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완당' 0.3㎜ 반죽피, 후루룩 구름을 마신다

입력 : 2019-10-16 18: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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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피에 쌓인 알을 떠먹듯 숟가락질을 한다. 알은 보들보들한 옷을 입고 있어, 먹는다기보다 마신다는 말이 어울린다. 후루룩 알이 목을 넘어가는데, 피 속의 돼지 소가 살짝 느껴지는 정도이다. 개운한 맛의 국물과 맞물려,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속이 풀리는 기분이다. 중국 해장술에서 유래됐다는 게 이해가 된다. 옛 중국 사람들은 이 음식을 먹을 때 “구름을 마신다”고 했다.

수영구 센텀병원 근처 작은 완당 전문집

멸치·다시마로 우려 낸 시원한 국물

흐느적거리면서 끊기지 않는 반죽피

돼지 앞다릿살로 만든 소 ‘후룩’ 넘어가

담백한 김밥·유부초밥 완당과 잘 어울려

탱탱한 면발 인상적인 판메밀국수

주촌서 공수한 고기로 만든 돈가스 별미

부산의 대표 음식하면 대부분 순대국밥, 밀면 정도를 떠올린다. 다른 지역에서 이 음식을 먹으면 왠지 본연의 맛이 아닌 기분이 든다. 하지만 아예 다른 지역에서 맛조차 보기 힘든 부산 음식도 있다. 완당이다. 부산을 빼면 전국적으로 완당집은 전무한 수준에 가깝고, 심지어 부산에서도 완당집은 몇 군데 없다. 그래서 부산 사람들에게도 완당은 여전히 낯설거나 신기한 음식이다.

“별미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아무래도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흐느적거리는 느낌을 주면서도 끊기지 않는 0.3㎜의 반죽을 한다는 게 예삿일은 아니죠.”

수영구 센텀병원 뒤편 ‘두보완당’은 전국의 몇 안 되는 완당 전문집이다. 게다가 ‘18번’ 같은 숫자가 들어가 있지 않고 주인이 직접 조리하는, 이처럼 작은 완당집은 본 적이 없다. 작은 만두를 연상시키는 완당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향토문화전자대전엔 부산의 향토음식으로 소개돼 있다. 중국의 ‘훈뚠’이라는 일종의 만둣국이 일본으로 건너가 ‘완탕’이 됐고, 1940년대 말 일본에서 완탕 기술을 배워온 이들이 부산에서 순차적으로 영업을 하거나 기술을 전수했다. 이런 식으로 시작돼 이어져 온 가게가 서구 부민동 ‘원조18번완당’과 중구 남포동 ‘18번완당집’이다. 두 곳 모두 전국적으로 이름난 전통 완당집이다. 그리고 지금의 완당은 일본의 완탕과는 다른 맛을 내는 다른 음식으로 진화했다.

두보완당 정주상 대표는 “30여 년째 완당을 빚고 있는데, 제대하고 18번완당집에서 10여 년 일하며 기술을 배웠다”며 “직접 가게를 차릴 땐 1940년대 말 완당을 들여왔던 이우석 선생께 따로 맛을 전수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두보완당의 완당은 맑은 우동 국물 같은 색을 띠고 있다. 숙주는 수북이 쌓여 있고, 여느 완당처럼 앙증맞은 모양의 어묵과 계란피 조각 등이 모양을 낸다. 국물은 다른 완당과 비교해 개운한 맛이 강조돼 있다.

닭 육수를 써 진한 맛을 내는 일본식 완탕과는 달리 완당은 기본적으로 멸치와 다시마를 써 시원한 맛을 낸다. 시원한 맛을 좋아하는 부산 사람의 취향이 반영된 건데, 두보완당의 완당은 여기에 멸치 육수가 조금 더 강조된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잡내가 없는 것이, 30년 이상 완당을 만들고 있다는 정 대표의 노하우가 느껴진다. 돼지 앞다릿살로 채워진 건더기 또한 충분히 부드러워, 후루룩 넘어가는 목 넘김이 좋다.

완당집에 빠지지 않는 메뉴가 김밥과 유부초밥이다. 완당엔 김밥이나 유부초밥을 곁들이는 게 식사 규칙처럼 자리 잡았다. 두보완당 김밥의 특징은 삼삼하다는 거다. 그래서 김초밥이 아니라 우리의 김밥에 가깝다. 유부초밥 역시 짜거나 강한 맛이 아니다. 부드럽고 담백한 느낌이다. 완당에 곁들여 먹기에 좋은 맛이다. 정 대표는 “완당이 후루룩 넘어가니 아쉬워서 김밥을 곁들이는 게 관례가 됐다”며 “해장하러 오시는 손님은 완당만 드시기도 하는데, 사실 완당의 건더기 양도 따지고 보면 결코 작은 건 아니다”고 말했다.

정 대표가 수영구 현 위치에 두보완당을 차린 건 2013년도이다. 20명 남짓 손님을 맞을 수 있는, 노란색 바탕의 인테리어가 된 아담한 식당이다. 외형만 보면 전형적인 깔끔한 골목식당이다. 인근 주민들도 단골이고, 가까운 센텀병원 환자들도 많이 찾아온다. 그러나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의 30~40%는 꽤 멀리서 찾아오는 이들이다. 그 덕에 점심 때면 가게 앞으로 기다리는 줄까지 생기기도 한다. 정 대표는 “해장하러 꽤 멀리서 오는 단골도 있고, 부산에 온 김에 완당을 먹으러 찾아오는 관광객들도 있다”고 말했다.

완당집의 또다른 단골 메뉴는 판메밀국수다. 따뜻한 완당과 대비되는 음식이지만, 둘 다 반죽을 잘해야 맛을 살릴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보완당의 판메밀국수는 면발의 탱탱함이 인상적이다. 끓는 물을 이용한 열반죽으로 만든 면발이다. 정 대표는 부산진구 양정동에 별도의 작은 개인 작업실을 두고, 그곳에서 매일 완당피와 메밀국수 면발을 반죽한다.


의외의 메뉴가 보이는데, 수제돈가스다. 돈가스 기술을 배운 적이 있는 정 대표가 완당 메뉴와의 세트로 내놓았다가, 반응이 좋아 별도 메뉴로 만들었다. 정 대표가 김해 주촌에서 고기를 가져와 반죽하고 굽는데, 돈가스의 색이 맑고, 질감도 부드럽다. 완당 국물이 곁들여져 나오는데, 의외로 궁합이 좋다.

▶두보완당/부산 수영구 광서로10번길 54(광안동)/완당 6000원, 판메밀국수 6500원, 수제돈가스 7000원, 완당+유부·김밥 7500원, 완당+수제돈가스 8500원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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