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라는 단어는 무겁다. 처음이기에 존중받지만, 낡고 고루한 이미지로 추락하는 것도 한순간이다. 국내 첫 공설 해수욕장(1913년), 국내 첫 해상 케이블카(1964년). 오래전 관광1번지로 불리던 송도해수욕장이 그 자리를 탈환할 기세다. 1988년 철거한 해상케이블카가 29년 만에 설치돼 21일 운영에 들어갔다. 볼거리에 먹거리가 빠질 수 없다. 전통 있는 송도 맛집을 찾아봤다.
★ 빈스톡
쓴맛 속에 신맛·고소한 맛 공존
미각 신경 곤두세워 '맛 탐험' 재미
부산 카페 업계에서 드러나지 않은 고수가 송도에 있다. 1996년 커피점을 시작해 올해로 21년을 맞는 박윤혁 빈스톡 대표다. 그가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줄곧 울산 삼산동에서 카페를 하다 부산 송도에 자리 잡은 것이 2015년 11월, 이제 1년 반을 겨우 넘겼기 때문이다.
그를 고수로 꼽는 이유는 단지 오랜 경력만이 아니다. 커피 생두를 바짝 볶는 '강배전'(다크 로스팅)의 대가라는 확실한 개성 때문이다.왜 강배전일까? "생두를 바짝 볶으면 맛과 향이 많이 소실돼 생두 본연의 개성이 희미해집니다. 그렇지만 미각 신경을 풀 가동해 맛을 찾아내는 재미가 강배전 커피에는 있습니다. 보자 마자 바로 느끼고 알 수 있는 것보다, 볼수록 알수록 멋있고 맛있는 게 더 좋잖습니까."
이때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숨은 맛을 찾는 유희이자 문화로서의 음미다. 호모 루덴스적 인간의 면모를 상기시킨다. 그래서일까, 박 대표가 강배전을 설명하면서 예로 든 것도 미술과 음악에 관한 것이었다.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 추상미술, 그 중에서도 구도와 색상, 배열이 뛰어난 한국 추상미술 1세대 고 유영국 선생, 약하게 눌러도 반응하는 특수 건반을 사용해 친 듯 안 친 듯 여백미 넘치는 연주를 할 줄 알았던 호로비츠를 좋아한다는 박 대표의 말에서 어떤 일관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직접 내려주는 강배전 커피를 마셔봤다. 빈스톡을 대표하는 스테디셀러 오리지널 시그니처 블렌드 원두를 썼다. 멕시코 브라질 에티오피아, 이 세 나라 원두가 각자 역할을 훌륭히 수행함으로써 고객들로부터 오래 사랑받는 메뉴라고 박 대표는 소개했다.
원두의 기름까지 걸러내는 촘촘한 종이 거름망대신 망 간격이 성긴 융드립을 사용해서인지 생각보다 향이 짙었다. 와인처럼 입에 머금고 맛을 느껴보라는 박 대표의 말대로 미각 신경을 곤두세웠다. 강배전이라고 해서 독하다거나 탄 냄새가 날 것이라는 생각은 기우였다. 쓴맛 속에 신맛과 고소한 맛이 시차를 두고 공존했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이 집 커피를 맛본 이후 웬만한 커피는 '싱겁다'. 분석할 것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제 개성을 뿜어내는 중배전 이하 커피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빈스톡 원두는 카페에서 구매해도 되고, 택배로 받아 볼 수도 있다.
핸드드립 7000원, 다크 에스프레스 5000원, 다크 아메리카노 5000원, 콜드 브루·카페라테·카푸치노 각 5500원, 바닐라 라테·카라멜 마키아토·카페 모카 각 6000원(샷 추가·아이스 각 500원 추가).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 부산 서구 암남공원로 56. 051-243-1239.
★ 곤포횟집
'통영식 냉면물회' 여름철 인기 광어 등 2~3가지 어종에다 해삼·멍게를 얹은 '특 물회'를 비비기 전 모습.
면과 생선회 한입에… 상큼·고소
육수, 과일·채소·한약재로 우려내
송도해수욕장 주변에는 횟집이 많다. 10여 년 전부터 여름 회 장사 대신, 냉면물회, 멍게비빔밥, 회덮밥 같은 식사 메뉴만 파는 곳이 곤포횟집이다. 단가 높은 회 대신 밥을 주로 파는 횟집이라는 얘기에 구미가 당겼다.
한낮 기온이 30도에 근접하던 어느 날 이 집에 찾아갔다. 가장 인기가 높다는 통영식 냉면물회, 그 중에서도 해물이 추가된 '특 물회'를 주문했다. 잠시 뒤 물회가 담긴 대접과 메밀면, 열무김치와 멸치볶음이 나왔다. 메밀면이 따로 나와 식성껏 덜어 먹을 수 있어 좋겠다 싶었다. 물회에 멍게와 해삼을 얹은 대접을 쓱쓱 비볐다.
탱탱하고 구수한 메밀면, 알싸한 멍게와 꼬들꼬들한 해삼, 강하지 않고 부드러운 양념이 입안에서 뒤섞여 춤을 췄다. 면과 생선회를 한꺼번에 집어 자작하게 깔린 양념을 찍어 먹다시피 다시 입에 넣고 오래 씹어보니 씹을수록 달콤한 맛이 났다. 양념과 생선이 간직한 고소한 맛을 충분히 뽑아낸다는 느낌이었다. 초고추장 맛이 지나치게 강해 다른 맛을 압도하는 여느 물회 양념과는 달랐다. 이 고소한 맛을 음미하며 내려다보는 송도 해변은 고즈넉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젓가락질을 하다 보니 그 큰 대접이 순식간에 비었다. 적지 않은 양이었기에 배는 부른데 아쉬웠다. 그릇에 깔린 양념을 몇 술 떠먹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곤포횟집 냉면물회 한 젓가락을 들어봤다. |
경양식 돈가스를 17년 동안 고수하고 있는 동녘의 돈가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