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골가든] 할머니 집에서 먹던 백숙이 떠올랐다

입력 : 2019-10-23 18: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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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핑계 삼아 잠시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요즘처럼 날씨가 좋은 날 부산 기장군 장안사 근처로 가는데, 장안사 주변을 안 거닐 수가 없다. 가을이라 하늘은 높고 바람은 선선하며, 나무와 숲은 아직 여름의 기운을 품어 울창하다. 가을이 더 깊어져 푸른 잎들이 붉어져도 멋질 듯하다. 장안사 계곡물은 여전히 시원해 보인다.

기장군 장안사 근처 차로 2~3분 거리

오래된 기와집 외형 살려 식당 열어

잡내 없이 능이 향 녹아든 닭백숙

각종 약재 넣어 푹 끓인 ‘보양식’

싱싱한 부추 고소함과 양파 단맛

기름기 적은 오리불고기도 인기

감식초로 숙성한 장아찌·묵은지 등

직접 기른 재료로 만든 반찬 입소문

한 시간 남짓 자연을 즐기다, 주변 식당가로 향한다. 장안사에서 차로 2~3분 거리엔 오리·닭집이 꽤 있다. 메뉴는 다들 비슷해도, 맛은 집마다 개성이 있다. 그 중에서 ‘감골가든’이 목적지다. 도롯가에서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야 하지만, 평일에도 집 앞 공터 주차장에 꽤 많은 차가 주차돼 있다. 계곡과 산을 즐긴 뒤 백숙이나 오리불고기로 몸을 채우기에 좋은 때라 그런가 보다.

“사실 계절에 상관없이 손님이 많은 편입니다. 20년 한자리를 지켰는데, 재료의 신선함을 알아주는 이들도 많고 소문도 그렇게 났죠.”

오늘의 메인 메뉴는 가을에만 맛볼 수 있는 ‘능이백숙’이다. 능이는 가을에만 채취되는 버섯이라, 생 능이로 만든 요리는 이때가 아니면 먹기 힘들다. 기와집의 널찍한 방에 들어가 설레는 마음으로 음식을 기다리는데, 밑반찬이 깔린다. 언제나 그렇듯 푸짐하다. 배추, 깻잎, 연근, 감자와 옥수수, 호박전, 각종 장아찌 등 반찬을 담은 접시만 15개에 이른다.

감골가든 밑반찬은 푸짐하고 맛나기로 소문나 있는데, 기본적으로 각종 채소 등에서 신선함과 깔끔함이 뚜렷하게 전달된다. “반찬 먹으러 이 집에 온다”는 이들도 꽤 있다. 안순옥 대표는 “인근에 직접 밭을 크게 하고 있다. 거기서 웬만한 것들을 재배하는데, 매일 걷어 와 손질해 내놓는 것들이라서 싱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역시 좋은 식자재가 맛을 결정하는 법이다.

밑반찬 중에서도 장아찌가 꽤 인상적이다. 무, 연근 등 여러 종류로 나오는데, 짭조름하면서도 새콤한 것이 간이 절묘하게 맞춰진 느낌이다. 직접 만든 현미식초와 감식초를 숙성한 것을 쓴다고 한다. 김치의 맛도 강렬하다. 전형적인 묵은지 김치인데, 짜지 않으면서도 숙성된 맛이 짙게 스며있다. 이 김치는 장시간 땅속 장독대에 담겨 있다 갓 나온 것들이다. 밑반찬에 쏟는 정성을 가늠해 보면, 어떤 태도로 음식을 하는지 알 수 있는 법이다.

커다란 그릇에 담긴 능이백숙이 상에 오른다. 널따랗게 펼쳐진 능이가 탐스럽다. 닭과 각종 약재, 능이 등이 녹아든 국물은 색이 짙은데, 막상 떠먹어 보면 담백한 느낌이다. 여러 식자재에서 우러난 육수가 은은하게 스며, 깊은 맛이 난다. 향이 짙은 능이도 맛의 풍미를 더 한다. 닭고기 역시 국물의 맛이 스며, 잡스러운 맛이 사라졌다. 부드럽지만 부서지지 않는 질감이라, 뼈를 발라내기도 편하다. 한동안 몸보신 음식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될 듯하다.

백숙을 즐기다 방안을 둘러보니, 천장이나 기둥에서 꽤 고풍스러운 느낌이 든다. 이런 곳에서 닭고기를 뜯고 있으니,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 집에서 먹던 백숙도 생각난다. 감골가든의 기와집은 족히 100년은 더 됐는데, 원형을 유지하면서 실내만 고쳐 쓰고 있다. 크기도 꽤 크다. 울산의 대기업 직원 250여 명이 단체로 빌려 회식을 했을 정도다.

안 대표는 “1997년 이 집을 보고 반해, 매입하고 장사를 시작했다. 무모해 보였지만, 정성을 쏟으니 비교적 빨리 단골이 늘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북구 화명동에서 자란 안 대표는 젊은 시절 하와이에 이민을 갔다가, 감골가든을 차리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요리는 기본적으로 대가족의 식사를 책임지던 안 대표의 어머니로부터 배웠다고 한다. 요리의 기술도 배웠지만 음식을 대하는 태도와 정성도 배운 듯하다.

주말 식사 때엔 감골가든은 손님들로 가득 찬다. 그만큼 기본이 되는 오리불고기와 백숙 요리를 좋아하는 단골이 많다는 뜻이다. 풍성한 밑반찬 사이에 놓인 둥근 철판에서 오리고기가 ‘자글자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걸 보고 있으면, 절로 침이 넘어간다. 오리엔 기름기가 많지 않고 양념도 자극적이지 않아, 잘 넘어간다. 여기에 싱싱한 부추와 양파가 맛을 한층 더 끌어 올려준다. 부추의 고소함과 양파의 단맛이 스며들어 식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도 오리불고기의 열성 팬이 많은데, 인터넷 등에 호평의 후기가 꽤 많다. 정작 안 대표는 인터넷 등을 잘하지 못해, 이런 후기를 잘 모르고 있다.

기본 닭과 오리백숙도 국물의 맛이 짙고 풍성해 속을 개운하게 풀어준다. 약재들이 많이 들어가 있지만, 끝 맛이 깔끔하다. 특히 옻요리들은 걸쭉한 느낌이 더해지면서 맛의 층위가 훨씬 높아진다. 감골가든 자체가 20년 넘은 곳이니, 긴 시간 쌓인 노하우가 음식에 녹아 있을 수밖에 없다.

꽤 바쁜 하루였다. 장안사 주변도 구경하고, 배도 채웠다. 그럼에도 정작 돌아가려니 아쉬움이 적잖게 남는다. 아쉬움을 달래보고자 가게와 인접한 계곡으로 향했다. 시원한 물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을 보고 있으니, 몸과 마음 모두 포만감으로 부풀어 오르는 듯하다.

▶김골가든/부산 기장군 장안읍 상장안2길 11(장안리)/능이백숙 7만 원, 오리불고기 4만 원, 닭백숙 5만 원, 옻닭백숙 5만 5000원, 오리백숙 5만 원, 옻오리 5만 5000원.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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