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인구 절벽에서 살아남기

입력 : 2023-02-01 17: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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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영 기획취재부 차장

일자리 부족 부산, 청년 유출 지속
수도권 일극화 지역 소멸 앞당겨
원전 밀집 지역엔 전기요금 인하
법인세 차등화 같은 정책 전환 시급

“제 주변 20대 친구들 대부분 부산에서 살고 싶어해요. 문제는 좋은 일자리가 없다는 거죠. 공무원, 교사, 공기업 직원 아니면 괜찮다 할 직장이 없으니 다 떠날 수밖에요. 그나마 요즘은 원격근무가 가능해진 IT 업계 친구들이나 자영업자 정도만 지역에 남아있어요.”

“공공기관 지역 이전이나 균형 발전을 이야기하면 서울, 수도권의 것을 빼앗겠다는 걸로 보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 수도권만으로 국가 발전을 견인할 수 있을까요? 수도권과 지역, 양 날개로 날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경제성장의 새 동력, 한 축으로 동남권을 바라봐 주면 좋겠습니다.”

최근 만난 부산의 20대, 30대 직장인의 토로다. 요즘은 어떤 모임에 가도 지방 소멸, 인구 유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간 인구 수에서도 인천에 밀려 ‘제2도시’ 위상을 뺏기게 생긴 부산의 위기감 때문일 거다.

실제로 통계청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2년 국내인구이동통계’에 따르면 인천(1.0%)은 세종(2.7%)에 이어 두 번째로 순유입률이 높은 지역으로 나타났다. 반면, 부산(-0.4%)은 울산(-0.9%), 경남(-0.6%) 등과 함께 순유출률이 높은 지역 5곳에 포함됐다.

날이 갈수록 수도권 집중 현상은 완화되기는커녕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이제는 서울, 경기에 이어 충청권까지 수도권에 편입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지난해 국내인구이동통계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확인된다. 수도권과 중부권으로 인구가 순유입되는 동안 영남권은 전 연령층에서 순유출이 발생했다. 수도권으로 3만 7000명이 순유입된 반면, 영남권에서는 6만 1000명이 순유출됐다.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서 지역을 떠나는 청년층의 이동도 수치로 드러난다. 부산대와 부산외대, 부산가톨릭대, 대동대학 등 캠퍼스가 밀집한 부산 금정구는 전국에서 순유출률이 높은 시·군·구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대학교가 많은 부산은 20~24세 인구의 유입이 많은 반면, 졸업후 일자리가 없어 25세 이상 청년이 꾸준히 유출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부산의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부산의 인구 이동 패턴과 관련해 “지난 20년 간 바뀐 게 하나도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균형 발전 필요성에 대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정부가 수도권 집중화 문제를 수십 년째 방치하고 있는데 변화가 있을 수 있겠냐는 설명이다. 그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지역의 인구 유출을 막을 방법이 없다. 부산에서 나가는 길과 다리를 몽땅 끊는 수밖에….”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보탰다.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지역을 떠나야만 하는 청년들. 그렇다면 수도권에 사는 청년들은 과연 행복할까? 이들은 인구 과밀로 인한 높은 집값, 장거리 출퇴근 등 치열한 생존 경쟁에 시달린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59명에 그친다. 같은 분기 역대 최저를 기록한 우리나라 전체 합계출산율(0.79명)은 물론, 부산의 합계출산율(0.73명)보다 낮아 전국 꼴찌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획기적 정책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한다. 수도권 과밀 문제를 이대로 방치하는 건 국가 전체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도권 집중을 부른 1960년대식 성장 거점 개발로는 저출생, 인구 절벽 시대를 건널 수 없다.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사는 기형적인 현상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수도권 집중화 사례로 꼽히는 일본만 해도 전체 인구의 30% 정도만 수도권에 거주한다. 일본 정부는 적극적인 인구 분산 정책으로 2019년부터 지방 이주지원금 제도를 운영 중이다. 올 4월부터는 지원금을 3배로 늘려 수도권에서 지역으로 이사하는 가족에게 18세 미만 자녀 1인당 약 1000만 원(100만 엔)의 현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다만, 이런 현금 지원 방식은 실효성 논란이 있다.

보다 효과적인 대안으로 좋은 일자리가 지역에 골고루 분산될 수 있도록 하려면, 우리나라도 지역 이전 기업에 세금을 깎아주는 ‘법인세 차등화’ 같은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세계 최대 원전 밀집도로 고통 받고 있는 동남권 주민을 생각하면 ‘전기요금 차등화’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까지 보내기 위해 발생하는 송전 비용과 송전탑 인근 지역 주민의 피해까지 고려한다면 수도권이 더 높은 전기 요금을 내는 것이 마땅하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요금, 법인세 인하와 같은 직접적인 세제 혜택으로 기업 이전을 끌어낸다면 일자리 부족, 인구 감소와 같은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가 만난 한 지역 청년의 말처럼, 수도권이라는 하나의 날개로는 우리 경제도 더 이상 비상할 수 없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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