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올리브] 재료·맛·분위기에 계속되는 즐거움

입력 : 2019-07-17 18: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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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와 쿠스쿠스 오징어와 쿠스쿠스

2010년 ‘엘올리브’가 문을 열었다. 엘올리브의 등장에 부산의 미식가들은 놀라고 반가워했다. 수영구 주택가 도로변에 난데없이 들어선 고급 유럽풍 레스토랑의 생소함에 놀랐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도심 내 예쁜 식당이나 카페는 흔치 않았다. 지금도 북유럽풍의 와인 창고를 본뜬 엘올리브의 외형은 여전히 낯설고 고풍스럽다. 높은 천장과 원목 중심의 실내는 우아함을 강조하고, 사방이 유리로 된 ‘글라스하우스’ 별채는 탁 트인 시원함을 선사한다.

문 연지 올해 꼭 10년째

슬로우 푸드 표방한 지중해 요리

전통 다이닝으로 미식가들 사랑 받아

시즌 코스 ‘오징어 쿠스쿠스’ 섬세한 맛

담백하고 부드러운 ‘가지 수프’

‘새우 냉파스타’와 ‘안심 스테이크’

마지막 코스 ‘옥수수 아이스크림’까지

“음식과 문화의 향연 이어지게 할 것”

글라스하우스 전경. 글라스하우스 전경.

미식가들은 엘올리브의 메뉴에도 놀랐다. 부산에선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전통 다이닝 레스토랑이었다. 슬로우 푸드를 표방하고 지중해 음식을 전면에 내세웠는데, 그때만 해도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고급 레스토랑은 호텔에만 있었다. 엘올리브가 부산의 미식 세계에서 전통 다이닝 레스토랑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어준 셈이다.

고희철 대표는 “다이닝 레스토랑이 많아졌는데,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걱정하지 않는다. 부산에서도 깊이 있는 맛을 볼 기회가 늘어나 오히려 반갑다”고 말했다.

올해로 개업 10년째라고 하니, 엘올리브는 상징성을 고려할 때 꼭 한 번 찾아야 할 곳이었다. 사실 부산에선 비싼 음식하면 횟집과 고깃집을 먼저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다. 다이닝 레스토랑에 그리 우호적인 지역이 아니고, 그동안 꽤 많은 다이닝 레스토랑이 등장하고 사라졌다. 그럼에도 엘올리브에는 여전히 미식가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매출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단순히 브랜드 가치만의 효과는 아니다. 맛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시즌 코스를 주문했다. 창밖으로 수영강변 풍경을 감상하고 있을 즈음, 식전 음식으로 수비드로 조리한 오징어와 쿠스쿠스 요리가 하얀 쟁반에 담겨 올라왔다. 처음 보는 요리다. 짙은 노란 빛의 소스와 오징어 먹물 등이 요리에 색을 입혀주는데, 지중해 음식다운 모양새다. 토마토 아이올리와 고추냉이 크림은 청량감을 끌어내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저온 조리된 오징어는 바삭한 듯하면서도 쫀득한 것이 입체적인 질감을 준다. 전체적으로 섬세하면서도 다양한 맛이 어우러진 것이 고급 레스토랑에 와있다는 게 실감이 난다.

가지 수프 가지 수프

수프는 독특하게 가지가 주원료로, 담백한 맛에 부드러움이 첨가돼 있어 식감을 자극한다. 가리비구이, 가지 껍질, 잣이 들어가 심심하지도 않다. 고 대표는 “가지, 양파, 고추, 버섯 등 채소들을 양산 오룡산 엘올리브팜에서 직접 재배하고 있어 맛과 품질을 믿을 수 있다”며 “해산물이나 나머지 식자재들도 부산과 경남 등 지역에서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컬 푸드를 이용한 지중해 음식은 10년째 이어오는 엘올리브의 정체성이다.

새우 냉 파스타 새우 냉 파스타

이어 토마토-셀러리 소스의 새우 냉파스타가 나왔다. 맛깔나면서도 먹는 재미도 있는 요리다. 여름 시즌에만 나오는 스파게티로, 비빔국수를 먹을 때 느껴지는 시원함이 있다. 면은 매우 가는 카펠리니로, 찬기운을 전달하기에 알맞다. 소스가 달짝지근하지 않아, 새우나 면의 질감이 오롯이 느껴진다. 단품 요리로 나오지 않는다는 게 아쉬울 정도다.

안심 스테이크 안심 스테이크

이제 메인 요리, 안심 스테이크다. 미디엄 레어로 주문했는데, 칼질을 시작하니 감자 매시로 육즙이 번지기는 게 식감을 자극한다. 엘올리브의 스테이크는 원플 이상의 한우만 쓴다. 그것도 귀하다는 ‘거세 우’만 쓴다. 그러니 고기의 질감은 굳이 묘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부드럽다. 다만 데미글라스 소스가 여느 레스토랑보다 적게 얹어져 있다. 고 대표는 “모든 음식에서 식자재의 원래 맛을 최대한 살리려고 한다. 고기의 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공을 최소화 한다”고 설명했다.

옥수수와 코코넛 아이스크림 옥수수와 코코넛 아이스크림

신기한 것이, 다이닝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는 한 접시만 보면 양이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디저트를 먹을 때가 되면 포만감이 느껴진다. 그러니 디저트는 상쾌하면서도 개운한 뒷맛을 남겨야만 한다. 옥수수와 코코넛 아이스크림의 앙상블이 나왔다. 구운 옥수수 버터구이가 얹어진 옥수수 아이스크림은 고소함이 일품이다. 청양고추가 살짝 들어가 있는 코코넛 아이스크림은 은은하게 매운맛이 느껴져 끝 맛이 개운하다. 묘한 맛이다.

마지막 코스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고 대표는 “음식 문화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역사와 가치가 계속 이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10년째 이어지는 엘올리브만의 우아한 맛과 분위기를 보면, 고 대표의 바람은 차곡차곡 실현되는 것 같다.

▶엘올리브/부산 수영구 좌수영로 129-1(망미동)/시즌 코스 7만 8000원(수프 추가 5000원), 런치 세트 3만 3000원부터(수프 추가 5000원) 등/051-752-7300

글·사진=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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