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빵집을 찾아서] 부산 대연동 라온 베이커리

입력 : 2018-01-31 19:11:10 수정 : 2018-02-01 14: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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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망발통·포카치아… 전자과 출신 제과 기능장의 '건강한 빵'

라온 베이커리의 최고 인기상품인 까망발통이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대학교 전자과를 나온 사람이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으로 '대한민국 제과 기능장'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이런 점을 놓고 보면 부산 남구 대연동 못골시장 앞에 있는 '라온 베이커리' 박남규 대표는 특이한 사람이다.

부산 출신인 박 대표는 전자과를 졸업한 뒤 경남 창원에서 전자회사에 다녔다. 결혼까지 한 그는 부산에서 홀로 사는 아버지를 모시려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부산에 돌아왔다.

'가족이 먹을 수 있는 빵'이 철학
화학 첨가물 대신 자연발효종 써

처음에는 주점을 경영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그러다 대연동 유엔로터리 인근에서 누나 부부가 하던 '그랑부르'라는 빵집에서 일을 했다. 곧바로 가게를 인수한 그는 나중에 '쿠켄하임'으로 이름을 바꿨다.

박 대표는 초창기에는 제빵기사를 고용해 가게를 운영했다. 그는 빵 만들기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낮에 제빵기사들이 빵을 만드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고 기억해 뒀다가 영업을 마친 뒤 늦은 밤에 혼자 제빵실에서 직접 만드는 연습을 했다. 매일 오전 5시 30분에 문을 열어 오후 11시에 문을 닫을 때까지 계속 가게에만 있었다. 

박남규 대표
공부를 열심히 한 덕분에 2014년에는 제과 기증장 자격증을 땄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8시간 동안 케이크, 마카롱 등 다양한 빵을 만드는 실기시험을 치러 합격증을 받았다. 그는 "빵집을 하면서 술, 담배를 모두 끊었다. 온종일 가게에 있다 보니 친구들과 교류도 모두 끊어졌다"며 웃었다.

빵집은 제법 인기를 얻어 장사가 잘 됐다. 그러나 그는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프랜차이즈 빵집이 인근에 들어선 데다 가게가 있던 건물이 재개발 때문에 헐렸기 때문이었다.

박 대표는 2015년 대연동 현재 자리로 옮겨 '라온 베이커리'를 새로 열었다. '라온'은 순 한글이다. '즐거운'이라는 뜻이다. 그와 직원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에는 '빵에 대한 즐거운 생각'이라는 글이 조그맣게 적혀 있다. 그는 "즐겁게 일해야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고, 고객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 항상 즐겁게 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라온 베이커리'의 실내 장식은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매장 안팎은 온통 빨간색이다. 누구에게나 깊은 인상을 주고, 동화 속에 들어온 느낌을 준다. 이곳을 이용했던 한 블로거는 "사실은 빵을 사려고 들어갔던 것은 아니었다. 지나는 길에 정말 예쁜 인테리어가 발목을 잡았다"고 적었다.

박 대표의 빵 철학은 간단하다. '가족이 먹을 수 있는 빵'이다. 그래서 그는 빵에 화학 첨가물을 넣지 않고 자연 발효종을 사용한다. 시간과 돈은 더 들어가지만, 건강에 이롭기 때문이다. 
호두 페스츄리
'라온 베이커리'에는 단골손님이 많다. 한 번 맛을 본 손님들은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온다. 연산동에 사는 할머니는 매주 두 차례 빵집을 찾아 한꺼번에 많은 빵을 사 가곤 했다. 지금은 돌아가셨는지 소식이 없어 서운하다고 한다. 용호동에 사는 한 남성은 '까망발통'을 사려고 수시로 찾아온다. 빵이 품절될 수도 있어 미리 전화를 하기도 한다.

'까망발통'은 라온 베이커리의 최고 인기 상품이다. 오징어 먹물 빵이지만, 다른 집과는 조금 다르다. 밀가루에 드라이 이스트, 르방 르퀴드, 몰트 원액, 오징어 먹물을 섞어 반죽한 뒤 타피오카 전분, 파인 소프트 버터, 물엿, 계란, 식용유, 크림치즈, 분당, 생크림, 레몬주스 등을 섞는다. 반죽을 베이글 모양으로 말아 올린 뒤 기온 30도, 습도 75%에서 30분 정도 발효한다. 여기에 계란 흰자, 설탕, 아몬드 파우더, 오징어 먹물, 호두 등을 토핑으로 올려서 윗불 260도, 아랫불 120도에서 10분 정도 굽는다.
포카치아
100여 종류의 빵을 만드는 '라온 베이커리'의 또 다른 인기 상품은 감자, 소시지, 수제 머스타드를 넣은 '포카치아'다. 계피와 찹쌀을 넣고 아몬드, 호박씨, 깨 등을 뿌린 '시나몬 찹쌀 브레드'도 잘 팔린다.
시나몬 찹쌀 브레드
박 대표는 지금도 꾸준히 제빵 공부를 하고 있다. 부산제빵제과협회에서 시행하는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고, 여러 책을 보며 연구도 한다. 다른 제과점의 빵을 참고삼아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도 한다. 자신이 가진 레시피는 누구에게나 공개한다.

박 대표는 "못골시장에 온 이후 고객들이 꾸준히 찾아 장사가 잘 된다. 인근에 프랜차이즈 빵집이 있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는다. '라온 베이커리'는 프랜차이즈 빵과는 품격이 다른 빵을 제공한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라온 베이커리/부산 남구 못골로 12번길 84. 010-7721-8024. 051-622-3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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