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 검증' 안 한 안전설비, 원전에 설치된다

입력 : 2018-10-03 19:58:42 수정 : 2018-10-04 10: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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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1∼4호기 모습. 부산일보DB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내 원전 안전성 강화를 위해 추진된 연구개발 과제가 사업 수행자 공고 조건과 다르게 마무리된 사실이 확인됐다. 더구나 이렇게 개발된 설비가 곧 국내 원전에 설치될 예정이어서 성능 검증 논란이 예상된다.

3일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하 에기평) 등에 따르면 에기평은 2013년 3월 원전 안전성 강화 등을 위해 '중대사고시 원자로건물 파손방지를 위한 여과배기계통 개발' 과제를 공고했다. 여과배기설비는 중대 사고 시 원전 내부 압력이 올라갈 때 방사성 물질을 걸러낸 뒤 내부 공기를 밖으로 방출해 건물 파손 등을 막는 설비로, 체르노빌·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같은 방사성 물질 누출 참사를 막기 위해 도입된다.

2013년 에너지기술평가원
'여과배기계통 개발' 공고
시제품 검증 조건 있었지만
컨소시엄, 축소품으로 시험
원전 4기에 440억 납품 계약

공고 직후 그해 5월 원전 관련 용역 전문기관 M사가 주관하고 한국수력원자력 등 5개 사가 참여한 컨소시엄이 연구과제 수행자로 선정됐다. 이후 이 과제는 정부 출연금 183억 8000여만 원을 포함한 245억 원이 투입돼 4년 만인 지난해 5월 완료됐다.

하지만 국회 산업위 소속 최인호 의원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공고 당시 제시된 과제 목표와 실제 연구과제 결과물에서 큰 차이가 발견됐다. 2013년 3월 과제공고문에는 여과배기계통 국산화·여과성능 등 각종 기술개발 목표로 '기술성숙도(TRL) 8단계'가, 과제 최종결과물로도 '여과배기계통 시제품'이 명시돼 있다. TRL 8단계는 표준화 및 인허가를 취득하는 것을 뜻하며, 관련 설비 실물을 제작해 원전이나 매우 유사한 환경에서 검증하고 공증을 거쳐 관련 산업계의 기술 표준까지 인정받는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과제수행자 선정 뒤 2013년 6월 작성된 협약서와 향후 사업계획서에선 TRL 등급이나 시제품 제작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다. 지난해 5월 작성된 이번 과제 최종보고서 등에서도 원전에 설치될 실물 크기 시제품 성능 검증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실물보다 수십분의 1 크기로 줄인 형태의 설비로 시험한 결과 등만 나와 있다. 이 때문에 과제 수행자 선정 과정의 공정성과 실제 설비에 대한 성능 검증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여과배기설비 과제 최종평가에 참여한 한 평가위원은 "최종평가에서 TRL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어 고려대상이 아니었다"며 "성능검사에 반드시 1:1 크기의 실물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성능 결과를 충분히 검토한 뒤 실용화에 문제가 없어 객관적으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본보는 공고와 결과물의 차이를 묻기 위해 에기평에도 공식질의서를 보냈으나 에기평 측은 아직까지 공식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편 한수원은 올 6월 해당 여과배기계통을 신고리 원전 등 국내 원전 4기에 설치하는 440억 원 상당의 계약을 맺었다.

김백상·김한수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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