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연산동 '해'] '다찌'서 맛보는 최고 숙성회

입력 : 2018-10-10 19:16:42 수정 : 2018-10-10 22: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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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칠맛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묘한 매력을 주는 '해'의 숙성회 한 상.

숙성회에 푹 빠진 일식 조리사가 있다. 확고한 신념을 갖고 숙성회 요리만 취급한다. 주변에서는 '부산 최고의 숙성회를 만든다'고 말한다. 부산 시청에서 한 구역 떨어진 신촌로에 있는 '해'의 김선일 대표가 바로 그다.

김 대표는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청주에서 학교를 다녔다. 누나가 사는 부산에 내려온 그는 남구 대연동 일식집에 취직해 일을 배웠다. 이후 이어초밥, 부산초밥, 다케 등에서 근무했다. 마지막 일터는 동구 초량동의 만수스시 2호점이었다. 그는 5년 전이던 2013년 6월 자신의 첫 가게를 열었다. 가진 돈이 없어 고민하고 있을 때 매형이 갖고 있던 상가에 들어가게 됐다.

전갱이·고등어·참치·황새치 등
자신만의 비법으로 사흘 숙성
느끼함 잡고 감칠맛 살려 '매력'

고소한 고등어 초절임도 인상적

해는 숙성회 전문 일식집이다. 그래서 수조가 없다. 이곳은 이른바 '다찌' 식당이다. 김 대표는 "개별 식탁과 다찌에 내놓은 음식 상태가 다르다. 식탁에 내는 음식은 한 접시에 한꺼번에 담겨 나가지만, 다찌에 앉은 손님에게는 천천히 차례대로 낸다. 다찌 음식이 더 신선하다"고 말했다.

참치, 간 등 다양한 회 한 접시.
김 대표는 다른 일식집에서 25년 동안 근무할 때도 개인적으로 숙성회를 만들었다. 가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횟감을 자신의 돈으로 사서 숙성해 일부 단골에게만 돈을 받지 않고 대접했다. 숙성회가 정말 통할까 시험해 본 것이다. 주로 선박, 어업 관련 일을 하는 손님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본에 자주 다녀 숙성회 맛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나중에는 아예 숙성회만 먹겠다고 하는 손님들도 생겼다. 그는 숙성회를 잘 모르는 다른 직원들에게도 권했다. 그들은 "묵힌 생선은 안 먹겠다"고 하다가 간장까지 찍어 다시 권하자 억지로 먹었다. 직원들은 두 눈을 번쩍 뜨면서 감탄하더니 "어떻게 이렇게 맛있느냐"고 말했다.

김 대표가 숙성회 만드는 시간은 다른 일식집과는 조금 다르다. 다른 곳에서는 대개 6~8시간 정도 되면 가장 맛있다고 하지만, 그는 사흘이 돼야 손님에게 숙성회를 내놓는다. 어떻게 숙성시키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밝히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는 "숙성 정도를 1~10으로 보면 다른 식당 숙성 정도는 1~2다. 우리 집은 9~10이다. 단백질이 변해 아미노산이 되려면 만 사흘이 걸린다. 바로 잡은 회보다 훨씬 맛있다"라고 말했다. 
고등어 초절임인 시메사바.
김 대표는 생선이라면 무엇이든 다 숙성한다. 그중에서도 전갱이, 고등어, 참치 등 등푸른생선이 가장 매력적이다. 숙성하면 향과 함께 묘한 매력의 맛이 나오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다양한 숙성회로 이뤄진 오마카세 요리를 하나씩 가져왔다. 맨 먼저 나온 무늬오징어는 쫄깃하지는 않지만, 쫀득하고 부드러웠다. 참치(눈다랑어)는 약간 까만 것처럼 보였다. 다른 집에 가면 오래됐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색깔이었다. 물기도 거의 없었다. 같은 숙성 참치인데도 덩어리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숙성 시간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황새치 뱃살(메카도로)도 나왔다. 눈다랑어와 메카도로는 전혀 느끼하지 않았다. 대개 참치 전문점에 가면 느끼한 맛 때문에 많이 먹기 힘든데 '해'에서는 밤새도록 먹어도 질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메사바가 나왔다. 고등어 초절임이다. 소금, 식초에 절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향이, 나중에는 고소한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비린 느낌은 거의 없었다.

아구 간도 있다. 김 대표는 "생선 간은 요리로 바꾸면 고급 음식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한 직업인에게 좋은 재료"라고 설명했다. 삼치도 나왔다. 숙성한 속살을 그대로 두고 표면만 살짝 익혔다.

김 대표가 메카도로와 시메사바 한 점씩을 가져갔다. 초밥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고기 두 점을 불로 살짝 익혔다. 메카도로 초밥은 유자 소스 맛과 불향 느낌이 독특했다. 시메사바 초밥에서는 고등어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다. 무슨 맛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김 대표는 "이게 다찌의 장점이다. 이 한 점을 드리려고 기회를 기다린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게 다찌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마지막으로 나막스로 만든 맑은 탕(지리)을 갖고 왔다. 무, 표고버섯을 넣은 뒤 소금만으로 간을 한 탕이다. 마지막에 조선간장을 약간 더한다. 깔끔하고 맑은 느낌이 매우 좋은 탕이다.

사실 활어회에 익숙한 우리나라 손님들에게 숙성회를 내놓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손님들은 당장 불만을 터뜨린다. '내가 회를 몇 년 먹었는지 아느냐, 장난치느냐'라는 소리가 금세 튀어나온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에는 오미가 있지만, 일본에는 여섯 번째 맛인 우마미, 즉 감칠맛이 있다고 한다. 숙성회의 맛이 바로 이렇다. 조미료가 인공적으로 맛을 낸다면 숙성회는 자연 아미노산으로 맛을 낸다. 여기에 숙성회의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해/부산 연제구 신촌로 8-1 조일빌딩 1층. 010-8547-3298. 오마카세(1인분)·모둠회 한 접시 5만 원, 코스(1인분) 4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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