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골목길 한가운데 노거수 한 그루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그 뒤로 작은 간판 하나가 보인다. '제주맛돈'이다. 식당 입구로 가 보니 지하로 안내하는 간판이 붙어 있다. 지하에 고깃집이 있으면 환기에 애로가 클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밝은 햇살이 실내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전등 불빛이 아니라 햇빛이었다. 알고 보니, 제주맛돈이 있는 건물 앞쪽이 높아 생긴 현상이었다.
제주맛돈은 수영구 남천동 남천파크맨션 인근에 있다. 제약회사 영업부서의 한 팀에서 근무하던 두 젊은 사원이 퇴직한 뒤 차린 식당이다. 남편 엄익현 씨와 부인 하주영 씨다. 부서원끼리 결혼한다는 소식에 회사가 난색을 보이자 8년간 근무한 회사를 과감하게 차례로 그만뒀다.
백돼지 월·수·금, 흑돼지는 화·목
제주도서 배송 받아 손님상에
멸치젓갈·자리돔젓갈 찍어 한 입
부부는 처음에 지인과 동업으로 옷가게를 운영했다. 그러나 여러가지로 애로를 겪다 결국 동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부부가 고민 끝에 생각한 게 식당이었다. 두 사람은 고깃집을 하기로 했다. 5개월 정도 준비했다. 제주도와 경남 김해의 도축장, 여러 식당을 골고루 둘러봤다. 고기를 사 와 집에서 직접 구워 먹어보기도 했다. 철저한 사전조사를 한 끝에 두 사람은 제주도 돼지고기를 팔기로 했다.
제주맛돈은 매주 3차례 고기를 배송받는다. 백돼지는 월·수·금요일에, 흑돼지는 화·목요일에 제주도에서 배로 배달받는다. 엄 씨는 "돼지고기는 사흘 정도 숙성돼야 가장 맛있다. 고기가 제주도에서 배로 운송되는 기간이 그 정도다. 그래서 매일 신선한 고기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기 가격은 매일 다르다. 어떤 날은 다른 날보다 20% 이상 더 비싸기도 하다. 일부 식당들은 쌀 때 고기를 많이 사서 냉장고에 저장해 두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제주맛돈의 인기 메뉴는 '근고기'다. 한 근(600g)씩 팔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곳을 찾는 손님 대부분은 오겹살 300g과 목살 300g으로 구성된 근고기를 즐긴다고 한다. 하 씨는 "근고기는 원래 제주도에서 파는 메뉴다. 하지만 한 근씩 먹기가 부담스럽다. 우리는 근고기를 기본으로 하면서 오겹살, 항정살 등 단품 메뉴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제주맛돈은 처음에는 백돼지고기만 팔았다. 그러나 이달 들어 가격이 조금 더 비싼 흑돼지고기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손님이 오면 부부가 고기를 직접 구워 준다. 바쁠 때는 구워 주지 못하고 잘라 준다. 예약하면 시간에 맞춰 미리 고기를 구워 놓는다. 부부의 손을 보니 곳곳에 상처투성이다.
근고기의 두께는 2㎝다. 그런 특징을 살려 일반적인 삼겹살과 달리 깍두기처럼 크게 잘라 굽는다. 속까지 바싹 익히지 않고 부드러움이 유지되도록 한다. 엄 씨는 "요즘 돼지고기는 과거보다 위생적으로 자라기 때문에 기생충 감염 우려가 적다. 그래서 굳이 태우듯이 구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제주맛돈의 주방과 홀 사이에는 벽이 없다. 주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고객들이 다 볼 수 있다. 각종 밑반찬과 소스도 공개적으로 내놓아 고객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흑돼지고기 생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