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명륜동 동래원조산곰장어] 곰장어 잡내 잡고, 풍미 살린 '노포'

입력 : 2018-08-22 19:13:24 수정 : 2018-08-22 22:3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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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장어 양념구이가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3대를 이어오는 동안 같은 맛을 지켜온다면 그 맛의 수준은 어떨까? 부산 동래에 그런 식당이 있다. 3대째 먹장어(곰장어), 붕장어(바다장어)를 다루는 곳이다. 바로 '동래원조산곰장어(대표 최효자)'다.

최 대표는 수영구 팔도시장에서 곰장어 식당을 하는 집안의 아들과 결혼했다. 부산에서 서생 김량집에 이어 두 번째로 문을 연 곰장어 가게였다.

부산서 두 번째로 문 연 곰장어 집
27년째 맞아 3대로 이어진 전문점

통영서 가져온 먹장어·붕장어로
주문 즉시 요리해 냄새 없고 맛나
작은 장어로 만든 통구이 '별미'


최 대표 시댁은 원래 장어 잡는 배를 갖고 있었다. 과거에는 장어를 잡으면 껍질을 벗겨 지갑이나 구두용 가죽으로 팔고, 살코기는 버렸다고 한다. 최 대표는 "당시 껍질이 ㎏당 2000원 정도였다면 살코기는 500원 미만이었다"고 회상했다.

남편이 사업을 하다 실패하는 바람에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졌다. 그때 시댁 제안으로 곰장어 식당을 열게 됐다. 뜻하지 않게 시작한 장사는 올해로 27년째를 맞았다.

지금은 아들 이우람 씨가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식당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 시댁 식구들도 일부 곰장어 장사를 하고 있으니 곰장어 가문이라고 부를 만하다.

동래원조산곰장어는 살아있는 먹장어와 붕장어를 사용해 음식을 만든다. 장어는 경남 통영에서 가져온다. 냉장 장어와 활어 장어의 맛 차이는 크다. 장어를 냉장고에 오래 두면 고기에 냄새가 난다. 특히 내장 부위에서 심하다. 반면 음식을 주문받는 즉시 살아있는 장어를 수족관에서 꺼내 조리하면 냄새가 나지 않는다. 동래원조산곰장어의 장어는 확실히 맛이 달랐다. 

바다장어 양념구이.
동래원조산곰장어에서는 장어를 산 채로 넣어뒀다가 손님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잡아 껍질을 벗긴다. 최 대표는 "장어 껍질을 제대로 벗기는 게 기술이다. 손끝과 칼끝의 강약을 잘 조절해야 한다. 실수하면 껍질이 끊어져 고기 모양이 망가지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장어 껍질로는 편육을 만든다. 여름에는 상할 우려가 커 손님에게 내놓지 않는다. 그래서 날씨가 선선해지는 가을과 추운 겨울에 원하는 손님에게만 대접하는 별미다.
곰장어 소금구이.
곰장어 소금구이는 버섯과 마늘로만 조리한다. 소금은 넣지 않는다. 최 대표는 "바다 고기는 본래 짜다. 소금을 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소금구이는 적당히 쫄깃하고 고소했다. 살은 매우 부드러웠다. 원래 곰장어를 먹다 보면 내장 부분에서 약간 거슬리는 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다. 동래원조산곰장어의 고기는 달랐다.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부위보다 더 부드러웠다.

곰장어 양념구이가 나왔다. 양념은 최 대표가 직접 담근 조선간장(집간장)으로 만든다. 1년에 메주 100개 정도를 만들어 간장을 뽑아낸다. 지금도 가게 옥상에 집간장 장독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태양초와 감초, 조청을 넣으면 양념이 된다. 최 대표는 "시댁 어른들에게 장어 요리를 배울 때 '양념을 너무 많이 넣으면 재료 본연의 맛이 안 난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고 말했다.
곰장어를 주문하면 나오는 반찬 한 상.
손님들에게 내놓는 김치 등 밑반찬도 가게에서 직접 만든다. 여름철이라서 내놓았다는 미역냉국과 청각냉국이 별미였다. 청각은 경남 사천 바다에 최 대표가 직접 들어가 따왔다고 한다.

동래원조산곰장어에는 아무나 먹을 수 없는 특별한 곰장어 요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곰장어 통구이다. 큰 장어 대신 아주 작은 장어로만 만든다. 장어 껍질을 벗기지 않고 내장도 빼지 않은 채 구워낸다. 흔히 말하는 '비주얼'이 별로 좋지 않아 젊은 여성들이나 어린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알고 찾아와서 원하는 손님에게만 대접한다. 그런데 한 번 맛을 본 손님들은 반드시 다시 찾는다고 한다.
구수한 맛이 일품인 장어탕.
장어탕도 있다. 붕장어로 만드는 탕이다. 주로 굵은 장어를 써서 고아낸다. 껍질을 벗겨 5시간 정도 삶아 살이 흐물흐물해지면 시래기, 배추, 고사리, 숙주를 넣고 끓이다가 간장으로 간을 한다. 민물 장어탕과 달리 비린내가 없고 고소한 맛이 강하다. 모르고 먹으면 시래기국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최 대표는 처음 식당을 할 때는 부끄러웠다고 한다. 같이 회사에 다녔던 동료들이 한 번씩 가게를 찾아오면 식당 밖에서 장어 껍질을 벗기거나 설거지를 하는 자신을 측은하게 보는 게 창피했다. 그는 "3년 정도 지나자 일이 재미있어졌다.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잔꾀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생각만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동래원조산곰장어/부산 동래구 명륜로 98번길 42(수안동). 051-553-8377. 산곰장어 2만 5000~5만 원, 바다장어 3만~5만 원, 장어탕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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