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맛집] 풍성한 안주로 허기 채우고 술 한잔에 맘 달래고

입력 : 2017-09-13 19:08:45 수정 : 2017-09-14 10: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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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창, 대창, 양, 막창, 염통이 한꺼번에 나오는 장박사양곱창 모둠구이 한 판이 불판 위에서 맛있게 익어간다. 새송이버섯, 파인애플, 양파, 마늘 등을 함께 구워 먹는데, 상큼한 파인애플이 특히 잘 어울렸다.

해넘이가 빨라지는 때다. 저 어스름을 뚫고 다가오는 것이 내가 키우던 개인지, 나를 해치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개와 늑대의 시간'. 올바름과 그릇됨, 이로움과 의로움 사이에서 방황하던 영혼은 그 허기를 채우려 술집을 찾는다. 술은 만남을 매개하고, 좋은 안주는 육체의 허기를 채운다. 거뜬히 한 끼 밥도 해결되면서 술안주로도 충분한 음식을 내놓는 집을 찾아봤다. 전통과 퓨전 정도로 대비되는 곳이다.

장박사 양곱창

아낌없이 주는 동물 중에 소만 한 것이 있을까. 곱창과 막창을 먹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위(첫째 위인 '양'과 넷째 위인 '막창'), 대창(대장), 곱창(소장), 심장(염통). 구이용 소 내장들인데, 이를 모두 취급하는 업소를 찾기는 쉽지 않다.

'장박사 양곱창'에서는 이 모든 메뉴를 구이로 먹어 볼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 모둠 구이 한 판을 시켰다. 구이를 시키면 따라 나오는 메뉴라며 곱창라면이 먼저 나왔다. 면만 기성 제품일 뿐, 국물과 양념 등 모든 재료를 이 집에서 직접 만든다고 했다. 콩나물이 듬뿍 들어가 시원하면서도 사골국물은 담백하고 깊은 맛을 냈다. 이원식 대표는 특허를 출원했다고 했다.

다양한 소 내장 모두 취급
파인애플 등으로 직접 손질
육질 부드럽고 고소함 가득


라면을 먹는 도중 구이 한 판이 나왔다. 이 대표는 "매주 세 차례 도축 날짜에 맞춰 한우 부산물만 구매하고, 가게에서 직접 손질하고 양념도 하기 때문에 재료의 신선도와 품질에 관한 한 자신 있다"고 했다. 일부 업소는 냉동제품이나 손질된 재료를 납품받는다.

곱창라면
마침 이날 오후부터 이 대표가 주방에서 손질한 재료가 나왔다. 한 번 주방에 들어가면 6시간 정도는 장갑을 벗을 수 없을 정도로 공이 많이 들어간다. 수차례 뒤집어 알맞게 굽는 수고는 직원이 대신해준다. 황송하다.

잘 익은 양을 한 점 집어 양념장에 찍어 먹었다. 씹히면서 결에 따라 탱탱하게 말캉거리며 갈라지는 살점이 고소한 뒷맛을 남겼다. 다른 모든 부위는 한우를 쓰는데 오직 양만큼은 뉴질랜드산이다. 이 대표는 방목하지 않고 축사에 가둬 키우는 한우의 첫째 위는 운동량이 적어 위벽이 얇다고 했다. 그래서 업계에서 최고로 치는 뉴질랜드산 양을 쓴다고 한다.

혀에 착 달라붙는 진득한 곱을 뿜어내는 곱창도 특별했다. 이런 곱창을 먹어본 기억이 없었다.

"곱이라는 것이 위액인데요. 단백질 덩어리입니다. 이걸 냉장고에 이틀만 두면 물로 변해 버려요. 신선하지 않으면 절대 손님상에 낼 수 없죠. 그러니 제대로 소 곱창을 취급하는 업소가 별로 없어요. 어떤 곳에서는 곱이 없으니 채소를 넣어 건강식이라고 파는 곳도 있긴 하더군요."

차를 몰고 간 탓에 술을 마시지는 못했지만 곱창 한 점 뒤 소주 한 잔은 기막힌 조합일 듯했다.

단지 재료의 신선함으로만 가능한 맛이 아닐 듯했다. 특별한 손질과 양념의 비결이 있지 않을까?

"한 번 손질할 때 파인애플을 두 상자 정도 씁니다. 갈아서 쓰면 육질을 부드럽게 하는 천연 유화제 역할을 하죠. 마지막에 소주로 세척한 뒤 커피 가루로 잡내를 잡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재료 준비에서부터 정성이 묻어난다. 뿌리가 있었다. 이 대표 어머니 장영자(83) 씨가 서면에서 40년 넘게 양곱창집을 운영했고, 다른 사업을 하던 이 대표가 비법을 전수하여 10년 전 센텀시티에 어머니의 성을 딴 '장박사 양곱창'을 차렸다. 센텀시티 가게는 동생에게 물려주고 이 대표가 연산동에 같은 가게를 차린 것이 올해로 8년째. 40년에 더한 10년. 좋은 양곱창을 대중화하고 싶다는 이 대표의 바람은 세월과 정성으로 현실화되지 않을까.

모둠 한 판(600g. 특양 막창 대창 곱창 염통) 6만 5000원, 특양(160g) 2만3000원, 대창·곱창(각 200g) 각 1만 9000원, 막창·염통(각 160g) 각 1만 5000원. 곱창라면 5000원. 영업시간 오후 5시~오전 2시. 부산 연제구 쌍미천로151번길 37(연산동). 051-868-7272.

사월그날
사월그날을 대표하는 두 메뉴인 치킨크림스튜와 불고기 만두전골. 스튜는 부드러우면서도 칼칼한 파스타, 전골은 카레 국물이어서 반찬도 되지만 안주로도 훌륭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부산 서면, 옛 공구상가 주변이 뜨겁다. 무너져 가던 손바닥만 한 가게를 특이한 분위기의 술집과 밥집으로 고쳐 초저녁부터 줄 서는 맛집으로 만드는 마술이 심심찮게 펼쳐진다.

3년 전 성인 두 명이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지나기 버거운 좁은 골목 안에 '사월그날'이라는 술집을 연 서필교 대표도 어쩌면 이 마술의 주인공일지 모른다. 그가 가게를 열 때 골목 안에 술집이나 밥집은 한 곳도 없었다. '골목의 개척자'였던 것이다.

창의적 메뉴로 女心 저격

'사월 불고기 만두전골'
카레 국물, 안주로 제격


묽은 카레 국물에 고기와 사리, 튀김 등을 넣어 안주로 응용한 '이거먹고 빨리커리', 크림소스에 닭고기를 넣고 튀김도 찍어 먹는 '치킨크림스튜' 등 기발한 아이디어로 초저녁 20~30대 여성 애주가들을 줄 세우던 서 대표가 지난 4월 골목 밖으로 나와 2호점을 냈다. 좀 더 넓고 탁 트인 느낌이다.

2호점에 가서 사월 불고기 만두전골과 치킨크림스튜, 냉동과일 특공대를 주문했다. 전골은 '이거먹고 빨리커리'를 응용한 메뉴다. 카레 국물과 고추장 사골 국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데 다른 가게에 없는 카레 국물이 단연 인기다. 술 마신 다음 날 해장거리로 카레를 찾는 술꾼도 있다. 카레 국물은 쓴 소주 맛을 중화시켜주면서 동시에 속도 편하게 해준다. 실제 소주 한 잔 뒤 전골 국물을 떠먹어 보니 안주로서의 카레를 새로 발견한 듯한 환희가 느껴졌다. 꼬들꼬들한 우삼겹살이 씹히는 맛도 좋다.

치킨크림스튜는 마치 면만 빠진 치킨 고르곤졸라 파스타 같았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다. 파스타를 즐기는 여성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튀김 닭고기와 새우, 우동 사리가 들어가 안주와 밥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메뉴다. 청양고추로 끝 맛을 칼칼하게 낸 것은 안주의 기능에 충실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됐다.

서 대표는 "술이 약한 여성들이 밥과 간단한 반주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메뉴로 치킨크림스튜가 인기를 모은 것 같다"고 했다.
냉동과일 특공대
과일을 잘 챙겨 먹을 겨를이 없는 젊은이들을 위해 간편한 냉동과일 안주를 만든 데서도 서 대표의 감각이 묻어난다.

대학에서 사진과 실용음악, 디자인 등을 공부한 서 대표가 몸으로 부딪히며 사월그날을 자리잡게 하는 동안 골목은 조금씩 맛집촌으로 바뀌어 갔다. 젊은이들이 창업한 밥집 술집이 잇따라 들어왔고, 지금은 10여 곳에 이른다. 대부분 초저녁부터 대기자가 넘친다.

"적은 자본으로 가게를 차리려는 청년들에게 골목은 매력 있는 공간이죠. 아이디어와 개성이 드러나니 손님들이 골목 안까지 들어오시는 거고요. 이웃 가게 주인들과 우리 골목을 좋은 본보기로 만들어보자고 여러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습니다."

옆집에서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이웃과 함께 서 대표는 김치찌개 가게를 열려고 준비하고 있다. 비어있던 공구상을 리모델링해 오는 11월 문 열 예정이다.

"이웃에 뭔가 도움이 될 방법을 고민하다 힘을 모았죠. 천연 조미료로 돼지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을 만들어 보려고요." 아직 서른넷인 서 대표가 이끄는 이 골목, 11월에도 가봐야 겠다.

사월 불고기 만두전골 2만 8000원, 치킨크림스튜 2만 2000원(크로켓 새우튀김 추가 2만 9000원), 냉동과일 특공대 1만 6000원(곱빼기 2만 원). 영업시간 오후 6시~오전 2시(월~목)·3시(금·토)·1시(일). 부산 부산진구 중앙대로680번가길 81(부전동) 2층. 051-809-8807.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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