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동 남포면옥] 냉면 한 젓가락 하실래요?

입력 : 2018-07-11 19:18:37 수정 : 2018-07-11 23: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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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구 유엔교차로에서 석포로를 따라 옛 부산외대 쪽으로 달리다 보면 오른쪽에 작은 밀면·냉면 식당이 하나 보인다. '남포면옥'이다. 위치가 애매해서 미리 알고 가더라도 찾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주차장이 없어 차를 세우기도 어렵다. 그런데 여름이면 가게로 들어가려는 손님들의 줄이 멀리까지 늘어선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그런 것일까?

어린 소뼈 14시간 우려
한약재 넣은 은근한 육수
부드럽고 깔끔한 맛
황금비율 반죽도 한몫

동네 장사지만 입소문 나
외지인이 더 많이 찾아

■육수 진액 만들기에 전력

김대영 남포면옥 대표는 부산해양고와 목포해양대 기관학과를 졸업했다. 학교를 마친 뒤 그는 다른 친구들처럼 '당연히(?)' 배를 탔다.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는 상선이었다. 선원 생활을 한 게 5년 정도라고 한다. 그는 "세계 일주를 여러 번 했다. 일본에서 화물을 싣고 인도네시아를 지나 인도양, 수에즈 운하를 거쳐 유럽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화물을 싣고 대서양, 파나마운하를 지나 미국을 거쳐 일본에 돌아왔다"며 웃었다.

김 대표는 바다에서만 살아야 하는 선원 생활에 싫증을 느꼈다. 배에서 내린 그는 중구 중앙동에서 4~5년 동안 시계점을 운영했다. 장사는 그럭저럭 됐지만 수금을 제대로 못 해 떼이는 게 많아 남는 게 없었다. 다른 일을 찾던 그는 리어카 제작에 손을 대 약 10년 정도 일했다. 여름에는 경북 청도 유원지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기도 했다.

갈 길을 제대로 못 찾던 김 대표에게 전혀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준 사람은 엉뚱하게도 고교 때 단골 밀면집 주인이었다. 부산해양고 인근에서 40년 동안 밀면집을 운영한 실력파였다. 김 대표는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자주 밀면집을 찾아갔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생'이 방황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밀면집 주인은 밀면, 냉면 기술을 가르쳐 주면서 가게를 해 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해서 뜻하지 않게 15년 전부터 밀가루를 만지게 됐다.

김 대표는 밀면집 '형님'에게서 배운 육수 진액 만드는 법을 개량하기 위해 많은 열정을 쏟았다. 그 결과 지금은 누구도 모르는 자신만의 육수 진액을 만들게 됐다. 이게 무더운 여름에 수많은 손님을 끌어들이는 비법이다. 그는 "남에게 배운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나만의 조리법이 필요했다. 그것을 개발하려고 정말 많은 땀을 흘렸다"고 말했다.

■외지인 많이 찾는 맛집

김 대표가 육수 진액을 만드는 비법은 이렇다. 먼저 어린 소 뼈를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곤다. 무려 14시간이다. 이어 소뼈를 버린 뒤 천궁, 녹각, 감초, 당귀, 계피 같은 한약재와 파, 다시마, 양파, 무, 생강 같은 채소를 넣어 다시 3시간 동안 끓인다. 여기서 찌꺼기를 꺼낸 뒤 조선간장, 소금 등을 넣어 다시 끓이면 육수 진액이 완성된다.

밀면과 냉면 육수는 진액을 희석해 만든다. 진액에 물, 소금을 넣은 뒤 레몬을 짜 넣으면 된다. 김 대표는 "레몬은 향을 살려주는 것은 물론 탈이 나지 않게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남포면옥의 밀면, 냉면 육수에서는 은근한 한약 냄새가 난다. 둔한 사람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약한 맛이다. 쓰지 않고 기분 좋게 달콤한 느낌을 준다. 인공 조미료 양념 맛과는 전혀 다르다. 육수는 연하고 부드럽고 깔끔하다. 한 사발 들이키더라도 입안에 남는 둔탁한 뒷맛이 없이 개운하다.

비빔밀면, 비빔냉면을 먹을 때는 따로 주는 따뜻한 육수가 있다. 소뼈를 곤 뒤 한약재, 채소를 넣어 다시 끓여서 만든 육수다. 냉면에 부어주는 육수 진액 희석액과는 조금 다르다.

이 육수 맛이 또 일품이다. 뒷맛이 개운한 게 따뜻한 물을 시원하게 마시는 듯한 느낌이다. 무엇인지 불편한 느낌을 주는, 때로는 수돗물을 섞은 것 같은 맛이 나는 다른 곳의 육수와 확연하게 다르다. 육수 맛 때문에 냉면가게를 찾는다는 미식가들의 이야기를 이해할 만하다.

밀면의 '면'은 밀가루 70%, 고구마전분가루와 옥수수전분가루를 각각 15%씩 섞어 찬물로 반죽한다. 반드시 찬물을 사용해야 한다. 육수와 물, 겨자도 섞는다. 물냉면의 면은 냉면가루 70%에 메밀가루 30%를 섞고 따뜻한 물로 반죽한다. 밀면과 정반대로 반드시 따뜻한 물을 넣어야 한다. 비빔냉면의 면은 냉면가루로만 만든다.

비빔밀면, 비빔냉면의 양념은 육수 진액에 양파를 넣고, 고춧가루와 설탕, 소금을 더 섞어 만든다. 텁텁하거나 자극적인 맛이 없이 깔끔하고 가벼운 게 특징이다.

남포면옥은 15년째 한곳에서 '동네 장사'를 하고 있지만, 뜻밖에 손님은 동네 주민보다 외지인들이 더 많다고 한다. 김 대표는 "처음에는 지역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조금씩 입소문이 났는지 지금은 멀리 기장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네 주택에서 살다가 아파트로 재개발되는 바람에 멀리 이사 간 주민들이 밀면, 냉면을 먹으러 일부러 찾아오기도 한다.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가게 문을 닫거나 옮기지 않고 이 자리에서 오래 장사를 해야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남포면옥/부산 남구 석포로 77-1. 051-624-3336. 밀면·비빔밀면 5500원, 물냉면 7500원, 비빔냉면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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