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주의 AI 톡] 피지컬 AI 시대, 로봇은 왜 인간을 닮아가나

입력 : 2025-12-02 18: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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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 컴퓨터·인공지능공학부 교수

생성형 AI와는 달리 한국엔 기회
인간 기준 세상에의 적응이 숙제
기술이 만들 사회 성찰 시작해야

1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개최된 CES행사.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은 인공지능의 미래를 말하며 새로운 키워드를 꺼냈다. 바로 ‘피지컬 AI(Physical AI)’다.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가 텍스트와 그림, 영상을 ‘만드는’ 기술이라면, 피지컬 AI는 세상을 직접 보고, 듣고, 움직이는 AI다. 한마디로, AI가 컴퓨터에서 튀어나와 현실 세계에 발을 딛기 시작한 것이다. 카메라로 주변을 인식하고, 팔과 다리로 움직이고, 손가락 끝으로 섬세한 조작까지 수행하는 AI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로봇, 특히 인간을 닯은 로봇 휴머노이드가 바로 피지컬 AI의 대표주자다.

현재 AI의 선두 주자는 명확하다. 미국과 중국이다. 천문학적인 양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AI 모델 개발 능력 그리고 컴퓨팅 인프라를 갖춘 두 국가가 생성형 AI 경쟁을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다른 나라가 먼발치라도 따라가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다.

반면 피지컬 AI는 다르다. 이 영역에서는 정밀 제조, 센서, 모터 제어 같은 하드웨어와 제조 기술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이 분야는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진 영역이다. 근로자 1인당 사용되는 로봇의 수를 나타내는 로봇밀도 측면에서 한국은 전 세계 1위다. 인구 대비 로봇 활용률이 가장 높다는 것이며 새로운 로봇 기술을 시험하고 실제 산업에 투입하기 가장 좋은 실험장이 한국이라는 의미다. 생성형 AI 경쟁에서 뒤처졌다며 우려하는 사이, 다른 문이 조용히 열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부울경 지역은 막강한 제조 인프라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 피지컬 AI의 개발, 하드웨어 제조, 현장 실증이 모두 가능한 최적의 무대다. 피지컬 AI 기반 제조업 혁신을 통해 부울경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쯤 해서 피지컬 AI와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의문 하나를 살펴 보고 지나갈 때가 됐다.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개발에 총력을 쏟다시피 하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관련한 질문이다. 왜 인류는 굳이 사람처럼 생긴 이족 보행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려는 것일까. 이는 특정 작업에 특화한 비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생산성 향상 등을 추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질문과도 상통한다.

실제로 산업용으로 개발된 로봇은 특화된 로봇의 형태를 극단적으로 추구한 예이다. 공사장의 포크레인을 닮은 용접용 로봇은 자동차 생산 라인의 고정된 위치에서 용접만 잘하면 되고, 트럭과 비슷한 모양인 이송용 로봇은 물류센터에서 물건을 빠르고 정확하게 옮기면 된다. 그런데도 테슬라, 피규어AI, 보스톤 다이나믹스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선택한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세상이 ‘인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 손잡이 높이, 계단의 폭, 의자 높이, 공구의 크기, 심지어 냉장고 문을 여는 방식까지. 모든 것이 인간의 팔 길이와 손 모양, 걸음걸이, 시야 높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인간처럼 걷고, 잡고, 돌리고, 앉고, 기울일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사람이 일하는 거의 모든 환경에 그대로 투입될 수 있다. 로봇 개발 기업의 입장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특화 로봇보다 표준화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사용하여 여러 용도로 사용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며 시장성이 높을 수 있다. 결국 휴머노이드 로봇 경쟁은 ‘인간이 만든 세상을 가장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형태’를 둘러싼 싸움이기도 하다.

AI는 지난 10년간 인간의 정신 노동 영역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그리고 이제 피지컬 AI는 육체 노동의 영역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생성형 AI가 인간의 ‘두뇌’와 경쟁했다면, 피지컬 AI는 ‘몸’과도 경쟁하기 시작한 셈이다. 과연 이 흐름은 어디까지 갈까? 비교적 단순한 육체적 노동의 대체에서 시작하여 매우 복잡한 작업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AI가 결국엔 모든 형태의 인간 노동을 대신할 것이다.

SF 소설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파운데이션’에는 솔라리아라는 행성이 등장한다. 광대한 개인 공간에서 사람들이 서로 얼굴조차 거의 마주하지 않는 사회. 출생부터 죽음까지 일상 모든 일을 로봇이 처리하는 세계다. 만약 피지컬 AI의 미래가 이 방향이라면, 우리는 편안함과 고립, 효율과 상실 사이에서 새로운 질문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로봇이 일을 대신 해 주는 시대,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그리고 로봇에게 맡겨도 되는 일은 어디까지일까. 피지컬 AI는 이제 막 태동했다. 그러나 이 기술이 가져올 변화는 우리의 직업, 도시, 가족 구조, 인간의 의미까지 바꿀 수 있다. 그 변화의 파도가 다가오는 지금, 우리는 단순히 기술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만들어낼 사회의 형태를 성찰할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금정산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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