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감동처럼 밀려드는 '아시아의 맛'

입력 : 2017-09-06 19:05:30 수정 : 2017-09-07 10:24:22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봄베이스파이스뷰의 인기 메뉴인 치킨카레는 짙은 색깔만큼이나 맛도 진하다.

가을이 온다. 잎은 떨어져도 부산의 가을은 영화제로 꽃핀다. '아시아 영화의 창.' 부산국제영화제가 지향하는 정체성이다. 영화제가 열린 지난 21년. 부산은 국제도시로 성장했다. 아시아권 많은 이주민이 부산과 인근 김해, 양산에 살고, 아시아 여러 나라 여행에서 특별한 추억을 쌓고 돌아오는 일은 거의 일상이 됐다. 영화제를 한 달가량 앞두고 '아시아 음식의 창, 부산'을 돌아봤다.

인도 봄베이스파이스뷰

부산 사상구 괘법동 일대는 교통 요지다. 부산김해경전철과 도시철도 2호선,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이 만난다. 대형 쇼핑몰과 전자 상가도 모여 있다. 주말이면 쇼핑과 나들이객으로 붐비는데 이 가운데 이주민도 상당수다.

관광객과 이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아시아 음식점은 많지만 이주민이 직접 식당을 운영하는 경우는 아직 드물다.

사상 일대 유일한 인도 식당

진한 카레·고소한 버터 난
이주민이 전하는 '맛 여행'


2012년부터 사상 일대 유일의 인도 음식점으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봄베이스파이스뷰'는 파키스탄 출신 이주민 아시프굴 대표가 인도 출신 요리사들과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1947년 영국으로부터 분리독립되기 전까지 하나의 나라였다. 영국의 식민 통치 전 평화롭게 공존하던 힌두교와 이슬람교는 '분할통치'의 제물이 되었고, 영국이 떠나자 두 나라로 나눠 졌다.

봄베이스파이스뷰는 어떤 종교와 문화권에서 왔든 편히 와서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메뉴를 소와 닭, 돼지 등 육류 종류에 따라 구분해 놓았다. 카레와 스파게티, 샐러드 등도 재료를 충실히 표시했다.

버터 난은 이 집 카레와 궁합이 잘 맞다.
한국 손님들이 많이 먹는다는 치킨카레와 난을 먹어봤다. 인도 화덕인 탄두르에서 구워낸 전통 빵(난)에 부드러운 버터를 발라 고소한 맛이 나는 버터 난을 카레에 찍어 먹었다. 진한 카레 맛과 난의 조화는 환상적이었다. 감칠맛 물씬한 갈릭 난은 특히 한국인 취향에도 잘 맞았고, 두툼하게 썬 닭고기도 포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인도인들이 먹는 밥 '플레인 라이스'도 한술 떴다. 동남아 여행에서 먹던 태국쌀 안남미보다 더 가늘고 길다. 마치 삶은 국수면을 썰어 놓은 모양이다. "소화가 잘 되고, 장에 부담을 주지 않아 좋습니다." 아시프굴 대표 설명대로 밥알은 찰기 없이 알알이 따로 놀았으나 몇 번 씹을 것도 없이 잘도 넘어갔다. 소화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인도 방식 대로 홍차에 따뜻한 우유를 부은 인디언티를 마셨다. 입 안에 진하게 남았던 커리향을 조용히 잠재우며, 이국적인 식사를 정리하는 의식을 치르는 느낌이었다.

치킨카레 1만 3000원, 달 프라이 1만 원, 버터 난 2500원, 갈릭 난 3000원, 코리안 라이스 1000원, 플레인 라이스 3500원, 인디언 티 3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 부산 사상구 광장로 27(괘법동). 051-907-8968.

베트남 라임트리
숯불 돼지고기 구이와 쌀국수를 느억맘에 찍어 먹는 베트남 음식 분짜와 스프링 롤인 짜조.
베트남 음식은 전문 프랜차이즈가 많다. 쌀국수와 월남쌈이 이젠 거의 중국집만큼이나 친숙하게 느껴진다.

2001년 캐나다 캘거리로 이민 떠난 오송희 씨도 현지에서 베트남 음식의 매력에 빠졌다. 외롭고 단조로운 일상에 지쳐 2009년 귀국한 오 씨는 캐나다에서 먹던 베트남 음식 맛이 떠올라 여러 식당을 찾아 봤지만 입에 맞는 곳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해보기도 한 그는 직접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했다. "어떻게 하면 베트남의 맛을 낼 수 있을지 궁리하다 호찌민에 가서 요리를 배웠죠."

호찌민서 직접 배운 요리

분짜·반쎄오… 현지의 맛
매운 쌀국수 속풀이에 딱!


최근 남천동에 문을 연 '라임트리'는 그 결실이다. 오 씨가 대표를 맡고 부인과 딸, 이렇게 가족 셋이 운영하는 라임트리는 메뉴를 간소화했다. 어디를 가도 흔하고 마진도 좋은 월남쌈은 애당초 관심에 없었다. 쌀국수와 분짜, 반쎄오(베트남식 부침개), 짜조와 고이꾸온 같은 롤이 이 집 메뉴 전부다. 잘할 수 있는 메뉴에 집중하려는 취지다.

쌀국수는 사골과 양지로 육수를 내고, 하노이 지역 대표 음식인 분짜는 레몬그라스로 향을 입힌다. 스프링롤인 짜조 속에는 돼지고기와 새우, 버섯 등 채소가 들어간다.

매콤한 맛을 보고 싶어 매운 쌀국수와 분짜, 짜조를 주문했다. 베트남 전통 젓갈 간장인 느억맘에 숯불 돼지고기구이와 쌀국수를 적셔 먹는 음식이 분짜다. 새콤달콤하고 차가운 느억맘에 숯향 그윽한 고기를 적셔 먹으니 마치 베트남에 여행을 떠난 기분이 들었다. 칼국수만큼 넓으면서도 두께는 얇은 쌀국수도 시원한 느억맘 국물에 담가 먹으니 기승부리는 늦더위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운 쌀국수는 속풀이용으로 그만이다.
매운 쌀국수는 속풀이로 그만이겠다 싶었다. 매콤하면서도 사골과 양지 국물이 은은하게 지친 속을 달래줬다. 바삭한 짜조는 아이들도 잘 먹을 수 있는 건강식이었다.

오 대표는 "정성과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인 만큼 지역 미식가들로부터 냉정한 평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맛도 맛이지만, 각자 맡은 자리에서 분주히 일하는 가족의 모습만 봐도 흐뭇한 집이다.

소고기 양지 쌀국수 6000원, 매운 쌀국수 7000원, 분짜 1만 원, 짜조 2개 3000원, 고이꾸온 3개 5000원, 반쎄오 1만 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 30분. 토요일 휴무. 부산 수영구 남천바다로10번길 45(남천동). 051-612-6511.

태국 태국식당
태국식 볶음밥인 카오팟꿍 위에 계란 후라이와 아삭한 숙주가 얹혀 있다.
동남아 인기 여행지 가운데 빠지지 않는 곳이 태국이다. 현지 음식을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도 그만큼 많다. 특유의 향신료 때문에 약간 거부감이 느껴지는 시기만 지나면 문득 떠오르는 향수에 젖는다.

부산대 앞 태국음식점인 '태국식당' 성은영 대표도 그랬다. 이탈리아 요리사로 10년 동안 일한 성 대표는 여행지인 태국에서 만난 현지 음식 향기에 처음에는 당황했다. 코를 찌르는 향신료가 거북했지만 참고 먹었다. 새우가 우러난 국물은 매콤하면서도 갑각류 특유의 진한 감칠맛을 냈다. 지금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태국 대표 요리 똠얌꿍이다.

외국인 미식가도 빠진 맛

똠얌 쌀국수에 땀 '뚝뚝'
창·싱하 맥주도 매력 가득

그녀는 태국 현지에서 두 달 동안 머물며 요리를 배웠고, 태국식당을 연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태국에 건너가 여러 도시를 돌며 지역적 특색을 확인한다.

"똠얌꿍 우리로 치면 된장이나 김치찌개 같은 음식이라 집집마다 지방마다 많이 다르거든요. 다른 음식도 그렇고요. 그래서 우리 입맛에 더 맞는 메뉴가 있는지 찾아보고 있습니다."
똠얌 쌀국수는 국물이 진하고 칼칼한데 해물 건더기도 풍성하다.
성 대표가 좋아한다는 똠얌꿍에 쌀국수를 만 똠얌 쌀국수를 먹어봤다. 원래 똠얌꿍 잘 먹었던 기자에게는 좀 더 매콤하게 만든 이 집 쌀국수가 아무 거부감 없었다. 중간쯤부터는 솟구치는 땀을 훔치며 먹느라 애를 먹었다. 그 많은 땀을 흘리면서도 뭔가에 이끌리듯 그릇을 들고 국물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성 대표가 말한 '묘한 중독성'이구나 생각됐다.

채소와 새우를 밥과 함께 볶은 태국식 볶음밥 카오팟꿍도 먹어봤는데 태국 음식을 처음 먹는 사람도 똠얌꿍보다 훨씬 수월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태국이나 베트남에서 온 이주민들도 종종 오시는데 유럽이나 미주 등 비 아시아권 손님도 꽤 됩니다. 아무래도 태국이 여행지로 인기가 높으니까 그렇겠죠." 성 대표는 외국인 손님이 전체의 30% 정도 된다고 했다.

태국의 밤을 밝혔던 창·싱하 맥주를 음식과 함께 맛볼 수 있다는 것은 덤이다.

똠얌 쌀국수·소고기 쌀국수·수끼 쌀국수·팟타이 꿍·팟씨유 각 6500원, 카오팟꿍·똠얌꿍 볶음밥·나시고랭 각 6900원, 뿌팟뽕카레(2인용) 1만 9000원, 싱하·창 맥주 각 6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 부산 금정구 금강로 274(장전동). 051-923-8329.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