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맛집] 가을산도 식후경

입력 : 2017-11-08 19:18:44 수정 : 2017-11-08 22:4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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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와 채소, 양념을 보면 재료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초함 닭볶음탕.

가을이 깊어 간다. 짧아 더 애틋한 계절, 틈나는 대로 들로 산으로 다녀볼 일이다. 낙엽과 억새, 서늘해진 바람은 생명력 넘치던 여름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정취를 선사한다. 국민 취미 1위에 낚시가 올랐다지만 등산 인구도 만만찮다. 물 맑고(성지곡 수원지) 공기 좋은(편백림) 백양산은 부산 한가운데 봉긋 솟아 지역 산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하산 뒤 출출한 속을 달래기에 적당한 초읍동 맛집을 찾아봤다.

모방일지언정 도심에서 흙집을 발견하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초함'(草含)이 그랬다. 효율을 극대화하려 높이를 다투는 건물들 사이 나지막한 황톳빛 흙집은 입구에서부터 마음의 무장을 해제시킨다.

초함

황톳빛 흙집 토속적 분위기
닭볶음탕 등 기본기 충실
파전은 해물 반, 채소 반


가게에 들어서면 크고 작은 방 22개가 손님을 기다린다. 서로의 이야기와 음식에 집중할 수 있다.

지난 5월부터 어머니와 함께 초함을 운영하는 정현전 대표는 걸그룹 베이비복스 1기 출신으로 부산일보 '미녀들의 골프'에도 참여했다. '차도녀' 정 대표와 토속적인 초담 분위기는 묘한 긴장을 일으키지만 여기에서 에너지가 분출한다. 제대로 된 음식을 더 다양한 손님에게 선보이겠다는 그의 의욕은 다양한 메뉴와 긴 영업시간에서 드러난다.

"메뉴가 많고 영업시간이 길어 일손이 많이 필요하죠. 부담이 되지만 다양한 연령층 손님들 입맛에 맞는 음식을 대접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 대표 대답이 야무지다.

초함이 자랑하는 닭볶음탕과 해물탕, 파전과 백숙을 충북 영동에서 구매해 온다는 천덕막걸리와 함께 먹어 봤다. 많음은 없음과 마찬가지라 생각했는데 이 집은 달랐다. 음식 모두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 충실한 기본기를 보여줬다. 매콤달콤한 닭볶음탕은 반찬으로도 안주로도 좋았고, 얇고 바싹하게 구운 해물파전은 신선한 해물 반, 채소 반이었다. 

해물탕
해물탕에는 해감이 덜 돼 간혹 모래가 씹힐 수도 있는 조개를 줄이는 대신 문어와 새우를 더 넣었다. 칼칼한 국물이 막걸리를 자꾸 불렀다. 녹두와 전복, 각종 한약재를 맥반석 물에 푹 삶은 백숙은 야들야들한 닭고기와 깊은 국물맛이 잘 어우러졌다. 점심 저녁 새벽, 술밥, 육 해 공. 친근한 모습(草)에 품과 꿈이 넓은(含)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닭볶음탕 3만 원(대)·2만 원(중), 해물탕 5만 원(대)·4만 원(중), 해물파전 2만 원, 보양식 백숙 5만 원, 점심특선 산채비빔밥·육회비빔밥 각 1만 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전 4시. 부산 부산진구 성지로 101. 051-802-9090.

원가네
샛노란 국수에다 닭 한마리가 통째 들어간 원가네 닭한마리 얼큰한 삼계국수.
때로는 역사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하는 밥집이 있다. 밀양 수산이 고향인 할머니로부터 어머니에 이어 3대, 76년을 이은 '원가네'가 그런 집이다.

어린이대공원 입구 현재 자리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원성현 대표가 이은 세월은 16년. 원 대표는 닭 살점을 발라 시원하고 새콤하게 먹는 초계국수 장사를 시작했던 할머니의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넣어 밀양 수산에서 생산된 국수를 말았다. '닭 한 마리 국수'의 탄생이다.

닭 한 마리+밀양 수산국수
시원·칼칼 국물 감칠맛 돌아
샛노란 국수 면, 속 편안해


점심시간 찾아가 얼큰한 닭한마리 삼계국수를 먹어봤다. 국수 국물은 깊고 시원한 맛에 먹는 법, 삼계국수라는 이름을 보고 삼계탕처럼 묵직한 국물이면 어쩌나 걱정했다. 기우였다.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 맛에 숟가락이 자꾸 움직였다. 원 대표에게 물어보니 멸치 3종, 버섯 3종, 고추 2종, 여기에 갖은 채소를 더해 16가지 재료를 2~3시간 고아 시원하고 감칠맛 도는 국물을 낸다고 했다.

잘 삶긴 닭고기 살을 발라 먹으며, 틈틈이 국수를 흡입했다. 샛노란 수산국수는 매끈한 면발에 탄력이 좋기도 하지만 먹고 나서 속이 편하기로도 유명하다. 원 대표는 "밀양 수산에서 75년간 국수 장인으로 활동하는 최종문 선생이 만든 국수를 구매해 쓴다"며 "전국에 맛있다는 국수는 거의 찾아다니며 먹어봤는데 속 편하기로는 수산국수가 으뜸"이라고 말했다.
닭한마리 국수 한 상
원가네는 삼계탕 한 그릇값도 안 되는 돈에 닭 한 마리와 질 좋은 국수까지 먹을 수 있어 손님들 사이에 가성비 높은 집으로 꼽힌다. 가게를 다녀온 뒤 원 대표에게 물었더니 매콤한 양념을 뺀 일반 삼계국수가 얼큰 삼계국수보다 배 이상 더 많이 나간다고 했다.

'득템'한 것 같은 기분은 최소한 맑은 국물 삼계국수를 먹으러 갈 때까지는 유지되지 않을까.

닭한마리 (얼큰한)삼계국수·국밥 각 9000원, 불닭 한마리 국수·국밥 각 9000원, 얼큰 돔베 국수·국밥 각 8000원, 제주 돔베국밥 8000원.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9시. 부산 부산진구 초읍천로108번길 10. 051-802-5477.

사랑채
사랑채 돌솥정식 코스에 나온 밥에 나물과 참기름,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볐다.
돌솥정식이라는 부담 없고 정겨운 메뉴 이름이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정갈한 코스 한정식을 맛볼 수 있는 곳. '사랑채'를 다녀오고 든 생각이다. 우선 마당 있는 가정집 1층을 식당으로 사용해 입구에서부터 푸근한 인상이다. 잘 가꾼 화분이 안팎에 가지런히 놓였고, 조용한 음악이 흐른다.

좌식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돌솥정식 주인상을 주문했다. 잠시 기다리니 김치전, 찐만두, 샐러드가 나왔다. 김치전을 보고는 동동주를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이 먹기 적당한 양이었다. 얇고 바싹하게 구운 김치전에 동동주가 환상의 호흡이었다. 단맛과 톡 쏘는 맛이 덜해 부드러운 동동주 산지가 궁금해 물어보니 경기도 여주에서 생산된 한길주라 했다. 이어서 꼬시래기를 고명으로 얹은 파래국수에 황태무침, 냉채족발, 고구마 다식, 탕수육이 나왔다. 색감과 맛에서 지평이 넓은 구성이었다. 때로는 새콤 달짝지근하다가 때론 짭짤하게, 꼬들꼬들하다가 쫀득하게 입안을 노닐었다.

정갈·푸근한 코스 한정식
김치전·찐만두가 '전채'로
돌솥밥에 나물 비비면'꿀맛'

전채 요리
동동주는 거들 뿐, 요리의 향연을 입으로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됫박이 바닥을 드러냈다. 이미 배는 반쯤 불렀는데 밥상이 들어온다.

돌솥에 홍국미와 백미를 섞어 지은 밥, 바지락탕, 된장찌개를 비롯한 나물과 김치 반찬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밥을 놋그릇에 옮겨 담고 나물에다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으니 꿀맛이었다. 적당히 삭은 김치도 좋았다.

김상겸 사랑채 대표는 2004년 이 가게를 시작한 어머니로부터 '밥 팔면서 나쁜 소리는 듣지 말자'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노약자에게도 자극이 덜한 음식을 만들려고 노력한다는 얘기다. 젊은 김 대표가 앞으로 어머니의 가르침을 이으면서 어떤 음식을 내놓을지도 궁금하다.

돌솥정식 주인상 1인 1만 7000원(3인 이상)·2인 3만 7000원, 손님상 1인 2만 9000원, 삼계탕 1만 2000원, 냉채족 1만 5000원, 탕수육 1만 5000원, 떡갈비 1만 원, 찐만두 5000원. 영업시간 정오~오후 9시. 부산 부산진구 월드컵대로472번길 24. 051-805-3832.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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