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깡통시장 붙박이 세 부부의 '맛 하모니'

입력 : 2018-05-16 19:18:07 수정 : 2018-05-16 22:4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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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족발'의 인기 3가지 메뉴인 족발, 매운불족발, 냉채족발.

운명처럼 만나 결혼해 부평깡통시장에 들어온 세 부부가 있다. 다들 10~30년간 튀김, 족발, 떡에 각각 매달려 온 '붙박이'들이다. 단골이 많을 수밖에 없고 장사도 꾸준히 잘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인생, 장사 이야기를 들어본다.

뜨거웠던 연애만큼 열렬한 족발 사랑
장수왕족발

'장수왕족발' 최종운·김미임 부부는 재미있는 인연으로 만나 결혼했다. 남편 최 씨는 부산 토성동 출신이다. 원래 태화쇼핑, 스파쇼핑 등에서 패션 담당자로 근무했다. 부인 김 씨는 전남 영암 출신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를 따라 부산으로 이사 왔다. 그도 패션회사에서 수년간 일했다. 두 사람은 각각 따로 친구를 만나러 부평동에 나갔다가 우연히 육교에서 만났다. 첫눈에 서로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5년간 사귄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가정 형편 때문에 결혼에 시간이 걸렸다.

직장 일에 흥미를 못 느낀 최 씨는 새로운 길을 찾기로 했다. 그는 아내의 음식 솜씨가 좋은 점에 착안해 식당을 하기로 했다. 곰장어 등 여러 가지 아이템을 놓고 고민하다 족발을 골랐다. 부부는 가게 문을 열기에 앞서 부산은 물론 전국 곳곳의 유명한 족발집을 순례하며 음식 맛 내기를 배웠다. 사하구 하단동의 인기 족발집에서 한 달 동안 돈을 내고 배우기도 했다.

부평동 육교서 우연히 만나
사랑 키운 전직 '패션업' 커플

한약 23가지 넣고 삶는 게 비결


나름대로 비결을 간파하는 두 사람은 1994년 수영구 망미동 옛 국군통합병원 인근에 족발 가게를 열었다. 그곳에서 만든 족발을 들고 하단동의 '스승'을 찾아갔다. '스승'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배운 지 얼마 되지 않는 '제자'가 만든 족발이 훨씬 더 맛있느냐는 것이었다. 부부는 1999년 부평깡통시장으로 가게를 옮겼다. 집도 근처인 데다 옛날에 근무하던 곳 근처라서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었다.

최 씨 부부는 "우리 족발의 비결은 '진심'과 '정성'이다. 둘째 아들이 어릴 때부터 우리가 만든 족발을 정말 좋아했다. 캐나다에서 공부하다 최근 돌아왔는데 한 달 내내 매일 족발을 먹었다. 아들에게 먹이는 족발을 어떻게 제대로 만들지 않을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왕족발.
'장수왕족발'이 만든 족발에는 한약 23가지가 들어간다. 황기, 당기, 진피, 구기자 등이다. 여기에 땅콩, 들깨, 대추 등도 넣는다. 먼저 족발을 따뜻한 물에 담가 밤새 핏물을 뺀다. 세 번 정도 깨끗하게 씻어 '면도(털 제거)'한 뒤 끓는 물에 넣고 3시간 정도 삶는다. 족발을 꺼내 수분을 빼고 식힌 뒤 면도를 한 번 더 한다.

냉채족발 소스는 해파리, 당근, 양파, 적양배추에 파인애플, 키위, 사과 등을 넣어 끓여 만든다. 김 씨가 개발한 매운불족발 양념에 사용하는 고춧가루는 전남 영암에서 가져온다. 고추를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 씨를 빼서 잘 말려 사용하기 때문에 1년 동안 놔두고 써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장수왕족발' 최종운·김미임 부부
최 씨 부부는 "족발집을 아들 중 한 명에게 물려주고 싶다. 사회 경험을 조금 더 쌓게 한 뒤 원하면 가게를 운영하도록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수왕족발/부산 중구 부평동 2가 18-11. 051-247-3100. 010-8526-7878. 왕족발·냉채족발·매운불족발 2만 4000~3만 9000원. 모듬세트(족발 3가지+쟁반국수) 5만~7만 원.

신선한 콩기름이 비결, 또 찾게 되는 맛
하영이네 튀김집

깨끗한 기름 덕에 맑은 색이 자랑인 '하영이네튀김집'의 튀김과 전.
"우리가 어려울 때 찾아준 손님들 덕분에 아이들 교육하고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손님들의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

이바지 음식, 튀김 전문점인 '하영이네 튀김집' 김덕천·고종심 부부는 여러 번에 걸쳐 '손님들 덕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단순히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20년 넘은 시장 '터줏대감'
직접 재료 고르고 튀기는 정성에
단골 손님 끊이지 않는 전문점


부산 출신인 남편 김 씨는 포항제철에 6년 정도 다녔다. 그는 서울에 출장을 갔다가 친구 소개로 전남 무안 출신인 부인 고 씨를 만났다.

김 씨는 회사를 그만둔 뒤 개인사업에 손을 댔다. 그때 'IMF 외환 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그의 사업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아직 자녀들은 중학생이어서 어렸다. 부부는 어떻게 먹고살지 고민에 빠졌다.

처음에는 부평깡통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했다. 경험이 없어 1년 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때 고 씨의 언니 두 명이 부산에 내려와 음식 장사를 하라고 했다. 언니들이 튀김, 전을 만드는 방법은 물론 제사 음식, 이바지 음식 만드는 요령을 가르쳐 줬다. 전라도 출신이어서 음식 솜씨는 빼어났다.

처음에 요리할 줄 몰랐던 고 씨는 차근차근 하나씩 배워 나갔다. 튀김옷을 입힐 때 서서히 익혀야 하는 종류, 빨리 익혀야 하는 종류도 알게 됐다. 튀길 때 온도와 꺼내는 시간도 익히게 됐다. 재료를 고르는 눈도 키웠다. 그렇게 시작한 '튀김집'이 벌써 20년이 넘었다.
이바지 음식 세트.
'하영이네 튀김집'에는 오래된 단골손님이 많다. 그만큼 음식의 품질을 인정한다는 이야기다. 고 씨는 "다른 가게에서는 여러 곳에서 가져온 음식을 조합해 판매한다. 우리는 직접 모든 음식을 만든다. 시간이 오래 걸려 밤을 새우는 일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도매상에 가서 눈으로 보고 재료를 사 온다. 게다가 음식이 제때 잘 팔리니 재고가 없다. 당연히 재료와 음식이 신선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하영이네 튀김집' 튀김과 전 등은 대부분 노랗게 맑은 색을 띤다. 맑은 콩기름을 사용해서다. 기름은 매일 바꾼다. 일이 많을 때는 하루에 두 번 기름을 바꾸기도 한다. 
'하영이네 튀김집' 고종심 대표.
김 씨는 "돈 한 푼 더 벌려고 기름을 아껴서는 안 된다. 손님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기면 손님들이 스스로 알아준다. 그래야 다시 찾아온다"고 말했다.

▶하영이네 튀김집/부산 중구 부평1길 48 부평깡통시장 안. 051-253-4092. 전·튀김(15개) 1만 원, 제사 음식 20만 원, 이바지 음식 70만~150만 원.

떡 방앗간집 출신 부부의 '무한도전'
서온떡방

담백한 떡과 부드러운 팥이 제대로 조화를 이룬 '서온떡방'의 팥소절편.
부평깡통시장 '서온떡방' 김동수·추영민 부부에게 '떡'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김 씨는 경남 거창 출신이다. 삼촌이 함양에서 떡방앗간을 하는 바람에 온 집안이 떡 만들기에 매달렸다. 그는 맞선을 통해 하동 출신 부인 추 씨를 만났다. 결혼하고 나서 보니 추 씨 집안도 조부 때부터 떡방앗간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떡 기계를 개발해 특허를 내기도 했다. 두 사람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결혼했다가 뒤늦게 알게 된 뒤 땅을 치며 웃었다.

김 씨는 결혼한 뒤 거창에서 두붓집을 8년 정도 운영했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장사를 잘 했다. 그러나 인구가 점점 주는 바람에 큰 타격을 받았다. 그는 부산에서 떡 가게를 하기로 했다. 그것이 벌써 10년 가까이 됐다.

간수 뺀 신안산 소금으로 단맛 내

일본식 구운 떡·보석 젤리도 출시
끊임없는 연구·개발에 힘 쏟아


김 씨는 반송에서 떡집을 하는 장인에게서 떡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장인이 가장 강조한 것은 소금이었다. 그는 장인의 권유에 따라 매년 여름 전남 신안에 가서 소금을 가져온다. 간수를 뺀 소금이다. 그는 "봄, 가을에는 일조량이 적어 소금에서 쓴맛이 나지만, 일조량이 많은 여름 소금은 달다"고 말했다.

쑥떡에서는 시골 쑥 향기가 강하게 났다. 다른 떡집에서 먹는 쑥떡 맛과는 완전히 달랐다. 팥소절편은 담백한 떡과 부드럽고 달콤한 팥이 어울려 깔끔한 맛을 냈다. 추 씨는 "매년 봄이 되면 어머니 등 친정 가족이 경남 양산 통도사 뒤편에 가서 쑥을 뜯어온다. 그렇게 뜯어오는 양이 제법 많아 1년 내내 사용해도 될 분량이다. 절편 떡에는 소금만 넣는다"고 설명했다.
색이 예쁜 보석 젤리.
김 씨는 직접 새로운 떡과 젤리도 개발했다. 일본에서 알게 된 구운 찹쌀떡과 코하쿠토(보석 젤리)다. 구운 찹쌀떡은 후쿠오카의 다자이후덴만구 등에서 파는 부드러운 떡이다. 보석 젤리는 겉은 사탕처럼 단단하고 속은 부드러운 과자다.

김 씨는 구운 찹쌀떡 기술을 익히고 떡 틀을 수입하려고 후쿠오카로 갔다. 하지만 아무도 기술을 가르쳐 주거나 틀을 주지 않았다. 그는 고심 끝에 직접 구운 찹쌀떡의 재료 배합비율과 굽는 기술을 연구했다. 떡 굽는 틀도 국내 업체에 맡겨 만들었다. 일본에서는 찹쌀과 멥쌀 비율을 거의 8 대 2 정도로 하지만, 김 씨는 4 대 6 정도로 변형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코하쿠토는 물, 설탕, 한천을 기본 재료로 한다. 여기에 색을 내는 과일을 넣는다. 블루베리, 망고, 바나나, 자색고구마, 단호박 등이다. 절대 인공 착색료를 쓰지 않는다. 
'서온떡방'의 김동수 대표
김 씨는 "장인은 '지역마다 선호하는 떡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늘 건강에 좋고 맛있는 새로운 떡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서온떡방/부산 중구 부평동 2가 68-9. 051-244-7799. 쑥떡·팥소절편 2500원, 구운 찹쌀떡·양갱 1500원, 코하쿠토 3000원.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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