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보증' 요식업계 고수, 더 강해져 돌아왔다

입력 : 2017-04-12 19:08:11 수정 : 2017-04-13 10: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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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처럼 두툼한 도우에 선홍빛 토마토가 얹어져 있는 디트로이트 레드 톱 피자.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주장했다. 하루 3시간씩 10년(3시간×7일×52주×10년), 약 1만 시간을 꾸준히 한 분야에 매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학설이다.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한 분야에 20년 이상 쏟아부은 사람이라면 성패를 떠나 최소한 베테랑으로 봐야 할 것이다. 부산 요식업계의 '1군 무대'라 할 서면에서 두 베테랑이 새로운 도전에 나서 주목을 받고 있다.

구르메집

두툼한 '디트로이트 레드 톱 피자'
겉은 바삭, 속은 부드럽고 담백

각종 채소·과일 곁들인 '세비체'
퓨전 요리 '슈하스코…'도 별미


부산을 대표하는 교통 중심지 서면은 요식업계의 격전장이다.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버티기가 어렵다. 이런 무대에 낯선 미주 대륙 요리로 무장한 강자가 나타났다.

33세에 롯데호텔 최연소 주방장에 오른 뒤 23년 동안 파라다이스 등 특급호텔 주방을 지휘했던 이수호 대표가 최근 엔젤호텔 앞에 레스토랑 '구르메집'을 연 것이다. 부산 기장군 일광면에서 같은 이름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이 대표가 갑자기 서면에 뛰어든 이유가 뭔지 제일 궁금했다.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를 개발했고, 수준 높은 음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좀 더 많은 분께 선보이고 싶었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메뉴? 이 대표가 내민 메뉴가 디트로이트 레드 톱 피자였다.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쓰는 철제 팬에 도우와 치즈를 얹어 구운 뒤 소스를 뿌려 먹던 두툼한 피자에서 유래했다. 얼마나 얇아질 수 있는지 경쟁하는 요즘 피자와 달리,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두툼한 사각 피자 위에 익은 토마토가 선홍빛을 뽐냈다. "젊은이들 이거 3~4조각만 먹어도 배가 부를 겁니다." 먹어보니 겉은 바짝 익히되 타지 않고, 속은 부드럽되 알맞게 익혔다. 절묘한 비법은 숙성에 있다 했다. 고급스러운 담백한 맛도 좋았다.

중남미 특유의 새콤한 신맛이 이채로운 새우 세비체 아카폴카. 샐러드 대신 먹기에 적합하다.
여기서 고기와 샐러드를 더 먹고 싶다면 슈하스코 라클레트 파히타와 세비체를 추가하면 된다. 신선한 새우나 횟감 생선을 산도 3 정도의 라임·레몬즙에 절여 각종 채소, 과일과 함께 먹는 세비체는 '샐러드 대신 이런 메뉴도 곁들일 수 있구나'하는 신맛과 상큼한 느낌을 준다. 페루를 비롯한 중남미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다.

슈하스코 라클레트 파히타는 고기와 채소를 꼬챙이에 꽂아 숯불에 구운 브라질 요리 슈하스코, 토르티야 기반의 고기 채소 쌈인 멕시코 요리 파히타, 여기에 스위스식 치즈 요리 라클레트를 더해 하나의 메뉴로 만든 것이다.

미국 시카고에서 생산되는 구스 아일랜드의 생맥주와 병맥주도 다양하게 곁들일 수 있다. 이 3가지 메뉴 정도면 성인 3~4명도 충분히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맛에 앞서 시선을 사로잡는 슈하스코 라클레트 파히타.
구르메집에는 이 대표와 호텔에서 함께 일하던 중견 요리사들이 포진해 있다. 이 대표가 호텔 납품용 식자재 유통업도 겸해 저렴한 가격에 좋은 재료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결국 소비자 입장에서는 호텔보다 저렴한 가격에 고품질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셈이다. 이 대표는 "젊은층이 주도하는 서면이긴 하지만, 중·장년층도 정직한 재료로 만든 맛있는 음식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디트로이트 레드 톱 피자 1만 6000원, 슈하스코 라클셈레트 파히타 3만 5000원, 새우 세비체 아카폴카 1만 2000원. 영업시간 정오~오후 10시. 부산 부산진구 중앙대로692번길 46-10(부전동). 051-809-1231.

미(米)밥
8000원짜리 미밥정식 한 상. '집밥을 이렇게 차리려면 얼마나 고생해야 할까'하는 생각이 든다.
1994년 서면에서 레스토랑 운영을 시작한 이홍재 대표는 2002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엔젤호텔 내에서 2개 층을 합해 600㎡가 넘는 대형 일식당 어부야를 운영했다. 서면 일대에서 꽤 자리 잡은 일식집이었는데 갑자기 지난해 10월 문을 닫았다.

"청탁금지법 시행 후 첫 달 2000만 원 적자를 보고는 바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싼 메뉴도 있지만, 법이 정한 상한선을 넘는 메뉴를 접대받는 것으로 오해를 살까 봐 공무원과 교사 등이 아예 출입을 피하게 됐고, 각종 단체 회식도 구성원 중 몇 명은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되는 경우가 다반사가 되면서 매출이 반 토막 났다는 것이다.

정성껏 차린 대중적 집밥 정식
압력밥솥에 갓 지은 밥엔 '군침'

15가지 넘는 반찬, 푸짐해
국과 찬은 수시로 변화 줘

그는 고심 끝에 기본으로 돌아가 집밥을 내놓는 '미밥'을 열었다. 어느 한 요리만 내세우지 않고, 집에서 먹는 것처럼 반찬을 골고루 준비해 정성껏 내놓는 '정식' 말이다.

오징어 젓갈, 열무김치, 된장찌개, 고등어조림, 꼬시래기 무침, 참나물 무침, 해파리냉채, 잡채, 부추전, 감자 샐러드, 불고기, 상추·배추·다시마 쌈, 어묵 조림, 애호박 무침, 그리고 콩나물 북엇국. 8000원짜리 미밥정식을 주문하니 이 많은 반찬이 한꺼번에 나왔다. 이 대표가 매일 오후 2시면 부전시장에서 직접 장을 봐 재료를 사고, 김치나 젓갈 외에는 매일 새로 만든다고 했다. 나물이나 찌개 종류도 수시로 바꾼다. "매일 매일은 물론, 점심 저녁도 다른 반찬으로 변화를 주려고 노력합니다." 미밥을 집밥처럼 자주 찾아도 싫증 나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
미밥 주방 앞에는 최신 압력밥솥 8대가 나란히 놓여 있다. 주문이 몰리기 직전 취사가 완료된다.
특정 취향에 호소하지 않는 수더분한 맛도 세대를 가리지 않고 대중적으로 찾을 수 있는 비법일 터. 가능하면 반찬을 남기지 않으려고 밥 한 젓가락에 반찬을 3~4가지 먹다 보니 밥과 반찬의 위상이 역전된 느낌이었다. 의사들이 권한다는 '건강 식사법'이 저절로 이뤄졌다. 그렇다고 밥이 후줄근한 것도 아니다.

가게 이름에 쌀 미(米)를 쓴 데서 보듯 이 대표는 김이 설설 오르는 군침 도는 밥을 지향하고 있었다. 미리 스테인리스 공기에 밥을 담아두는 일반 식당과 달리, 미밥은 8대의 최신 압력밥솥에서 방금 한 밥을 바로 퍼 테이블 위에 가져왔다. 쌀 씻기와 불리기에도 세심한 정성을 기울인다. "제가 이 가게 차리려고 고민할 때 '밥장사는 돈 남길 생각하면 안 된다'고 지인이 조언해주더라고요. 손님들이 저희 집 밥 기분 좋게 드시고 건강하게 생활하시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위기가 왔을 때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베테랑 이 대표로부터 배운 교훈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갓 지은 밥을 내놓는다.
미밥정식 8000원, 보쌈정식 1만 원, 김치전골·닭볶음탕 각 2만 5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 30분. 부산 부산진구 중앙대로680번길 49(부전동). 051-803-3566.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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