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빵집을 찾아서] 수영팔도시장 '파리뽀숑'

입력 : 2018-04-04 19: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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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지껄 시장 속 '따뜻한' 빵집, 좋은 재료가 비결

파리뽀숑 김제희(오른쪽) 대표와 부인 문해순 씨.

부산 수영구 수영동 팔도시장은 봄 향기를 찾아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시장 천장에 손님들에게 힘을 주는 글들이 매달려 있었다. '소중한 당신' '잘 했어' '천천히 해' '수고했어' '고마워' '밥 먹자' '괜찮아' '그냥 웃어봐'.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마음을 힐링시켜 주는 글을 읽으니 가슴 속에서 편안한 기운이 솟아올랐다.

시장 가운데에 좌판을 펼친 할머니들의 요란한 웃음소리 사이로 달콤한 빵 냄새가 굴러 다녔다. 시장 정문 반대쪽 끝부분에 자리 잡은 '파리뽀숑(대표 김제희)'에서 퍼져 나오는 유혹의 손짓이었다.

김 대표는 경북 영천 출신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구포에서 제과점을 하던 삼촌을 도와주러 부산에 내려왔다. 그것이 고향을 떠나게 된 계기가 될 줄은 그도 몰랐다. 삼촌 가게에서 열심히 일을 배운 그는 창원 '풍년제과'에서 공장장으로 일했다. 이후 영도 봉래동에서 '동명제과'를 운영하다 김해로 건너가 금성사에서 직원 급식용 빵을 만드는 제빵사로 일하기도 했다. 초량에서 '독일빵집'을 운영하다 광안리 광원아파트 상가로 자리를 옮겨 '파리뽀숑'을 다시 개업했다.

한 끼 식사로 충분한 크루아상버거.
김 대표가 가게를 팔도시장으로 이전한 것은 5년 전이다. 그는 "프랜차이즈 빵집이 생기면서 어려움이 컸다. 팔도시장은 유동인구가 많고 고객들의 연령대가 넓어 제품 판매에 적합하다고 봤다. 그 계산이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하루 14~15시간 정도 일을 한다. 종업원을 고용하면 인건비 부담이 크기 때문에 부인 문해순, 딸 김소연 씨와 함께 가게를 운영한다. 딸은 직접 제과점을 차리려고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우는 중이다.

김 대표는 "4~5년 이상 배워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제과점을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빵에 대한 철학은 분명하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손이 많이 가는 빵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동네 빵집'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버터와 크림치즈가 맛을 좌우한다고 보기 때문에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고 사용한다. 밀가루 반죽은 저온숙성한 종반죽을 이용한다. 종반죽은 한마디로 두 차례에 걸쳐 오래 숙성한 '묵은 반죽'이다. 종반죽은 빵을 굽기 전날 만든다. 숙성 시간은 빵 종류에 따라 다르다.

파리뽀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빵은 치즈시폰과 오페라, 크루아상버거, 몽블랑 등이다. 오페라는 페이스트리 방식으로 만든 카스텔라 비스킷이다. 반죽을 다섯 겹으로 만든 뒤 그사이에 모카시트를 넣어 만든다. 바깥은 부드러운 카스텔라다. 속은 고소하고 바삭한 비스킷이다.
달콤한 맛이 풍부한 도넛 제품들.
치즈시폰도 부드러운 카스텔라다. 크림치즈를 녹여 카스텔라 반죽에 섞어 만든다. 처음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계속 손이 가는 독특한 제품이다. 파리뽀숑 최고 인기제품 자리를 차지한 이유를 알 만했다.

크루아상버거는 김소연 씨가 개발한 제품이다. 머스타드소스를 크루아상 속에 바른 뒤 로메인상추, 햄, 치즈와 케이준 방식으로 만든 닭 안심, 계란 등을 넣어 만든다. 머스타드소스는 김 씨가 꿀, 파슬리, 마요네즈 등을 사용해 직접 개발했다.

파리뽀숑의 특징은 빵 가격이 싸다는 점이다. 문 씨는 "8년 전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박리다매가 원칙이다. 다행히 고객들이 많이 찾아줘 큰 힘이 되고 있다"며 웃었다. 실제 김 대표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문 씨는 연이어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대화에 끼일 틈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김 대표는 부산제과협회 수영구 지부장을 맡고 있다. 그는 소상공인들을 대표해 다양한 제안을 내놓았다.

그는 "요즘 카페가 많이 생겨 동네 빵집에서 빵을 많이 사 간다. 그런데 제과점들이 배달하면 불법이고, 카페에서 직접 와서 사 가면 합법이다. 불합리하다. 법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력난이 심각하다. 빵을 배우려는 젊은이는 많지 않고 기존 기술자 임금은 비싸다. 외국인 근로자를 제과점에서도 고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많다"고 덧붙였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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