던 부산사람들이 신기한 눈초리로 찾아와 맛을 보고 갔다.

"처음에는 완전 제주도에서 먹던 식으로 했어요. 머릿고기 삶은 물만 쓰고, 메밀가루와 모자반도 많이 넣었죠. 그랬더니 국물이 너무 진해서 거부감이 든다는 겁니다. 그래서 조금 변화를 줬어요." 사골 육수를 섞고, 메밀가루와 모자반 양을 줄였더니 이제 입맛에 맞는다는 반응이 나왔다. 
머릿고기도 일반 앞다릿살이나 살코기에 비해 고소하면서도 쫄깃하고 야들야들해 씹는 맛이 좋다. 일반 돼지고기 수육은 메뉴에 있어도 거의 팔리지 않고, 이 집 수육 손님은 거의 머릿고기만 찾는다 했다. 적게 자주 만들어 신선한 배추 겉절이 김치는 몸국의 잔향으로 자칫 묵직할 수 있는 입안을 진정시킨다. 삶은 메주콩 가루, 사과, 배, 양파를 섞어 만든 저염 쌈장에도 손님의 건강을 생각하는 이 대표의 마음이 담겼다.

먹거리가 넘쳐나지만 '혼밥'이 대세인 역설의 시대, 공동체와 나눔의 정신을 느낄 수 있는 몸국으로 정서적 허기를 달래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제주몸국 6000원, 전복보말국 8000원, 머릿고기 수육 1만(소)~1만 5000원(대),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1시. 2·4주 월요일 휴무. 부산 수영구 구락로 95(망미동). 051-757-5980.

거창까막국수
몸에 좋은 국내산 잡곡으로 뽑은 탄력 있는 면과 멸치를 위주로 우려낸 국물이 잘 조화를 이룬 거창까막국수의 온국수.
몸에 좋은 국내산 곡물로 직접 제면
'손님 위한 건강한 음식을' 철학 고집

일부 백화점 푸드코트에도 들어가 있어서 약간은 '사업적 마인드'가 앞서는 곳 아닐까 의심했다. '거창까막국수' 지순연 대표는 사업이 확장돼서 좋겠다고 하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면 뽑고 국물 내는 일을 우리처럼 하면서 좁은 푸드코트에 들어가는 것은 맞지 않은 일이라는 걸 이제 알았다"고 했다. 거창까막국수는 직접 면을 뽑는다.

까막온국수를 한 그릇 먹어 봤다. 면 색깔은 메밀면과 비슷한데 면발이 탱탱하고 맛은 전반적으로 구수하다. 밀가루 40%에 속청 서리태, 약콩, 대두, 현미, 흑미를 섞어 반죽을 한다고 했다. 모두 국내산인 이 곡물 외에는 어떤 첨가물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장기간 보존할 수 없기에 조금씩 자주 만드는 수고를 감당해야 한다.

꼬장꼬장한 외고집이 느껴지는 지 대표의 자부심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맛도 맛이지만 저희는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든다는 자부심 하나로 가게를 합니다."

국물도 국산 멸치, 북어, 새우, 다시마 등으로만 만든다. 시원한 멸칫국물 맛이 제대로다. 지 대표의 깐깐함이 묻어나는 대목은 또 있다. 240㎏에 이르는 붉은 고추를 일일이 손으로 닦아 고춧가루를 빻고, 반찬을 담는 옹기가 세제를 흡수하지 않도록 식기세척기에 세제를 넣지 않고 헹구는 횟수를 늘린다고 했다.
"양조장 하시던 증조할아버지께서 독립운동 자금을 대셨습니다. 저는 손님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봅니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 조금이라도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뼈대 있는 집안 후손의 심지 굳은 마음 아닌가.

까막 냉·온면 각 6000원, 까막 비빔·들깨면 각 7000원. 영업시간 오전 10시 30분~오후 8시 30분. 2·4주 일요일 휴무. 부산 수영구 과정로42번길 53(망미동). 051-751-4334.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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