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동 '현'] 점심 특선 대박난 이자카야

입력 : 2018-07-04 19:14:03 수정 : 2018-07-05 13: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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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좌동 신시가지 현의 좁은 다치에 다양한 음식의 코스요리가 차려져 있다.

부산 해운대구 좌동 신시가지 일진빌딩 1층에 '현(대표 현응성)'이라는 식당이 있다. 겉으로만 보면 저녁에 술을 파는 이자카야처럼 보인다. 자리도 그다지 많지 않다. 개별 테이블은 없고 주방에 붙은 '다치(좁은 바 모양 테이블)' 뿐이다.

평일 오후 1시. 이곳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고 밀려들고 있었다. 무엇이 좌동 주민들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끌어들이는 것일까?

■사시미 정식 싸게 내놓아 

소고기 스테이크
현 대표는 부산 영도 출신이다. 부산남고와 부산정보대 전자과를 졸업했다. 전자회사에 들어가 열심히 근무하던 그의 인생 항로를 바꾼 것은 1998년 IMF 외환위기였다.

당시 상사들이 '떨어지는 추풍낙엽'처럼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에 사표를 낸 그는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학생 시절부터 취미 삼아 배워왔던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평생의 본업'으로 삼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요코하마에서 1년 정도 어학연수를 받은 뒤 도쿄에 있는 핫토리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코스 요리인 가이세키를 배웠다. 재료 본연의 맛을 내는 데 충실한 제철 요리였다. 2년 과정을 수료한 뒤에는 학교 측 추천으로 도쿄 아카사카에 있는 '후지'라는 작은 음식점에 들어갔다. 
겉은 닭다리이지만 속은 만두인 데바사키 교자
간판도, 메뉴판도 없는 식당이었다. 아는 손님, 단골만 받는 곳이었다. 가게가 미어터질 정도는 아니지만, 꾸준히 손님이 찾아왔다. 현 대표는 그곳에서 음식을 대하는 자세, 고객을 접대하는 마음가짐을 아주 진지하게 배울 수 있었다.

4년 일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현 대표는 파라다이스호텔에 들어가 6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후 실력을 인정받아 정식 직원이 돼 8년 동안 근무했다. 불판요리, 철판요리, 초밥 등을 담당했다.

현 대표는 2011년 해운대해수욕장 인근에 '현'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이자카야를 열었다. 욕심이 앞서는 바람에 장사가 안돼 1년 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손님들을 편하게 해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가게가 겨우 안정될 무렵에는 길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 골절상을 당해 1년 가까이 쉬어야 했다. 고난의 연속이었다.

현 대표는 부상에서 회복한 뒤 통닭 가게를 하기도 했다. 일식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지난달 다시 '현'이라는 이름으로 이자카야를 열었다. 낮에는 홍보용으로 잠시 점심을 팔 작정이었는데 예상 밖으로 손님이 많이 몰려 오히려 밤 영업에 지장을 줄(?) 정도가 됐다.

사시미 정식, 치킨 가라아게 정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니 손님들이 찾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양한 맛 품은 코스 요리 일품

현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B 코스' 요리를 하나하나 들고 왔다. 좁은 식탁이 금세 음식으로 가득 찼다.
상큼한 샐러드
먼저 샐러드가 눈에 띄었다. 아보카도에 포도, 각종 채소를 넣은 샐러드였다.

여러 접시에 갖가지 음식이 담겨 나왔다. 문어조림과 토마토, 꿀에 절인 새싹 인삼, 칡 전분과 땅콩으로 만든 모치리도후였다. 쫄깃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일품인 모치리도후는 젓가락을 자꾸 끌어당겼다.

삼겹살, 우삼겹, 닭고기가 담긴 사각 나무통도 보였다. 바닥에는 콩나물과 애호박이 깔렸다. 일본식 찜 요리인 세이로무시였다. 유자, 간장, 당근, 간 무로 만든 소스에 찍어 먹으면 감칠맛이 제대로 나는 음식이다. 
싱싱한 회
메인 요리인 회는 계절에 따라 7~8가지를 담아낸다. 그 옆에는 해삼초도 있었다. 유자, 레몬으로 만든 유자초에 절인 해삼과 복 껍질로 만든 음식이었다. 구운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소고기 스테이크도 곁에 놓였다.

닭 날개처럼 생긴 음식이 눈에 띄었다. 현 대표가 웃으며 "퓨전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데바사키 교자'라고 부르는 닭만두였다. 원래는 대만에서 유래한 음식이라고 한다. 닭 날개 속에 만두소를 넣어 튀긴 음식이다. 바깥 부분은 닭고기, 속은 만두 맛이 나는 이색적인 메뉴였다.

현 대표는 요리하면서 '후지'의 주방장에게서 배울 때 늘 듣던 말을 잊지 않는다. 요리사 생활을 하면서 칼을 잡을 때마다 되새기는 말이다. "요리사가 원가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요리의 질이 떨어진다. 좋은 재료로 만든 요리는 비싸게 팔고, 싼 재료로 만든 요리는 싸게 팔아야 한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현/부산시 해운대구 세실로 75(좌동) 일진빌딩 105호. 010-9883-8221. 코스 요리 3만~5만 원, 사시미 정식 1만 5000원, 회덮밥 1만 3000원, 연어 덮밥 8500원, 카레 정식·치킨 가라아게 정식 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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