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그렇듯 나는 조금새끼다
물 때 맞춰 들어왔다 나간 배 한 척
어머니는 나를 가졌다
물때마다 조금새끼들은 갯벌을 뒹굴고
파도 따라 떠돌았다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빗장 걸린 문밖에 눈맞은 발자국과
발목 깊이 빠지는 갯벌 숨소리
문 안에는 높아지는 하늘이 있고
문밖에는 춤추는 바다가 들어있다
그물 속으로 투명한 아침이 온다
함께 바다로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동갑내 조금어른들이 있어
목까지 차오르는 갯벌을 마주보는
어미와 아비가 등 뒤에 서있다
갯벌 위로 밀려오는 바람은
물 높이에 멈춘 상처가 아문 뒤에도
조금 새끼들은 태어난다
어른이 되어서도 동갑끼리 놀려먹는
나는 춤추는 물결 아들이다
시집 〈무명島에 기대어〉 (2025) 중에서
‘조금’은 달과 지구와 태양이 나란히 있을 때 나타나는 바다의 현상으로 조석 간만의 차가 가장 적은 시기입니다. 이때 선원들은 출어를 포기하고 집에서 쉬는 경우가 많은데요. ‘조금새끼’는 이 시기에 잉태되었다가 태어난 바닷가 아이들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단순히 출생 시기를 말하기보다는 망망대해에서 풍랑과 싸워야만 했던 아버지들의 삶을 품고 있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하루 두 번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바다가 이들의 또 다른 아버지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춤추는 물결의 아이들. 부르면 소금기가 묻어나는 아이들. 바다는 아버지를 데려다가 보름이 되어서야 돌려보내곤 했다는 어느 싯구가 있지만,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도 많다는 걸 생각하면 슬픈 이름이기도 합니다. 신정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