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제도 있어도 눈치 보는 세상

입력 : 2017-05-21 23:01:12 수정 : 2017-05-22 11: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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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중소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김 모(38·여) 씨는 지난해 둘째 딸을 출산했다. 첫째 아들과 연년생이라 직장을 바로 다니는 게 쉽지 않았던 김 씨는 올해 초 회사에 6개월간 육아휴직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워킹맘 이 모(35·여) 씨는 최근 회사에 임신 초기임을 알리고 단축근무를 신청했다. 그 자리에서 직장 상사는 이 씨에게 "우리 회사는 육아휴직 없다는 거 알죠"라는 말부터 꺼냈다.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이 씨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부산노동청 5년 16건 신고
위법 있어도 항의도 못 해
휴직 후 회사 복귀 60% 불과
징벌적 페널티 등 고민 필요


남녀고용평등법은 육아휴직을 허용하지 않는 사업주에게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게 돼 있다. 두 사례는 명백한 위법이지만 어쨌든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 직장인들은 이렇다할 항의도 제대로 못하는 실정이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에 따르면 부산지역에서 육아휴직과 관련한 신고 접수 건수는 2013년 4건, 2014년 3건, 2015년 1건, 2016년 5건, 2017년 3건 등 최근 5년간 16건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노동청이 수사를 벌인 뒤 검찰에 송치한 건수는 2013년과 2016년 각 1건씩 모두 2건뿐이다. 노동청 관계자는 "노동청이 시정 지시를 내리고 양측이 어느 정도 합의에 다다르면 신고를 취하하고, 끝내 합의를 보지 못한 경우에만 검찰에 송치된다"고 말했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에 따르면 2014년 부산의 육아휴직자는 3592명이다. 하지만 2013년 기준으로 육아휴직을 쓰고 1년 뒤에도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하는 근로자 비중은 절반이 조금 넘는 59.5%에 불과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의 조사결과 중소기업의 85.3%가 '직원의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는 육아휴직 사용 근로자에 대한 불이익으로 돌아갔다. 45.6%의 기업 인사담당자가 퇴사 권유, 연봉 동결 또는 삭감, 낮은 인사고과, 승진 누락 등의 불이익이 있다고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을 치르면서 육아휴직 급여를 배가량 인상하고, 아빠에게도 '아빠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제도가 있어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위반할 경우 징벌적 페널티를 부과하는 등 육아휴직 사용률을 높이는 방안을 심도있게 고민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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