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 없어 좋고 더위에 입맛 살고

입력 : 2017-06-07 19:02:43 수정 : 2017-06-08 10: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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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흑돼지, 그 중에서도 부드러운 안심 생고기로 만든 해운대 '고이'의 '히레가스'. 바삭하게 익은 빵가루가 식욕을 자극한다.

돈가스는 어린이부터 중·장년층까지 간단한 식사 메뉴를 고를 때 거의 빠짐없이 후보군에 오른다. 즉석 커리를 판매하는 한 식품회사 광고는 일요일을 이 음식 먹기 좋은 날로 꼽지만 입맛 없을 때 간단하게 한 끼 해결할 수 있는 메뉴로 커리는 인기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용된 돈가스와 커리를 내놓는 맛집을 찾아봤다.

고이

돈가스, 제주흑돼지 생고기 써
친환경 쌀 등 좋은 식재료만 고수
깔끔한 '온김치모밀' 해장에 제격

우동과 돈가스는 중저가 대중 일식당의 단골 메뉴다. 소비층이 두텁고 체인 업체도 많다. 양진숙 대표는 이런 안정적 전망에 동갑인 남편과 함께 11년 전 관광객이 밀려드는 부산 해운대에 한 대중 일식 체인점을 차렸다. 맛있는 음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더 많은 손님에게 대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느끼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일부 식재료가 영 아니더라고요. '체인 식당이 이런 건가'하는 생각이 들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드는 겁니다."

수익을 남겨야 하는 체인 본사가 공급하는 식재료만으로는 음식을 만들 수 없었다. 거의 매일 본사에 전화해 항의했다. 돈을 더 줄테니 좋은 재료를 보내달라고까지 하소연했다. 이 점포만 특별히 다룰 수 없었던 본사는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간판은 체인점 상호 그대로인데 재료 절반 이상을 별도로 구입해 사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본사도 이를 제지하지 못했다.

1년 6개월 전 체인점 간판을 내리고 지금 쓰는 상호 '고이' 간판을 달았다. 고이는 '겉모양 따위가 보기에 산뜻하고 아름답게, 정성을 다하여, 편안하고 순탄하게' 등의 뜻을 가진 순우리말인데, 양 대표는 이 가운데서 '정성을 다하여'를 택했다.

로스 카레
손이 많이 가던 초밥도 정리하고 메뉴를 돈가스와 덮밥으로 특화했다. 이 집 돈가스의 특징은 제주흑돼지 생고기로 만든다는 점이다. 식감에 탄력이 있고, 익혔을 때 고소한 맛도 더 진하다.

"생고기를 들여 오면 늦어도 이틀 내에 소진됩니다. 좋은 재료를 신선할 때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본 단골이 많이 찾죠."
 
당일 점심 때 판매할 고기는 매일 오전 손질해 튀김옷을 입힌다. 오후 3시부터 90분 동안 손님을 받지 않는데 이때 저녁 판매용 재료를 한 번 더 만든다. 저녁 판매량이 예상보다 많을 땐 문 닫기 전에 또 한 번 만들기도 한다. 1인분 돼지고기 양도 140g으로 넉넉하고 두툼하다. 받아온 고기가 이틀을 넘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좋은 식재료에 대한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요리할 때 사용하는 물도 정수기로 한 번 걸러 낸 물을 받아 사용하고, 도정한 지 일 주일이 지나지 않은 친환경 쌀을 구매해 밥을 짓는다. 반면 홍보나 마케팅에는 적극적이지 않다.

"저희 집은 예약도 받지 않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분들이 예약으로 자리를 잡으면 다른 손님에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장사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정성을 다한다'는 가게 취지에 어긋나는 일이지요." 찾아 온 손님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이 가장 큰 홍보 마케팅 수단이라고 양 대표는 생각한다.

가족과 이 집을 찾아 '히레 돈가스'(안심 포크 커틀릿), '로스 카레'(등심 커리), 온김치모밀을 먹어 봤다. 과연 돈가스는 바삭한 빵가루와 두툼하고 신선한 고기의 탄력 있는 식감이 탁월했다. 제주흑돼지 특유의 고소함과 향미 가득한 커리가 묘하게 어우러졌다.
온김치모밀
특히 마늘, 다시마, 파 뿌리, 가다랑어 포 등 천연 재료를 24시간 우려 깊은 감칠맛을 내는 국물에 짭짤하고 아삭한 김치를 얹은 온김치모밀은 제주흑돼지로 묵직해진 입안을 말끔히 정리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해장용으로도 손색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이면 환갑을 맞는 부부가 정성을 다해 돈가스를 준비하는 밥집. 고집스럽고 진득하게 좋은 음식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로스 카레 8000원, 온김치모밀 6000원, 히레 가스 7500원, 김치 돈가스 덮밥 7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 수요일 휴무. 부산 해운대구 중동1로(중동) 32. 051-746-7001.

에끼카레
용호동 '에끼카레'에서 내놓는 '고로케 카레'는 겉모습은 소박하지만 7시간 동안 양파를 고아낸 정성이 고스란히 커리에 담겨 있다.
양파 장시간 우려낸 육수로 단맛 내
걸쭉하고 달콤한 카레, 뒷맛은 매콤
미니 기관차가 음식 배달 '이색적'

송정에서 동부산관광단지로 넘어가는 길, 이주단지에 자리잡은 키샤디오라마 레스토랑은 '기차 덕후'들의 성지가 되었다. 이 레스토랑은 경쟁 보안업체 직원으로 같은 구역을 담당하면서 친해진 이현승·김태현 씨가 함께 차렸다.

"원래 요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우연히 키샤디오라마에서 주방 일을 하게 됐어요. 요리를 해보니 더 배우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일본에 건너갔죠."

김태현 씨는 이 레스토랑 운영에만 관여하다 1년가량 주방에서 요리를 했다. 요리를 더 배우고 싶었던 그는 이후 일본을 비롯해 국내 여러 식당에서 요리를 배우며 1년 반을 보냈다.

'이 정도면 되겠다' 생각하고 가게를 알아보던 그는 2015년 남구 용호동에 '에끼(驛)카레'를 차렸다. 이현승 씨와는 지금도 종종 상대방 가게를 찾아가 서로 어려운 점을 털어놓고 이야기한다.
기차에 실려 나오는 음식
이름에서부터 손님이 주문한 요리를 미니 기차가 실어 나르는 방식 등 기차 콘셉트를 유지했다. 식탁에 붙어 있는 번호표에도 '창측, 통로측' 표시가 붙어 있다.

김 대표가 일본에서 배운 커리 요리법은 양파로 단맛을 내는 것이었다.

가게 한쪽 벽면에 그는 이 사실을 정중하게 궁서체로 공개해 놓았다. '에끼카레의 단맛은 주방장의 땀과 노력으로 장시간 양파를 우려 만든 육수를 사용한 양파 본연의 단맛임을 알려드립니다. 주인장 에끼카레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진지한 궁서체 주인 드림.'

커리의 재료가 되는 강황의 커큐민 성분은 면역력을 높이고 혈중 지방질을 분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김 대표가 대량 사용하는 양파는 따로 즙이나 진액을 만들어 먹을 정도로 인기 있는 건강 보조 식품이다.

이 집에 가서 감자 크로켓이 추가된 '고로케 카레'를 주문했다. 순한 맛, 매운 맛, 아주 매운 맛, 이 3단계 가운데 순한 맛을 택했다.

잠시 기다리니 기적 소리와 함께 미니 증기기관차가 주문한 크로켓 커리 쟁반을 화물칸에 싣고 주방에서 천천히 달려 나왔다.식탁 위의 '고로케 카레'를 받아 보니 갈색에 가까운 짙은 노랑 빛 커리는 묽지 않고 약간 걸쭉한 느낌이다. 밥은 양이 조금 부족하다 싶지만 크로켓과 먹으니 적당했다. 주문할 때 밥을 많이 달라고 미리 얘기하면 넉넉하게 내놓는다.

커리에 밥을 살짝 비비고, 달걀 프라이를 조각내 크로켓과 함께 떠먹어 봤다. 으깬 감자의 부드럽고 달콤한 맛과 야들야들한 달걀 프라이, 향이 은은한 커리가 미각을 충분히 채웠다. 김 대표가 써 놓은 대로 커리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달았다. 그릇을 비울 때쯤에는 매콤한 뒷맛을 남겼다. 그 비결을 물었더니 김 대표는 "일본 요리에서 기분 좋은 매콤함을 남기는 향신료를 썼다"고 답했다.

김 대표는 점심 손님을 받은 뒤 오후부터 커리를 집중적으로 만든다. 양파를 충분히 고아 건더기가 남지 않을 정도로 만들고 여기에 강황을 넣어 커리로 완성하는 데 7시간 정도가 걸린다. 이렇게 만든 커리를 다음날 손님 밥상에 내놓는다. 간단한 한 끼 식사로 애용하는 커리에 이렇게 정성을 쏟아야 하는 줄 몰랐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아직 배울 게 많다고 여긴다.

"가게를 시작하고는 일본에 가보질 못했는데 내년 쯤엔 한 달 정도 가게 문을 닫고 요리를 배우러 갈 생각"이라고 했다.

에끼카레 5500원, 고로케카레 7000원, 돈가스카레 78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 일요일 휴무. 부산 남구 용호로216번가길 40(용호동) 성모프라자 104호. 051-612-7718.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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