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뚝배기의 힘

입력 : 2017-05-24 19:13:27 수정 : 2017-05-25 10: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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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을 띠는 예촌한방삼계탕의 황칠 삼계탕. 6가지 곡물 덕분에 색깔만큼이나 맛도 고소하다.

봄가을은 짧다. 5월부터 9월까지, 이제 한국은 거의 다섯 달이 여름이다. 많은 현대인이 본격 무더위가 찾아오기 전 보약이나 건강식품을 찾는다. 영양 과잉이라 해도 더위 전 몸을 채비하는 일은 별도로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약 달이듯 좋은 재료와 정성으로 탕을 끓여 내놓는 집을 찾아가 봤다. 밥도 먹고 기운도 돋우니 일석이조다.

예촌한방삼계탕 - 황칠삼계탕

곡물 6종 첨가해 약재 냄새 잡아
황금닭 직접 손질해 하루 숙성
황칠 넣은 삼계탕 '최고의 보양식'

닭은 현 인류가 가장 친숙하게 소비하는 육류다. 인간이 지구를 점령한 지질 시대 '인류세'를 대표할 화석으로 닭 뼈가 꼽힐 정도다. 우리 조상들도 닭으로 백숙을 끓여 즐겨 먹었다. 학계에서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오늘날의 삼계탕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더운 여름 땀을 많이 흘리며 허해질 수 있는 속을 채우고 열을 올리는 닭과 인삼, 찹쌀 등을 하나의 요리에 담았다.

부산 연제구 거제동 법조타운에서 한방 약재 12가지를 넣은 특별한 삼계탕으로 인기를 끌었던 '예촌한방삼계탕'이 지난해 연말 도시철도 1호선 교대역 5번 출구 인근으로 옮겼다.

성재승 대표는 가게를 옮기며 한방 약재에 곡물을 더했다. "약재 냄새를 싫어하는 분들도 있어서 그 냄새를 줄일 방법을 고민하다 곡물을 갈아서 넣었더니 효과가 있었다"고 성 대표는 말했다.

성재승 예촌한방삼계탕 대표가 황칠나무를 자르고 있다.
땅콩 잣 율무 호두 아몬드 녹두. 이렇게 6가지 곡물을 약간 더했는데 약재 냄새는 줄고 고소함은 더해졌다. 어린이나 어르신들이 특히 이 집을 좋아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이 집이 자랑하는 한방 황칠 삼계탕을 예약했다. 가게 앞에 붙은 '즉석요리'라는 글귀는 주문받고 나서 음식을 만든다는 얘기다. 큰 솥에 한꺼번에 끓여 놓았다가 손님상에 오르기 전 한 번 더 가열해 나가는 식이 아니라는 얘기다.

"끓이는 데 최소 30분 정도는 걸리기 때문에 예약 전화를 해주시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지요." 삼계탕용 닭과 토종닭을 교배한 황금닭을 매일 배달받아 성 대표가 직접 손질한다. 이렇게 손질한 닭은 빙장해 하루 숙성시킨 뒤 다음날부터 손님상에 오른다.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고, 쫄깃한 살점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닭다리는 말할 것도 없고 가슴살까지 탄력이 있다.
황칠나무가 우러난 노란 국물 속에 하얀 속살을 드러낸 닭이 다소곳하게 엎드려 나왔다. 다른 삼계탕용 닭보다 크다. 찹쌀이나 약재가 배 속에 있지 않고 그릇 밑바닥에 깔려 있다. 황칠나무 조각 2개도 형태 그대로 들어 있다.

"혈압을 낮추고 간 기능을 보호하는 데 황칠나무가 좋다더라고요. 보통 수령 10년이 지나면 효과가 있다는데 저는 전남 진도 처가에서 받아 온 15~25년 된 황칠나무를 씁니다." 성 대표는 황칠나무 효능을 열거하며 신이 났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어 봤다. 과연 한약재 냄새가 은은하고 뒷맛은 고소하다. 맛있는 보약 한 첩 먹는 기분이다. 가슴살마저 전혀 퍽퍽하지 않고 탱탱했다.
물김치와 깍두기 같은 반찬도 깔끔한 맛을 자랑한다.
이 집은 반찬도 삼계탕에 최적화 돼 있다. 직접 담그는 물김치는 그냥 먹을 때는 청양고추 덕분에 매콤한데 삼계탕과 함께 먹으니 달콤한 맛이다. 화학조미료는 일절 들어가지 않는다. "저희 집 깍두기를 라면과 먹어보면 맛이 없어요. 오로지 삼계탕용 깍두기죠. 모든 반찬을 집에서 우리가 먹는 식으로 만듭니다. 손님들이 반찬을 남기고 가면 왜 그런지 문제점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체구와 달리 예민하게 음식을 대하는 그의 자세는 마치 환자의 건강을 돌보는 의사 같다.

한방 삼계탕 1만 4000원, 한방 옻·황칠 삼계탕 각 1만 8000원(2인 이상 주문 가능).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 부산 연제구 중앙대로 1219번길 18(거제동). 051-505-2003.

집밥예찬 - 한우사골 곰탕
국물 속이 들여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뽀얀 집밥예찬의 한우 사골곰탕. 건강에 유익한 성분이 잘 우러났다.
한우 사골 중 무릎 위 다리뼈만 써
제대로 피 빼고 3차례 국물 우려내
우유처럼 뽀얀 국물 '담백·구수'

중년 남자들이 싫어하는 음식이 있다. 곰탕이다. 아내가 곰국을 한 솥 끓이는 것은 장기간 집을 비운다는 뜻이라는 우스갯소리다. 그런데 정말 맛있게, 제대로 끓인다면 괜찮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곰국을 집에서 제대로 끓이는 일은 쉽지 않다. 시간과 노력이 만만찮다.

10년 전부터 쇠고기국밥과 곰탕에 꽂혀 전국을 다니며 맛을 본 최강영 대표는 '곰탕 제대로 만드는 데가 이렇게 없나? 내가 한 번 만들어볼까'하며 2년 반 전 '집밥예찬'을 차렸다.

최 대표의 기준은 고향인 경남 거제에서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국밥과 곰탕이었다. 어머니는 시댁이 있던 전남 곡성에서 가져온 간장과 된장으로 전통적인 깊은 맛을 살리면서 세련된 음식을 척척 만들어 가족들을 건사했다. 거제도는 인접한 대도시 부산과 한국전쟁 때 38선 이북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의 음식 문화가 뒤섞이며 새로운 형태로 진화했다.
최강영 집밥예찬 대표가 곰솥에서 사골을 들어 보이고 있다.
집밥예찬에서 곰탕을 끓이는 과정은 대략 이렇다. 거세한 한우 사골 가운데 무릎 위 다리뼈만 쓴다. 수소는 암소보다 뼈가 튼튼해 진하게 우러난다. 흐르는 물에 뼈를 담가 12시간 이상 피를 뺀다. 피를 덜 뺀 채 오래 고면 국물 색깔이 검붉어진다. 300인분 곰솥에 뼈를 넣고 9시간 동안 곤다. 끓는 동안 위에 뜨는 기름을 1차로 걷어 내고, 식히면서 기름층과 국물을 분리해 국물만 받아 둔다. 이렇게 3차례 우려낸 국물을 섞어 곰탕으로 쓴다. 피 빼고 끓이는 시간만 40시간 전후다.

"한 번 끓이기 시작하면 3번째 국물이 나올 때까지 멈출 수가 없습니다. 사골이 식은 채로 오래 두면 상하기 때문이죠." 최 대표는 곰탕 전용 조리실을 따로 만들었다. 온도가 높아 식당에서 손님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 집의 자랑 사골곰탕을 주문해 받고 보니 국물이 우유처럼 뽀얗다. 커피에 넣어야 할 크림 가루를 곰탕 채색용으로 쓴다는 풍문 많았다. 이 집 사골곰탕은 그 어떤 첨가물도 없이 오로지 사골과 물, 불과 시간 만으로 뽀얀 빛깔을 낸다.
김치냉장고에서 숙성시킨 한우 양짓살은 국물에 의해 구수한 맛이 짙어진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어 봤다. 담백하고 구수하다. 더 확실하게 국물 맛을 느낀 것은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였다. 입안에 구수한 향이 계속 맴도는 것이었다. 특정 가루 때문에 텁텁한 뒷맛을 느끼게 하는 여느 곰탕과는 차원이 달랐다.

양짓살로 국물을 내는 나주식 곰탕도 맛봤다. 멸치 어간장으로 간을 한 맑은 국물이 입에 착 달라붙었다.

이 집 사골곰탕을 먹어 본 단골들은 택배 주문도 많이 한다. "아이나 어르신, 환자 등 기력을 보충하려는 모든 분에게 유익한 음식을 정말 믿을 수 있게 만들고 있습니다." 갖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우윳빛 사골곰탕을 만들어낸 최 대표의 얼굴에선 뿌듯한 자부심이 배어 나왔다.
부추전과 배추김치, 깍두기 등 반찬도 정갈하다.
한우 사골곰탕 1만 원, 쇠고기 국밥 8000원, 나주식 곰탕 9000원, 김치찌개·미역국 각 7000원, 한우 사골곰탕 2인분 포장 1만 5000원. 오전 11시~오후 9시. 일요일 휴무.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3로 1(우동) 선프라자 208호. 051-959-9113.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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