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모임♥호텔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입력 : 2017-05-03 19:06:42 수정 : 2017-05-15 10: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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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창신 술병은 씨눈을 깎아낸 쌀 모양이다. 잔에 따라 놓은 4가지 술 빛깔이 은은하고 곱다.

가족은 공기다. 늘 가까워 잊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리라 사랑과 감사를 속에만 담아두고 지나치는 날이 더 많아서 그렇다. 어린이(5일), 어버이(8일), 스승·성년(15일), 부부(21일). 생애 중요한 순간들을 기념하는 날이 모두 이 찬란한 계절, 5월에 있다. 법에 정한 기념일, '준법정신(?)'을 발휘할 때다. 지역 호텔들이 준비한 오붓한 모임에 어울리는 술과 밥을 알아봤다.

비스트로한 - 법고창신 ★

술 시장이 넓어지면서 주류 수입이 늘고 있다. 국산 전통주와 증류식 소주도 다양해진 입맛을 겨냥하고 나섰다.

전통주류 제조사인 국순당이 문헌으로만 전해오는 우리 술을 복원해 최고급 전통주 '법고창신' 시리즈(송절주, 자주, 사시통음주, 청감주)를 내놓았다. 옛 문헌에 남아 있는 몇 마디를 붙잡고 수십, 수백 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며 되살린 술이다. '법고창신'은 성현의 지혜를 본받되 현실에 맞게 변화시키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면서도 옛것에 뿌리를 둔다는 의미다. 나라의 현실에 대한 진단과 해법에서 확연한 견해차를 드러내는 대선후보들을 보며 그 의미를 다시 곱씹어보게 한다.

국순당 전통주 4종 부산 유일 선봬
송절주 '솔 내음', 자주 '매콤·시원'
사시통음주 '깔끔', 청감주 '순한 맛'

국순당은 이 술을 아무 데서나 팔지 않는다. 부산에서 맛볼 수 있는 곳은 해운대그랜드호텔에 있는 비스트로한, 1곳뿐이다. 지난 3월 말부터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이 희소성이 호기심 많은 사람을 불러들이기에 충분하다. 어떤 술이 맛있고, 자신에게 맞는지는 마셔봐야 알 수 있다. 이 술 4종을 한 잔씩 마실 수 있는 테이스팅 세트를 주문했다.

법고창신과 함께 먹은 '멋 점심코스'의 메인 메뉴 전복 소 갈비찜.
소나무 마디와 솔잎, 쌀을 재료로 만든 송절주는 잔 근처만 가도 솔향이 진하게 우러났다. 겨울에도 변하지 않는 소나무를 닮으려 애썼던 선비들이 술로도 그 정신을 닮으려 했구나, 싶었다. 질 좋은 청주에다 꿀과 후추를 넣어 중탕한 자주(煮酒)는 부드러우면서도 매콤하고 시원한 맛이었다. 조선 시대 술인 나머지 3종과 달리 자주는 고려 시대 명주로 전해올 만큼 역사가 깊다.

개인적으로는 백미와 밀가루, 누룩으로 빚은 사시통음주가 가장 입에 맞았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맛에 알코올 도수도 18%로 적당했다. 나머지 술은 11.5~17% 정도로 순하다. 좋은 벗과 사시사철, 밤새워 마시고 싶은 술이라는 설명이 딱 들어맞았다. 마무리 술로는 청감주가 어울렸다. 좋은 청주에 찰밥과 누룩을 섞어 단맛이 진하고 가장 순하다. 술에 약한 여성들에게도 디저트로 추천할 만한 술이다.

묵직한 분위기의 비스트로한은 좌석이 널찍하게 배치돼 옆자리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대신 예약은 필수다.

법고창신 테이스팅 세트 2만 5000원, 송절주·자주·사시통음주(550㎖) 각 9만 5000원, 청감주 13만 원, 멋 점심코스 3만 9000원. 영업시간 정오~익일 오전 1시,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217(우동) 해운대그랜드호텔 1층. 051-740-0610.


오킴스 - 기네스 칵테일 ★

기네스 컬렉션의 대표적 메뉴가 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부산에 '국내 최초의 아이리시 펍'이 있다. 1989년 웨스틴조선호텔 부산에 문을 연 오킴스 얘기다. 해운대 해변과 달맞이 언덕을 옆에서 그윽하게 바라보며 가볍게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오킴스는 이 호텔의 대중적 명소다. 같이 아일랜드가 고향인 기네스 맥주가 특히 유명하다. 주류 수입이 지금처럼 원활하지 않았던 초창기에는 호텔이 기네스 맥주를 직수입할 정도였다.

언제부터인가 오킴스 단골손님들 사이에서 기네스 맥주를 다양하게 섞어 먹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네스 맥주에 다른 맥주를 섞기도 하고, 독한 위스키를 타 먹기도 했다.최근 오킴스는 메뉴판을 교체하면서 아예 '기네스 컬렉션'을 새로 만들었다. 기네스 맥주에 다른 맥주를 반씩 섞는 '하프 앤 하프', 위스키를 탄 '기네스 밤', 달콤한 '기네스 칵테일'이다.

기네스에 다른 맥주·위스키 혼합
'기네스&파울라너' 묵직→상큼
'아이리시카밤' 아일랜드식 폭탄주


흑맥주인 기네스 아래 밝은 황색 파울라너 맥주가 자리 잡은 기네스&파울라너는 잔이 빌수록 짙고 묵직한 기네스의 맛에서 상큼한 파울라너로 넘어간다. 한동안 층이 나뉘어 있지만 10분 이상 지나면 아래 위가 섞이기 시작한다. 각자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서둘러야 한다.

설탕 시럽 대신 엘더 플라워 시럽을 기네스 맥주에 섞고, 잔 위에 장미 꽃잎을 얹은 기네스블라섬은 마셔 없애기 아까울 정도로 예뻤다. 묵직한 맥주 맛 뒤로 꽃향기가 넘쳤다.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맛이었다.
영국식으로 달고기 살을 쓴 피쉬 앤 칩스는 퍼석하지 않고 단맛이 났다.
아일랜드와 한국은 국민성이 비슷하다는 얘기가 있는데 '폭탄주'를 보니 알 것 같았다. 아일랜드 위스키인 베일리스와 제임슨을 반씩 따른 스트레이트 잔을 기네스 전용 파인트(560㏄)잔에 퐁당 빠뜨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옅은 커피빛 베일리스가 알갱이로 굳기 시작했다. 서유덕 지배인은 "시간이 더 지나면 잔 전체가 지저분해진다"며 "아일랜드인들은 이 아이리시카밤을 한 잔씩 쭉 마셔 한결 흥겨워진 분위기로 모임을 시작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쭉쭉 들이킬 것을 권하는 아이리시카밤이나 기네스&파울라너를 보니 술 급하게 마시는 습관도 양쪽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네스&파울라너(400㎖)·기네스&글렌모린지·아이리시카밤 각 2만 1000원, 아이리시블랙러시안·기네스블라섬·티라미슈기네스·기네스마티니 각 1만 9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익일 오전 2시. 부산 해운대구 동백로 67(우동) 웨스틴조선호텔 부산 1층. 051-749-7439.



닉스 그릴 - 컬래버레이션 ★
붉은 와인 빛깔이 도는 닉스 그릴의 갈비 스테이크. 파김치와 깍두기, 노란 마늘 퓨레가 입안을 산뜻하게 만든다.
파라다이스호텔 부산은 지난해 1월 박재윤 대표가 취임한 뒤 식음료 부문 강화에 역점을 뒀다. 프랑스 요리의 세계적 거장인 오부치 야스후미를 총주방장으로 영입한 것도 그런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지난달 26일 이 호텔 닉스 그릴은 한식 고급화와 세계화를 내세우며 요리 연구가 최경숙 씨를 초청, 오부치 총주방장과 '한불 컬래버레이션 갈라디너'를 선보였다. 최 씨가 일본에 유학할 때 오부치 씨와 함께 일한 인연도 있었다.

전채요리부터 메인·디저트까지
프랑스 요리와 한식 절묘한 조화
'갈비 스테이크' 부드럽고 육즙 풍부


전채요리부터 디저트까지, 한식과 프렌치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달팽이와 양송이로 만든 수프, 버터소스를 풍성하게 얹은 혀가자미(혀넙치), 꽃게탕, 물회 등이 번갈아 나왔다. 메인 요리인 갈비 스테이크는 서양식 저온 조리 기법인 수비드를 도입해 부드러운 육질과 풍성한 육즙을 잃지 않았다. 버터와 와인으로 조리하고 전통 갈비 소스를 더했다. 한식 재료를 서구식으로 조리하고, 양식 재료에 한식 소스를 가미한 실험은 꽤 성공적이었다. 닉스 그릴이 자랑하는 와인 라인업이 각 요리에 맞춰 제공돼 풍미를 더 했다. 호텔 측은 향후 한식 고급화를 위한 갈라 디너를 몇 차례 더 열 계획이다.

영업시간 정오~오후 10시.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296(중동) 파라다이스호텔부산 신관 2층. 051-749-2274.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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