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먹고 갈래?

입력 : 2017-04-26 19:09:41 수정 : 2017-04-27 10: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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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산업 옥상에서는 북쪽으로 북항 앞바다와 부산항대교, 원도심이 내려다 보인다.

'밥 먹고 커피'는 이제 필수 코스다. 커피 마시는 공간, 카페도 다기능으로 진화했다. 커피를 매개로, 책 음악 미술 등 문화적 요소들이 결합해 복합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지난해 12월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뒤 단숨에 동부산과 원도심 최고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카페 두 곳을 찾아가 봤다. 다른 카페가 흉내 내기 어려운 압도적인 조망을 갖고 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신기산업 #북항 #원도심

신기산업
지난해 12월 12일 문 연 카페 신기산업은 1987년 같은 자리에서 창업한 '청룡금속'의 후신이다. 장식용 종과 방울 등을 생산하던 청룡금속은 2002년 500만 달러 수출탑을 받는 등 해외 시장을 주 무대로 성장 가도를 달렸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뒤 미국 내에서 성조기를 앞세운 애국주의가 확산됐을 때는 바람에 회전하는 국기봉을 수출해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2009년 열정적으로 회사를 이끌던 이동철 사장이 예순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당시 서른도 안 된 큰아들 이성민(36) 씨가 회사를 떠맡았다. 금융위기 후폭풍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철 가공 기술을 활용한 캐릭터 상품·선물용품 생산으로 방향을 잡고 다시 경영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공장을 인근으로 옮기며 창고로 쓰던 땅에 사옥을 짓기로 한다. 철을 다루는 신기산업의 정체성, 부산항의 역사 등을 고려해 컨테이너를 활용했다.

옥상서 바라본 풍광 절로 감탄사
'해비메탈' 원두·'흰여울길' 밀크티
업종·영도 지명서 이름 따 '개성'

이때 동생 성광(31) 씨가 카페를 해보고 싶다고 나섰다. 국내에선 드물게 기린 길들이기에 성공할 정도로 유능한 조련사였던 성광 씨는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2년 만에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봉래산 북동쪽 능선에서 바라보는 멋진 부산항 풍광을 공유하기에 좋겠다고 형제는 의기투합했다. 1층 주차장을 제외하고, 2~4층 공간 중 4층 일부에 사무실을 넣고 나머지 공간은 옥상까지 카페로 활용하기로 했다.

카페 운영을 맡은 이성광 대표는 "막연히 카페를 운영해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실현하게 돼 일본을 비롯해 몇 군데에서 커피를 공부하며 1년을 보냈다"고 말했다. 원두는 지역 로스터리 숍인 RBH가 제안한 10여 가지 원두 가운데 이 대표가 선정했다. 과테말라와 인도네시아 커피를 절반씩 섞어 쌉쌀하고 묵직한 맛이다. 이 대표는 이 커피를 '해비메탈'이라는 신기산업의 시그니처 원두로 이름 붙였다. "철을 다루는 신기산업에서 '메탈'을, 묵직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헤비'가 아닌 '해비'를 붙여 명명했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흰여울길밀크티와 콜드브루커피
얼그레이를 우유에 우려 냉장시킨 '흰여울길 밀크티'는 부드러우면서도 상큼한 맛이었다. 나고 자란 영도를 누구보다도 아낀다는 이 대표는 "이 밀크티를 보고 흰여울길이 곧바로 떠올라 이름으로 썼다"며 "앞으로 개발하는 음료에도 성격에 맞는 영도 지명을 붙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 21~23일 젊은 작가들을 위한 아트마켓을 카페에서 열기도 했다.

5층에 해당하는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원도심과 바다 풍경은 환상이다. 이런 풍경은 굳이 일행이 마주 보며 앉을 필요도 없다. 난간 바로 앞에 나지막한 캠핑 의자와 테이블을 한 줄로 앉혀 놓았다. 영업시간이 오후 11시까지인 것도 부산항 대교 경관조명 가동 시간에 맞춘 것이다.

2~3층 카페 공간은 틀에 박힌 카페 개념을 탈피한 배치가 눈에 띈다. 의자 높이로 앉을 수 있는 콘크리트 턱을 길게 만들어 놓고 방석만 깔았다. 4층에는 20명 이상이 회의나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이 공간에 조만간 수제맥주 펍을 열 계획도 갖고 있다니 이번 여름 어느 저녁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콜드브루커피 5500원, 콜드브루라테·흰여울길밀크티 6000원, 아이스아메리카노 5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1시. 부산 영도구 와치로51번길 2(청학동). 070-8230-1116.

웨이브온 #기장 바다 #해변
웨이브온 1층 테라스에서는 '빈 백'에 드러눕듯 기대 앉아 여유롭게 커피와 바다를 즐길 수 있다.
요즘은 맛집도 사진 공유 SNS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맛을 넘어 공간의 특징이 사진의 성패를 가른다. 그 점에서 웨이브온은 독보적이다.

지난해 12월 23일 문을 연 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사진과 글이 SNS와 블로그에 삽시간에 퍼지면서 이제는 하루 평균 900팀 이상이 찾는 명소가 됐다. 웨이브온은 임랑해수욕장 인근 방갈로 음식점 '고스락' 허장수 회장이 커피 전문가인 아들 범규(29) 씨를 위해 바로 옆에 지은 카페다.

아름다운 바다·건축물 조화 '환상'
매달 원두 다른 '월내라테' 선봬
다양한 프렌치 케이크도 인기


범규 씨는 유럽스페셜티커피협회(SCAE) 커피 제조 과정 9개 부문을 비롯, 세계 각국에서 17개 자격증을 받았다. 오는 6월 25일 '2017 에스프레소 이탈리아노 챔피언' 국가대표 선발 지역예선전이 여기서 열린다.

커피 수입·유통을 목표로 설립된 '빈크러시 커피컴퍼니'라는 법인 대표가 범규 씨다. 웨이브온은 허 대표의 커피 철학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공간인 셈이다.

지금은 생두를 수입사로부터 공급받아 자체적으로 볶지만, 3년 뒤 경기도 양평에 본사를 완공하면 수입 유통에도 나설 계획이다. 허 회장은 "여기 임랑보다 3~4배 큰 규모로 본점을 지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바이올렛라테와 월내라테
이 카페의 대표 상품은 '월내라테'다. 월내리라는 이곳 지명에서 따왔는데, '달마다 돌아온다(月來)'는 뜻을 살려 매달 다른 원두를 라테로 선보인다. 이번 달 원두는 브라질산이다.

프랑스 유명 요리학교인 코르동 블뢰 파티셰 과정을 수료한 제과장이 만드는 다양한 종류의 프렌치 스타일 케이크도 있다. 밀가루 없이 카카오 함유량 64%의 에콰도르산 다크초콜릿으로 '갸토 쇼콜라'와 월내라테를 맛봤다. 날이 더워지면 녹아 형체가 없어지기 때문에 갸토 쇼콜라는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한 스푼 떠먹어보니 약간 강한 단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이어서 월내라테를 한 모금 마시니 우유의 부드러움과 커피의 쌉쌀함이 단맛을 진정시켰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조화가 좋았다. 개당 가격이 6000~7000원대인 케이크는 평일 200개, 주말 350개 정도로 하루 제조 물량이 한정돼 있다 보니 오후 늦게는 진열대가 비는 경우가 잦다.

기장군 내에 있는 해천농원에서 매일 공급받는 신선한 딸기에 냉동 블루베리를 섞어 만드는 '바이올렛' 라테와 에이드도 봄을 맞아 내놓은 계절 메뉴다.
웨이브온
무엇보다 웨이브온이 인스타그램의 스타가 된 데는 해변이라는 입지에, 아름다운 건축이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에만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 한국건축가협회상 베스트7, 세계 건축상, 아메리칸 건축상 금메달을 휩쓴 곽희수 건축가(이뎀도시건축 대표)의 작품이다.

실내와 실외, 1층부터 3층을 거쳐 옥상까지 수직·수평 공간이 마치 물 흐르듯 유기적으로 들고 난다. 실내·외 130석 정도씩 만들어 둔 어떤 자리에 앉아도 답답하지 않고 새로운 느낌을 준다. 바닥에 드러눕듯 기대앉아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실외 '빈 백'은 웨이브온의 명물이다.

월내라테 6500원, 바이올렛라테·에이드 각 7000원, 아메리카노 5500원, 티라미슈 7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자정.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맞이로 286(월내리). 051-727-1660.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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