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 전용배 교수와 삼천각] 情 넘치고 가성비 좋은 광안리 터줏대감

입력 : 2018-03-07 19:11:27 수정 : 2018-03-08 11: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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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배 교수가 좋아하는 고추만두

문을 연 지 30년을 넘은 중국음식점이 있다. 그 식당을 10년 넘게 매주 단골로 다닌 대학교수가 있다. 교수는 학교를 옮겨 이사를 하게 됐다. 식당 주인은 작별 인사를 하러 온 단골손님을 껴안고 통곡했다. 부산 광안리 입구에 있는 '삼천각' 박미정 대표와 동명대에서 일하다 단국대로 옮긴 전용배 교수의 이야기다.

"낯선 부산 생활에
힘이 돼준 곳이죠.
식당 앞 뽑기 아저씨에게
짬뽕 한 그릇·소주 한 병 건네는
베풀 줄 아는 주인을 보고
단골이 됐습니다.
여기 고추만두는 최고예요"

전용배 교수가 삼천각에서 음식을 들고 있다.
■스포츠로 운명 바뀐 교수

전 교수는 대구 출신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 축구선수로 활동했다.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축구는 직업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에도 그는 스포츠를 무척 좋아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클럽 야구를 했다. 고등학교 때에도 배구, 축구, 야구를 즐겼다.

전 교수는 영남대 1학년 때 야구클럽팀을 직접 만들었다. 이름은 '다이너마이트'였다.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남아 있다. 당시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2군 팀이 영남대에서 훈련했다. 그는 "다이너마이트는 삼성 훈련을 보조하거나 연습 파트너가 돼 주기도 했다. 이것이 저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삼성의 한 코치가 전 교수에게 영어로 된 야구책을 번역해달라고 부탁했다. 책을 읽던 그는 스포츠 분야에서 개척할 게 많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미국 유학길에 나섰다. 뉴멕시코주립대에 들어가 스포츠 경영학을 공부해 1999년 박사학위를 땄다. 귀국한 뒤에는 영남대, 대구대 등에서 시간 강사로 활동했다. 2004년 동명대에 스포츠 경영학과가 생겼다. 그는 교수직에 응모해 '1호 교수'로 채용됐다. 10년 이상 낯선 부산에서 활동하던 그는 지난해 단국대로 자리를 옮겼다.

전 교수는 삼성과 인연을 계기로 프로야구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지금은 KBO 야구발전위원회와 상벌위원회 위원, 프로야구선수협의회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기장에 야구 명예의 전당을 유치하기 위해 힘을 쏟기도 했다.
탕수육
■외국인 몰려 대박난 중국집

삼천각은 1981년 7월에 문을 열었다. 경남 진주에 살던 왕옥전·박미정 부부가 부산으로 건너와 개업했다. 왕 씨는 중국 톈진이 고향이다. 박 대표는 전북 남원 출신이다. 왕 씨의 조부는 진주 MBC 방송국 앞에서 종업원을 30명이나 두고 큰 중국 음식점을 운영했다.

삼천각이 문을 열 무렵 광안리 일대는 지금과 매우 달랐다. 복개천이 흘렀고 아파트라고는 삼익비치 정도가 고작이었다. 협진태양아파트는 지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의 파크호텔 인근은 보리밭이었다. 삼천각은 한자로 '三川閣'이다. '삼'은 왕 씨 부부의 세 자녀를 뜻하고, '천'은 당시 인근에 있던 복개천을 의미한다.

박 대표 부부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가게를 접으려고 했다. 너무 장사가 안됐기 때문이었다. 그때 한 점쟁이가 "조금만 더 버티면 대박 날 것"이라고 말했다. 부부는 조금만 더 영업하기로 했다. 그랬던 게 3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마음을 다잡은 직후부터 외국인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대개 20~30명씩 단체로 몰려왔는데, 외국인들은 1인당 하나씩 요리를 주문했다. 그 덕분에 큰돈을 벌 수 있었다. 처음에는 가게를 전세로 얻어 영업하다 불과 수년 만에 건물을 살 정도가 됐다·.

박 대표는 "메뉴는 초창기 그대로다. 처음엔 배달 위주로 했지만, 지금은 배달하지 않는다. 인건비가 덜 들어 가격을 싸게 유지할 수 있다. 그 덕에 손님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산슬
■삼천각 단골이 된 이유

전 교수가 삼천각을 단골로 드나들게 된 것은 업무 때문이었다. 그는 부산 각 대학의 체육학과에서 근무하는 객지 출신 교수들과 자주 만나 스포츠산업 관련 공동작업을 자주 진행했다. 다들 부산에 아는 사람이 없다 보니 일을 할 때나 마친 뒤에 식사를 같이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때 늘 들르던 곳이 삼천각이었다.

왜 굳이 삼천각이었냐고 물었다. 전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느 날 삼천각 박 대표가 식당 앞 '뽑기 아저씨'에게 소주 한 병과 짬뽕 한 그릇을 주는 것을 봤습니다. 처음에는 돈을 받고 배달하는 것으로 생각했지요.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뽑기 아저씨'는 삼천각이 개업할 무렵부터 같은 자리를 지켜 온 사람이었습니다. 박 대표는 추운 날씨에 고생하는 사람에게 선의를 베푼 것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장사도 정직하게 할 것으로 생각했지요. 그때부터 삼천각을 단골로 삼았습니다."

전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고추만두다. 박 대표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민망한 형편없는 음식"이라고 말하지만, 전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이곳에 오면 반드시 고추만두를 즐긴다고 했다. 겉이 푸릇푸릇한 고추만두는 속에 고추를 넣어 만든 음식이다. 살짝 매콤한 맛이 특징이다.

전 교수는 깐풍기와 탕수육도 주문했다. 깐풍기는 고기에서 뼈를 빼고 살로만 만든다. 탕수육은 고기에서 기름기를 제거한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강하다. 
깐풍기
전 교수와 인터뷰하는 동안 삼천각에는 끊임없이 손님들이 들어왔다. 전 교수는 "따라와 보라"면서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계산대 바로 옆에 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 둥근 테이블이 놓여 있는 방이었다. 그는 "10년 이상 된 추억이 서려 있는 방이다. 이곳에서 여러 교수를 만나 식사도 하고 술도 마셨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삼천각은 4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식당인 만큼 오래된 단골도 적지 않다. 미국에서 15년 만에 귀국했다는 한 손님은 "고등학교 때 단골이었다"며 감격에 찬 표정을 짓기도 했다. 최근 딸의 고교 졸업식을 마치고 온 한 부부는 "연애할 때 자주 왔다. 결혼하고 낳은 딸이 벌써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삼천각이 여전히 존재해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고 한다.

삼천각은 '가성비가 좋은' 식당이다. 전 교수는 "2만 원 안팎 되는 돈으로 맛있고 푸짐하게 중국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은 드물다"고 말했다. 그는 "100년 이상 된 전 세계 기업 가운데 50%가 일본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세대인 30년 정도만 돼도 '노포'라고 부를 만하다. 삼천각은 그런 곳"이라고 덧붙였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삼천각/부산 수영구 남천동로 108번길 54. 051-625-5558. 탕수육 1만 8000원, 라조육·깐풍육·깐풍기 2만 5000원, 양장피·유산슬 3만 원, 자장면 5000원, 삼선짜장·해물우동·해물짬뽕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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