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204) 자본주의 변화 속 성찰 없는 혼란, 펑 첸지에 ‘중국 25호’

입력 : 2023-02-01 17:56:45 수정 : 2023-02-01 18: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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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첸지에(펑정지에·1968~)는 중국 출신의 작가다. 근대미술과는 거리가 먼 사천성에서 태어나 사천미술대학에서 순수미술과 유화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08년 싱가포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을 비롯하여 미국·독일·프랑스·스위스·일본·한국 등에서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다.

펑 첸지에는 중국, 싱가포르, 태국뿐만 아니라 제주 저지예술인마을에도 스튜디오를 두고 세계적으로 그의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펑 첸지에는 1980년대 청년 시절을 보내며 천안문사태 등 중국의 격동기를 고스란히 경험했다. 1990년대 중국은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유입되며 대중문화가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퍼져나가는 시기였다. 기존 중국 미술이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전통 수묵화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자본주의 도입 이후로는 중국인들이 겪은 문화적 충격을 표현한 작품이 등장하게 되었다.

펑 첸지에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사천은 이미 현대 대중문화의 도상과 영상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펑 첸지에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 도입 이후의 중국 현대사회를 예리한 비판의 시선으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펑 첸지에의 작품은 광고판에서 영향을 받은 듯 스케일이 큰 화면을 주로 보여준다. 별다른 배경 없이 여성의 인물이 꽉 들어차 있고 붉은색과 분홍색, 짙은 초록색과 청록색을 주조색으로 한다. 이렇게 강렬한 색은 중국 전통 회화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작품 속 여성은 마치 인형처럼 매끄럽고 새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을 가졌다. 또 아주 진한 화장을 한 듯하다. 광고 속 모델 같은 여성은 눈 전체의 크기에 비해 눈동자가 너무나 작은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작은 눈동자는 눈의 바깥쪽으로 향하는 외사시(外斜視)로 그려져 화려한 외모와 다른 ‘어색함’을 강조한다.

‘중국 25호’(2003)는 화폭을 가득 채우는 여성의 얼굴, 붉은색과 청록색의 강렬한 보색 대비를 통해 즉각적으로 펑 첸지에의 작품임을 인지하게 한다. 단정하게 묶어 올린 머리와 길게 뻗은 목, 매끄러운 피부와 화장이 돋보이는 젊은 여성은 역시나 초점 없는 눈동자를 가졌다.

화려함과 공허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펑 첸지에의 작품에서는 ‘변화하는 중국 사회’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드러난다. 영혼이 사라진 것 같은 여성은 풍요로운 사회 속 성찰 없이 혼란을 겪고 있는 중국과 현대 중국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정우영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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