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두시장 시장분식] 칼국수 맛 어떻길래, 비행기 타고 올까?

입력 : 2019-09-18 17: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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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외곽의 좁은 골목길에 숨어 있는 아담한 칼국숫집. 점심 때가 되면 허름한 외관의 식당 앞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소문을 듣고 맛을 확인하러 온 이도 있고, 전에 먹었던 그 맛이 생각나 장시간을 달려온 이도 있다. 줄이 길어지면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출출한 배를 채울 수 있으나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강서구 한쪽, 이 작은 분식집을 찾아낸 미식가들의 탐구력과 소문을 듣고 먼 길을 달려와 한참을 기다리는 손님들의 인내력은 맛에 대한 대중의 애착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말해준다.

유부·부추·김 등 푸짐한 고명

황태 등 삶아 만든 비법 엑기스

깔끔하고 은은한 국물맛 일품

맵지 않고 고소한 비빔칼국수

선지칼국수·선지국밥도 ‘별미’

“얼마 전엔 인천에 사는 부부가 왔다 갔는데, 임신한 아내가 우리 선지칼국수가 계속 생각난다고 해서 비행기 타고 왔다가 밥만 먹고 돌아간다더군요.”

김해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덕두시장이라는 작은 전통시장이 있고, 그곳에 ‘시장분식’이 있다. 분식집이라고 해서 라면, 김밥, 떡볶이 등을 기대해선 안 된다. 칼국수, 비빔칼국수, 선지국밥, 선지칼국수, 비빔밥이 메뉴의 전부다. 여름엔 계절메뉴인 냉칼국수나 콩칼국수만 더해질 뿐이다.

테이블에 앉아 김치와 함께 음식들을 기다린다. 시장분식의 밑반찬은 김치뿐이다. 김치만 있으면 다른 밑반찬은 필요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인가? 김치 한 조각을 집어 먹으니, 짜거나 맵지 않고 대신 고소한 끝맛이 있다. 아삭한 맛도 충분하다. 보통의 김치와 맛의 차이가 확연해, 조리 과정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 시장분식 김우만 대표의 딸 김은형 씨는 “칼국수 국물로 김치를 절이는데, 그러면 김치에서 깔끔한 맛이 난다”고 했다.

칼국수가 등장했다. 고명이 푸짐하다. 유부, 부추, 김이 가득하고 그 위로 참깨가 수북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을 한 숟갈 떠먹는다. 잡맛이 없이 깔끔하면서도 은은한 감칠맛이 있다. 걸쭉한 느낌은 아니지만, 고소함이 꽤 깊다. 이 국물 한 숟갈에 쫀득쫀득한 면과 풍성한 양념장을 함꼐 먹으니, 속이 채워지는 기분이다. 김 씨는 직접 매일 장을 보면서 양념장 등을 준비해, 식자재가 신선하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멸치 육수 대신 밴댕이로 국물을 내는데, 우리만의 국물 엑기스가 들어간다”고 말했다. 밴댕이만으론 이런 국물 맛이 날 수는 없다. 뭔가 비법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다.

시장분식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건 ‘비빔칼국수’다. 쇠그릇에 담긴 비빔칼국수는 정갈한 느낌이다. 시금치, 당근, 콩나물 그리고 그리 붉지 않은 고추장의 색이 곱다. 젓가락으로 비비기 시작하면 고명과 양념이 버무려지면서, 면발이 맛깔스러워 보이는 윤기를 입는다. 군침을 삼키며 시식에 들어간다. 직접 뽑는 면발의 찰진 느낌이 온전히 전해진다. 무엇보다 양념 맛이 인상적이다. 맵지 않다. 오히려 고소함과 담백함이 입안에 퍼진다. 고추장 바탕의 양념도 담백해질 수 있다니…. 이 양념에 밥을 비벼 먹어도 일품일 것 같다. 역시나 시장분식의 비빔밥도 맛나기로 소문나 있다.

김 씨는 “고급 고추장에다 우리만의 액기스를 더해 양념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김치의 맛을 끌어올리고, 국물의 맛에 깊이를 더하고, 비빔양념에 감칠맛까지 입히는 이 엑기스만 있다면 뭘 해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시장분식은 45년 된 식당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덕두시장에서 김우만, 김복심 부부가 칼국수 등을 팔았다고 한다. 간판도 없는 작은 가게였다. 그러다 황태 머리 등 각종 식자재를 장시간 고온에서 푹 삶아 만드는 엑기스 등을 만들어내면서, 손님이 몰려들고 이제는 소문난 맛집이 됐다. 지금 가게도 입구는 매우 좁은데, 들어오면 8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손님이 꾸준히 늘면서 실내 공간을 계속해 늘리다 보니 이런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김해공항과도 가까워 시장분식은 부산을 찾는 관광객이 처음 혹은 마지막 방문지로 찾는 경우가 많다.

시장분식이라는 밋밋한 상호도 사실 직접 정한 게 아니라고 한다. 김은형 씨는 “옛날에 관청에서 전화번호부를 만들면서, 당시 동장이 상호 없는 우리 가게를 그냥 시장에 있는 분식집이라고 시장분식이라고 올렸는데, 그게 정식 명칭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김우만 대표 등은 가게명에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 듯하다. 오직 투박하게 맛만 고민하며 45년을 보낸 듯하다. 김우만 대표는 8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가게에서 정정하게 일하고 있다.

선지칼국수나 선지국밥도 별미다. 선지칼국수가 독특한 음식이다 보니, 전국적으론 일반 칼국수보다 더 유명하기도 하다. 비빔칼국수를 주문하면 선짓국도 곁들여 내놓았는데, 반응이 좋아 별도 메뉴로 만들었다고 한다. 고추기름 등이 들어가는 선짓국에 비하면 시장분식 선짓국은 담백하고 맑다. 얼핏 소고기국밥 같은 느낌도 있다. 그러면서도 역시나 특유의 엑기스가 들어가 있어, 맛깔스러움이 유지된다. 선지 역시 잡내가 없어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 색도 곱고 기포 자국도 거의 없다. 김 씨는 “제일 좋은 싱싱한 선지를 써 보기도 좋고 맛도 좋다”며 “부드럽고 모양도 고와, 아이들이 우리 선지를 ‘빨간두부’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장분식/부산 강서구 공항로811번다길 23-19(대저2동)/칼국수 5500원, 비빔칼국수 8000원, 선지칼국수·선지국밥 7000원, 비빔밥 8000원.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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