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이, 국물이 원기 회복에 끝내줘요"
입력 : 2017-07-19 19:10:16 수정 : 2017-07-24 22:05:54
7월 중순 더위가 이 정도다. 이번 여름도 참 길 것 같다. 덥다고 찬 음식만 먹다 보면 기운이 빠지고 면역력이 약해지기 쉽다. 단백질로 기운을 보충하고 허해진 속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삼계탕이 대표적인 여름 음식인 이유도 여기 있다. 부산 삼계탕의 역사를 대변하는 서울삼계탕과, 기본을 지키면서도 세련된 변신을 추구하는 동백삼계탕을 찾아가 봤다.
서울삼계탕
'57년 전통' 진한 국물 맛 자랑
3단계 비법, 정성 들여 우려내
약재 향 그윽, 담백하고 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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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처럼 국물이 뽀얀 서울삼계탕의 삼계탕. |
'국물이, 국물이 끝내줘요.'
오래전 텔레비전 광고에서 유행한 이 말이 떠올랐다. 서울삼계탕 국물을 한술 떠먹고 나서다. 곰탕 국물처럼 뽀얀 색깔에 감탄하고 깊은 국물 맛에 또 한 번 놀랐다.
서울삼계탕은 1960년 부산 최고, 유일의 번화가였던 남포동에 자리 잡았다. 상호만 그대로 두고 세월과 함께 주인도 바뀌는 노포가 어색하지 않은 부산이지만, 57년을 한 자리에서 꿋꿋하게 대를 이은 집이다.
일요일 낮에 가보니 가게와 함께 노년을 맞는 단골과 중국인 관광객이 쉴 새 없이 가게로 밀려들었다. 대체 비결이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이 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메뉴인 삼계탕을 시켰다. 다른 특별 재료에 가려지지 않은 삼계탕 본연의 맛을 보려는 심산이기도 했다.
공손하게 다리를 모으고 뚝배기에 담겨 나온 어린 닭에게 속으로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는 국물을 떠먹었다. 약재 냄새가 은은하게 묻어났다. 짜지 않고 담백한데, 깊은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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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깃한 가슴살과 구수한 청도산 찹쌀밥을 숟가락으로 떠봤다. |
부모님에 이어 1986년부터 가게 운영을 맡은 2세대 윤광철 대표는 이 국물의 비결을 3단계 국물 배합으로 설명했다. 첫 단계는 닭에 찹쌀, 인삼, 대추, 은행, 밤을 넣고 끓이는 생삼계탕이다. 2단계는 국물 만들기다. 닭 목과 머리, 발을 24시간 우리고 닭 넙적다릿살을 넣어 한 번 더 끓인다. 닭 목은 고소한 맛, 머리는 진한 맛, 발은 시원한 맛을 각각 담당한다. 마지막 3단계는 주문이 들어오면 생삼계탕 뚝배기에 국물을 붓고, 한약재를 넣어 한 번 더 끓이는 과정이다.
"전국 어느 삼계탕집을 가도 저희 집처럼 깊고 진한 국물 맛이 나질 않더라고요. 이런 국물은 어디 가서도 맛볼 수 없다고 자부합니다."
이미 부모님보다 더 오래 가게를 책임진 윤 대표가 자신의 음식을 이렇게 자신 있게 얘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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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깍두기·닭똥집 볶음은 여느 집과 다를 바 없으나, 서울삼계탕에는 국물에 말아 먹도록 국수 사리도 나온다. |
평양 출신인 윤 대표 선친은 철도청 공무원으로 부산에서 일하다 전쟁으로 고향을 잃었다. 의지로 고향을 등진 것이 아니었기에 전란 후에도 북에 남은 가족과 만날 방법을 백방으로 찾았다. 결국 제3국 국적을 가지면 북한에 여행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아들 몰래 미국 이민 수속을 밟았다. 서울에서 굴지의 무역회사에 다니는 아들이 가게를 이어받으려 하진 않으리라 부모님은 짐작했을 것이다. 윤 대표 부모님은 며칠만 가게를 좀 맡아달라 하고는 그렇게 미국으로 떠났다. 그 '며칠'이 올해로 31년이다.
남미에서 7년간 지사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윤 대표는 일하면서 체득한 다국어 소통 능력이 외국인 관광객을 맞이할 때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업무차 인도에서 온 손님이 삼계탕을 먹고는 "내가 지금껏 먹어 본 닭 요리 가운데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윤 대표의 꿈은 가게 건물 전체를 세상의 모든 닭 요리를 취급하는 '토탈 치킨 센터'로 만드는 것이다. 이미 전문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자녀들이 이 가게를 이어받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윤 대표의 열정으로 보자면 그냥 사그라질 꿈은 아닐 것 같다.
삼계탕 1만 5000원, 옻·홍삼·산삼·전복 삼계탕 각 2만 원. 전기구이통닭 1만 3000원.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 30분. 부산 중구 남포길 36(남포동). 051-245-3696.
동백삼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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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삼계탕의 황금흑마늘삼계탕에 큼직한 코끼리 흑마늘 조각이 얹어져 있다. |
흑마늘 분말·진액 넣은 국물
시원하고 구수한 맛 더 강해
탕 위에 얹힌 마늘 조각 '달콤'
2011년 해운대 마린시티에서 문을 연 동백삼계탕은 이 지역 주민들은 물론 해운대를 찾는 관광객 사이에서도 제법 입소문이 난 집이다.
넓고 쾌적한 분위기도 좋지만, 동백삼계탕의 강점은 옻이나 전복, 녹두 등을 넣는 기본적인 메뉴 외에도 끊임없이 변화를 꿈꾼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메뉴가 황금흑마늘삼계탕이다.
변수지 대표에게 이 메뉴를 어떻게 개발하게 됐는지 물었다.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흑마늘 진액을 마시다 삼계탕에 넣으면 어떨까 싶어 국물에 넣어 먹어 봤는데 맛이 참 좋더라고요."
변 대표가 사용한 흑마늘 진액은 미국 캘리포니아 길로이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코끼리 마늘을 미국 특허 기술로 숙성시킨 고가 제품이다. 가격이 부담스러웠지만 맛과 영양 측면에 강점이 있다고 본 변 대표는 손님들의 판단에 맡겨 보기로 하고 테스트 메뉴로 내놨다. 폭발적인 반응을 확인하고 정식으로 메뉴에 포함했다.
야심 차게 미는 메뉴라는 변 대표의 말에 황금흑마늘삼계탕을 주문했다.
겉절이, 닭똥집 볶음, 깍두기, 양파 장아찌, 그리고 된장에 찍어 먹는 고추와 마늘이 정갈하게 담겨 나왔다. 이 집 마늘은 생마늘이 아니다. 식초와 간장, 설탕 등에 절여 숙성시킨 마늘지다. 아린 맛은 덜하고 새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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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갈색의 국물은 흑마늘 분말과 농축 진액 덕분에 시원하고 입에 착 붙는 맛이다. |
삼계탕 그릇에는 큰 곶감만 한 코끼리 흑마늘 조각이 화룡점정 하듯 얹혔다. 국물 색깔은 흑마늘 분말과 농축 진액이 들어가 옅은 갈색이다. 국물을 한술 떴다. 닭발만 우려내는 이 집 국물은 원래 시원하고 구수한 맛이었는데, '천연 양념의 제왕'인 마늘이 들어가니 시원하고 구수한 맛은 더 강해지고 입에 착 달라붙었다. 어떤 잡내도 나지 않았다.
진한 국물과 쫄깃한 살점을 맛보다 아삭하고 상큼한 마늘지와 양파 장아찌를 번갈아 집어 먹으니 반찬과 탕의 궁합이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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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그릇을 비운 뒤 식용 금가루를 뿌린 흑마늘 진액을 한 잔 마시면 입안이 깔끔해진다. |
그릇이 거의 비었을 때 흑마늘 조각을 마지막으로 먹었다. 디저트로 나오는 젤리처럼 달콤했다. 이어 메뉴 이름에 '황금'을 넣게 한 식용 금가루와 흑마늘 진액을 입에 털어 넣었다. 깔끔한 마무리 음료로 손색없었다.
전통 보양 음식에 관심을 두고 이 가게를 차린 변 대표는 어릴 때 허약 체질이었다. 여름이 아니어도 어머니는 수시로 삼계탕이나 백숙을 끓여 먹였다. 덩치는 커졌지만 식생활 균형이 흐트러지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도 삼계탕은 사계절 꼭 필요한 음식이라고 변 대표는 믿는다. 특히 체내에서 열을 올리는 닭과 마늘이 냉하고 허한 기운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백숙과 볶음탕을 제외하고 현재 이 집에서 내놓는 삼계탕은 6종류. 좀 더 많은 이의 폭넓은 입맛에 맞추려다 보니 실험과 도전을 멈출 수 없다. 주변에 좋은 농·수산물이 있으면 변 대표는 삼계탕과 접목해 꼭 만들어 먹어 본다고 했다. 5~10년 뒤 이 집 메뉴판이 벌써 궁금하다.
동백삼계탕 1만 4000원, 황금흑마늘삼계탕 2만 원, 옻삼계탕 1만 7000원. 토종닭백숙 4만 3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 30분.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로 23(우동) 벽산오렌지프라자 3층. 051-900-9933.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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